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칼럼] 꽃들의 감옥

지역내일 2013-06-07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자주 가는 언덕 공원에 꽃밭이 하나 있다. 산비탈과 산책로 사이의 자투리땅을 누군가 공들여 일궈 만든 곳이다. 요즘 여기엔 장미, 해당화에 찔레꽃, 붓꽃 등 계절 꽃이 붉고 푸르고 노란 꽃잎들을 피워내 제법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꽃밭이 생긴 시기는 분명치 않다. 4~5년 전쯤이던가. 어느 주민이 한두평 좁은 땅을 고르고 다져 꽃을 심나보다 했는데 매년 조금씩, 조금씩 터를 늘려 지금은 그런대로 널찍한 꽃밭이 되었다. 산책객들이 '한때'나마 매우 기뻐했던 건 물론이다.

내가 굳이 '한때'란 표현을 쓴 건 요즘 그 꽃밭을 외면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꽃밭 둘레에 '동아줄'이 쳐진 탓이다. 아니, 동아줄을 한줄만 쳤으면 그런대로 괜찮았을지 모른다. 꽃이 늘면서 줄을 치기 위한 쇠말뚝이 계속 박혔고 말뚝과 말뚝 사이 출입금지 줄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어갔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꽃은 화사하게 피지만 거기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 뭐, 꽃이 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금(禁)줄'이 없어도 꽃밭 밖으로 나갈리 없으니 '꽃들의 감옥'이란 표현은 과한지 모르겠다. 묶여 구속되기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이 공연히 안쓰럽게 여겨 감옥 운운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직접 꽃밭을 가꾸는 사람 마음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애초 한두평 밭을 일굴 때는 벽돌 한장씩을 정성껏 심어 경계를 지었지만 밭을 넓히고 꽃 종류를 늘리면서는 금줄을 등장시켰다. 처음엔 나무말뚝 두세개에 동아줄 한줄만 치더니 어느새 쇠말뚝이 열개 넘게 박혔고 가로줄은 노끈에 색실까지 가져와 누비듯 쳤다. 사람의 손발이 아예 닿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노력'한 100일인가, 불통의 100일인가
산책객들은, 아직은 조심스럽다. 막힘없는 자연스러운 꽃밭이 더 좋겠지만, 꽃을 꺾거나 따지 못하게 하려면 금줄을 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물론 불쾌해 하는 이들도 없는 게 아니다. 야생초가 자라는 언덕 그대로 둬도 될 걸 덕지덕지 금줄이나 쳐 사람 접근을 못하게 해놓고, 아무리 예쁜 꽃을 키운들 무슨 '아름다움의 소통'이 되겠냐는 불만이다.

작은 꽃밭을 사람 손때를 막아 더 예쁜 꽃을 키우려는 자연보호 학습장으로 보건, 꽃들의 감옥으로 보건 그건 관점의 차이일 게다. 다만 지금은 화사하게 꽃이 피고 있어 금줄이 확연히 눈에 거슬리지 않지만 꽃이 시들거나 져버리면 금줄에 대한 불만은 훨씬 더 커질 게 틀림없다.

사실 지나간 겨울 꽃 한 송이 없고 풀포기마저 누렇게 죽어있을 때 그곳 금줄이 얼마나 을씨년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특히 눈이 와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을 때, 녹슨 쇠말뚝이 꼴불견으로 듬성듬성 박힌 언덕에 울긋불긋 색실이 늘어져 흔들리는 모습은 추악해 보이기까지 했다.

엊그제 박근혜정부 출범 100일 무렵에 꽃밭에 갔다. 꽃은 풍성하고 화려했다. 쇠말뚝에 색실을 촘촘히 엮은 금줄도, 언짢지만 눈에 들어왔다. 꽃만 본 사람들은 꽃이 좋다고 했고 금줄이 불쾌한 사람들은 사람을 위한 꽃밭이 아니라 꽃의 아름다움을 되레 죽인 감옥이라고 했다.

그날 국회에서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박 정부 100일을 최선을 다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기간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불신 불안 불통의 100일이었고 국민과 소통을 차단하며 저지른 막장인사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 것이 극명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겨울 대비하는 지혜는 소통에서 나와
언론들은 여론조사를 인용해 박 정부가 외교안보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소통과 인사에서는 낙제였다고 평했다. 대통령 취임 100일은 이른바 허니문기간이다. 아주 큰 잘못이 아니면 눈감아주고 남은 1700일에 대한 희망이 도도해 잘하라는 격려가 질책을 덮어주는 시기라는 얘기다.

꽃만 볼 것인지, 금줄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까지 볼 것인지는 청와대 몫이다. 소통으로 이루는 국민대통합, 그리고 경제민주화 같은 크고 소담한 꽃을 공약했지만 가까이 와 보지도 못하게 사람접근을 막을 것인지, 꽃이 조금 상처받더라도 누구나 가까이서 보고 즐길 수 있게 할지를 지금 결정해야 한다. 여름이 훌쩍 왔다.

화려한 꽃에 취해 흉물스런 금줄이 안 보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일찍이 겨울을 대비하는 지혜는 다른 무엇이 아닌 소통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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