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통상임금, 법대로 하면 된다

지역내일 2013-05-29 (수정 2013-05-29 오후 1:51:35)
정책팀장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중 제네럴모터스(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청받고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 각종 수당의 산정기준이 되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통상임금에 대한 법적 정의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6조에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금액'이라고 명시돼 있다.

재계는 상여금과 교통보조비, 직급수당 등을 비정기적인 것으로 보고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는 반면, 노동계는 이를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란 자체 고시에서 '매월 계속 지급돼야 정기성이 있고, 근로시간과 관계없는 생활보조적·복리후생적 금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며 상여금과 여러 수당을 통상임금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판결 따르지 않는 노동부
대법원 판결은 노동부 입장과 다르다. 대법원은 1996년 2월 '매월 지급되지 않더라도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1년에 한번씩 지급되는 체력단련비, 월동보조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판결을 했다.

이후 대법원은 일관되게 '매달 지급되지 않아도, 노동시간과 관계 없더라도'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해왔다. 2012년 3월 대법원은 '정기적인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1987년 이전에는 통상임금은 기본급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됐다. 기본급을 적게 책정함으로써 저임금·장시간 노동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토대로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권위주의시대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이었다. 낮은 기본급과 온갖 이름이 붙은 수당으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이때 구조화됐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며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졌고, 통상임금 산정을 둘러싼 소송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통상임금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고 과거의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는 노동부의 행태는 직무유기를 넘어 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대법원 판례가 통상임금 혼란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는 방하남 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노동부의 초법적 행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정치권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은 27일 비공개 회의를 열어 노사정 합의로 통상임금 기준을 정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통상임금은 흥정대상이 아니다. 법에 정해진대로, 대법원 판결대로 따르면 된다.

민주당도 초법적 발상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 정책을 총괄하는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5월 22일 '통상임금 문제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되, 소급 적용은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근로기준법 49조는 임금채권 시효를 3년으로 명시했다. 노동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3년치 미산정분을 받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무슨 근거로 법을 안지켜도 된다는 주장을 펴는 것인가. 민주당은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정치권이 '노사정 합의'나 '소급적용 반대' 운운하는 것은 재계의 '죽는 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대법원 판결대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면 38조5000억원의 부담이 생기고, 이에 따라 향후 5년간 최대 8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겁을 주고 있다. 노동계는 추가 부담액이 5조7000억원 규모라고 맞선다.

소비여력 생겨 내수 활성화 계기
추가부담액이 얼마든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돈이다. 38조원이든 5조원이든 그 돈이 노동자의 소득으로 이어진다면 내수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에겐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서민소득 향상으로 내수시장이 활성화됐던 경험이 있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정권의 연평균성장률은 8.6%, 김영삼정권은 7.3%였다. 노태우나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를 잘해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을까? 아니다. 이때의 높은 경제성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노동자 등 서민들의 임금이나 소득이 올라갔고 이에 따라 내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민층의 소비 여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통상임금을 법대로 집행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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