송기균
경제평론가
한 달여 전 은평 뉴타운의 미분양 아파트를 20% 할인하여 판다는 소식이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민간 건설사도 하기 어려운 결정을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서 결정한 것이 '파격적'으로 비치기도 했거니와, 아파트를 '할인 세일'한다는 사실이 낯설기도 했었다.
그러던 것이 근래 와서는 아파트 할인 세일 광고가 여기저기 눈에 띌 정도가 됐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는 20% 이상 할인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가 자리잡고 있다고도 한다. 바야흐로 '아파트 세일 시대'가 도래한 듯한 모습이다.
한 번 허물어진 둑이 거센 물살을 불러오나 보다. 서울시의 결정이 있은 지 한 달도 안 되어 '30% 할인'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나붙더니, 최근에는 '40% 할인' 소식까지 들린다.
사실 아파트도 거래가 되는 물건이므로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격을 할인하는 것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더욱이 지난 10년간 수도권 아파트의 분양가격이 2~3배 오른 것은 누가 보기에도 투기 광풍 때문이었다.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나면 가격이 제자리를 찾아 내려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건설사들은 가격이 비싸서 팔리지 않는 미분양 아파트를 끌어안고 2년 넘게 버텨왔다.
은평 뉴타운 할인세일 '충격'
그들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MB정부 5년간 20 차례가 넘는 '부동산 부양책'이 발표되었고, 그때마다 아파트 가격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치고 상승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띄웠고, 집 없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분양대열에 합류하곤 했다.
20% 혹은 40% 할인하여 아파트 세일에 나선 것은 건설사들이 투기의 시대가 끝났음을 뒤늦게 인정한 결과다. 투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깊은 상처가 남는다. 그 상처가 때론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아파트 가격의 고공행진을 굳게 믿었던 건설사들은 떼돈을 벌려는 욕심에 사업을 키웠고, 투기가 꺼지자 회사가 휘청거릴 지경이 되었다.
50대 건설사 중 지난 3년간 20여개가 부도가 났고, 이 부도행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투기광풍에 몸을 내던진 결과다.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실패로 부도 위기에 몰린 재벌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책금융공사가 지원에 나서 특혜 의혹을 부르기도 했다. 투기광풍이 남긴 잔해의 한 풍경이다.
정부의 부양책과 언론의 부추김에 넘어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지금은 하우스 푸어가 되어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 와서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탓해봐야 고통이 조금도 줄지 않는다.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이라는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가야 한다.
부동산 불패신화 무너지는 소리
'아파트 40% 세일 시대'는 투기 광풍이 지나간 뒤의 참혹한 풍경을 상징하는 용어다. 지난 50년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견고하게 똬리를 튼 '부동산 불패 신화'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소리이기도 하다.
투기의 봉우리가 높을수록 그 너머의 골짜기 또한 깊다는 것은 투기의 오랜 역사가 거듭 말해주는 사실이다. 또다시 투기의 불씨가 지피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떨쳐내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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