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희망을 쏜다 2부. 사람이 희망이다 ⑦제2의 삶 찾는 새터민] 우리는 자본주의에 적응중 "대한민국 여러분, 시간을 주세요"

지역내일 2013-02-13 (수정 2013-02-13 오후 1:59:18)
유혜미
"10년 같이 산 남편도 몰라주는 게 우리 마음 … 함께 일할 수 있는 식당 열어 새터민 '멘토' 될 것"
이경희
"북쪽 가족에 생활비 보내기 숙제처럼 안고 살아 … 아들에겐 엄마가 새터민이라는 사실 안 알려"

서울 강동구 길동에는 특별한 식당이 있다. 새터민(탈북자)들이 직원으로 일하는 '내 마음 속의 봄'이 그곳이다. 이곳은 자립을 꿈꾸는 새터민들이 거리낌없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면서, 장사의 요령을 배울 수 있는 창업요람 역할을 한다.

설 연휴 바로 전인 8일 오후 새터민 직원 중 고참격인 이경희(가명·41), 유혜미(가명·39) 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온 후 맨땅에 헤딩하듯 지냈지만 어느덧 5~1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경희 씨는 직장에서 이 부장님으로, 혜미 씨는 유 과장님으로 불린다. 이 부장님은 식당의 모든 재무 관련한 회계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아물지 않은 상처는 있었다. 탈북 후 두만강 주변과 중국에서 떠돌던 시절, 주홍글씨로 남아 있는 북쪽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천신만고 끝에 온 한국에서 느꼈던 차별, 그리고 상처 상처 상처. 그들이 대한민국에 원하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조금만 시간을 갖고 자신들이 적응하고 바로 서기를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1년에 한번은 목돈 북쪽에 보내 … 그래야 밥이라도 목에 넘어가니까 = 이경희 씨가 북한 집을 나선 것은 벌써 16년 전이다. 한국에는 5년 전에 왔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선택한 길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아직 북쪽에 남아 있는 남동생은 당에 들어가기 위해 군대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탈북' 누나 때문에 꿈이 좌절됐다. 지금도 동생은 혹시 모를 불이익을 걱정해서 누나와 전화통화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1년에 한번은 목돈을 만들어 북쪽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이유는 그런 죄책감 때문이다.

"북한에 돈을 보내려면 중국인 브로커를 통해야 하는데 운이 좋으면 보낸 돈의 70% 정도가 들어간다고 해요. 우리 집은 국경쪽에 있어서 그나마 많이 들어가는 편인데 사기 당하는 경우도 많고. 어떤 브로커는 돈을 전해주지도 않고 오히려 북한당국에 그 가족을 고발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돈을 보내지 않으면 여기서 밥이 목에 안 넘어가니까… 떼이는 돈인 줄 알면서도 보내는 거죠."

유혜미 씨는 한국에 정착한 지 벌써 10년이 됐다. 북쪽에 남겨두고 왔던 여동생이 최근 한국으로 넘어와 이젠 걱정거리를 훨씬 덜었지만 예전만 생각하면 끔찍하단다.

"브로커들이 동생을 잡아두고 저한테 전화를 하게 했어요. 돈이 이만큼 필요하니 보내라고. 그러면 안 보낼 수가 없어요. 남편도 처음에는 이해하다가 사는 게 워낙 힘드니까 몇 번 계속되면 막 짜증을 내죠. 그래도 안 보낼 수 없으니 거짓말 하게 되고. 갈등도 생기고. 아무리 자식 낳고 10년을 산 남편이라도 우리가 왜 그렇게 북쪽에 돈을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해요. 이런 것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이 많다고 들었어요."

◆피할 수 없는 차별 = 지금은 '내 마음속의 봄'에서 자신이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잊고서 일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부분이 차별이다.

"지금 직장으로 오기 전에 알만한 대기업 총무직에 지원한 적이 있어요. 1, 2차 합격하고 면접까지 갔는데 이사라는 분이 나오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분이 대뜸 어떻게 이런 사람(새터민)이 여기까지 올라왔느냐고 호통을 치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받았던 충격이 생생해요. 정말 차별이 있구나. 깊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아요. 두고 보자는 생각도 들고. 나중에라도 잘 살게 되면 꼭 그 사람한테 찾아가서 한 마디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이 씨가 힘겹게 털어놓은 취업담이다. 그 뿐이겠는가. 얼마 전 있었던 서울시청 간첩 사건 때문에 새터민 전체가 욕 먹는 걸 보면 허무해진다고 했다.

유 씨는 가정 내에서도 아직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처음엔 북한 사투리를 쓰고 하다 보니까 남편이 창피하다고 했었어요. 사투리 쓸 때는 어디 데려가지도 않고 놀러가지도 않고. 무시도 많이 당하고. 이 악물고 사투리를 고치긴 했지만 지금도 집이나 시댁 가면 말을 되도록 아껴요. 혹시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올까봐."

차별에 아파했던 세월이 있다 보니 그 다음 걱정은 자녀들이다. 이 씨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유 씨는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이 씨는 아들에게 엄마가 강원도 출신이라고만 이야기했다. 이 씨는 "학교에서 이것저것 공문이 내려와요. 탈북자 자녀들에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안내해 주고. 선생님께 말했죠. 이런 것 보내지 말고, 아이에게도 엄마가 탈북자라는 거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알려졌다가 혹시라도 위축되고 친구들한테 따돌림 당할까 봐서요"라고 말했다.

유 씨도 작년까지 엄마의 출신(?)을 숨겨왔지만 여동생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교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알게 됐다고 한다.

"새터민 자녀 모아서 하는 방과후학교 같은 것이 있거든요. 그런 것도 하고는 싶어도 혹시 탄로날까봐 못 하게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애가 알아버렸어요. 어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애 앞에서 이야기하고 그러니까 알아버린 거죠. 속이 상하더라고요."

◆받은 만큼 대한민국에 세금 내며 살 자신 있어요 = 이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받은 것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살기 좋은 내 나라라는 느낌은 받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기 위해선 대한민국 사람들이 먼저 이해해 줘야 할 부분, 또 새터민으로선 스스로 자립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만큼 지원해줬는데 너네는 뭐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해요. 그럼 차라리 주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무 것도 없이 살아온 게 우리들이고 어떻게든 살 수는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 달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와 숨가쁘게 적응하고 있고, 시간이 필요해요. 그러면 정말 우리가 받은 만큼 세금 내고 살면서 똑바로 살 자신 있거든요."(이경희)

"아직 정착 못하고 방황하는 탈북자들이 많아요. 언어장벽 문화차이 뭔가 벽이 있는 거죠. 그런 사람들 다 데리고 와서 같이 일하고 싶어요. 우리 사장님이랑 꿈꾸는 게 탈북자라는 걸 잊고서 일할 수 있는 곳, 그런 식당을 구마다 하나씩 세워보자는 거거든요. 발판은 한국에서 만들어줬으니 이제 기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고요. 그런 새터민들의 멘토가 되고 싶어요."(유혜미)

◆향기로운 외식세상은 = 향기로운 외식세상(대표 김민정)은 취약계층에게 외식사업 교육 및 프랜차이즈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2007년 11월 설립됐다. 현재 8명의 새터민이 일하고 있다.

도시락 비빔밥 차돌보쌈 전문브랜드인 내 마음 속의 봄, 족발 전문브랜드 봄에는, 커피전문점인 커피의 눈물 등 4개의 브랜드를 현재 운영중이다.

향기로운 외식세상은 수익금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어 관련 분야의 수상경력이 많다. 2008년 신지식기업상 수상에 이어 2011년 1월 지식서비스우수기업, 2011년 5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사회적기업 컨소시엄에 선정됐다. 지난해 6월에는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박준규 기자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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