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사람들⑩ 이재욱 부총재보

국제금융업무에 능통한 시장주의자

지역내일 2002-01-21 (수정 2002-01-22 오후 5:14:03)
지난해 8월 23일 한국은행은 IMF 차입금 195억달러를 상환했다. 이는 당초 예정일인 2004년 5월보다 무려 3년여를 앞당긴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됐던 이른바 ‘IMF체제’에서 졸업했다.
이날은 한국은행 직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도 뜻깊은 날이었지만, 이재욱 부총재보의 감회는 남달랐다.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는 실무 총책임자이자 한은에서 오랫동안 국제금융을 맡아왔던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한은의 국제금융통’으로 인정받아
“제 공로가 컸다기보다는 때마침 그때 담당직책에 있었을 뿐이지요.”
당시 상황에 대해 겸손하게 대답하는 이 부총재보는 국제금융을 맡아오는 동안 우리 외환시장의 규모를 키우고 신축성을 높인 점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외환시장이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것은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 ‘엔화가치하락’에 대해 보이는 시장의 양상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 부총재보의 설명을 들어보자.
“당초 시장참여자 대부분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큰 것으로 판단, 원엔환율이 100엔당 1000원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1000원선이 무너졌어도 시장에 준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여러번에 걸친 줄다리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특정 환율선이 지켜지느냐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그만큼 시장이 두터워졌다”고 말한다.
이 부총재보는 한은 입행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국제금융관련부서에서 일해왔다. 그 동안 이 부총재보가 기여한 바도 크다. 국제금융과장을 맡았던 80년대 중반 스왑, 선물, 옵션 등 당시에는 생소했던 개념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하는 등 국내 최초로 파생금융상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또 2단계 외환자유화의 기본틀도 그의 손을 거쳐 나갔다. 1단계 외환자유화가 시장에 대한 규제를 제거한 것이라면 2단계는 개인에 대한 규제를 없앤 것이다. 당시만해도 외화유출 등 우려의 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시장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면 쉽게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검은돈이 아니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우선 기업과 시장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장을 믿되 룰에 엄격해야 한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해 4월 한국은행의 외환시장개입은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3월말까지만 해도 1327원이었던 환율이 4월들어 1365원으로 급등했다. 국제금융담당 임원으로 선임된 다음날 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적극적이고 단호한 한은의 입장을 밝혔다. 당시 시장상황에 대해 ‘비정상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시장 안정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고 발표했던 것이다.
이 부총재보의 발언이 있은 후 환율은 곧바로 하락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이날 한은의 시장개입은 아직까지도 “당국의 외환시장 운영을 한단계 높인 조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국제금융통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가 국제국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에였다. 조사부에 근무할 당시 중병에 걸린 장모의 병간호를 위해 강릉지점을 자원했던 것. 강릉지점에서 돌아오자 그에게 국제국 업무가 맡겨졌다. 그의 인간적인 면 때문에 국제금융업무를 담당하게 된 셈이다.

온화하지만 할말은 하는 ‘정의파’
이같은 인간적인 면모에다 일방적 지시보다 토론과 대화를 중시하는 업무스타일 때문에 직원들에게 인기도 좋다.
부하직원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없지만 작은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 진심에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게 주위 사람들의 얘기다. 대개 결재를 받으려면 정장에 명찰까지 준비해야하지만 이 부총재에게만은 와이셔츠 차림에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매주 한번씩 갖는 부국장 회의도 그의 세심한 배려에서 시작됐다. 사실 직함은 있지만 명확한 역할은 없는 자리가 부국장이다. 이들에게 분명한 역할을 주는 한편 이를 통해 직원들의 어려움과 팀내 애로사항을 듣기도 하고 직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이 부총재보의 설명이다.
명령보다 직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스타일이다보니 이 부총재보가 가는 곳은 ‘분위기가 좋다’는 얘기가 나온다.
85년 이 부총재보가 국제금융과장으로 근무했을 때 같이했던 직원들은 아직도 모임을 갖고 있을 정도다. 당시만해도 국제부는 그다지 인기있는 부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부총재보의 제안으로 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자료를 생산하면서 어느샌가 가장 인기있는 부서의 하나가 됐다.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업무에서는 할말은 꼭 해야하는 ‘정의파’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본인 소신에 맞지 않으면 상사라도 설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통화관리과장으로 근무했을 때에는 정부의 통화공급 요구에 반대했다가 직속 상사와 크게 부딪친 일도 있었다. 87년 한은법 파동 때에는 민주당에서 개정법안을 철회하려하자 새벽에 김동영 의원 자택에 처들어가 설득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매일아침 직원대상 영어강좌에 참석하는 성실파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69년 입행동기
하지만 이 부총재보가 임원까지 승진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른바 ‘69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은에서 69년 입행한 동기들은 승진이나 업무발령에 불이익이 많았다. 67, 68년 입행인원이 70~80여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자리를 옮긴 사람도 많다. 정기홍 금감원 부원장, 강기원 금감원 감사, 조흥은행 김상우 감사 등이 입행 동기들이다.
국제금융에 대한 경험과 직원들의 여론이 아니었다면 임원승진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직원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절대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란 지적도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선 경험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