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문 교수의 한국정치 클리닉> 음모론과 대세론의 허구

지역내일 2002-04-03 (수정 2002-04-04 오후 1:33:29)
민주당 경선이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국민에게 좌절과 한숨만 안겨주던 한국 정치가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 철옹성 같던 지역주의의 벽도 베를린 장벽처럼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이 1위를 차지한 것을 어느 언론인은 광주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했다. 이는 군사 독재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이 김대중의 고도의 외곽 때리기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매도했던 어떤 정치인의 궤변을 떠올린다. 그 저변의 음흉함이 섬뜩하다.
광주에서 노무현이 1위를 하고, 전국적으로 노무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현재의 기이한 현상은 음모에 의한 것도 전략적 선택도 아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정직한 바람이다. ‘노풍’은 보스 정치와 밀실 정치, 기득권층의 부정·부패에 실망한 국민들의 울분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 폭발한 것이다. 과거처럼 지구당 위원장들이 지명한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대통령 후보를 결정했더라면, 이런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고 나면 터지는 온갖 부패와 비리에 국민은 신물이 난다. 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감옥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엘리트로 행세하던 사람들이다. 국민은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패거리 지어 몰려다니면서 자기들끼리 이것저것 다 해먹는 정치판에 분노하고 있다. 이들에게 노무현은 카타르시스다.
대학을 못간 상고 출신인 노무현은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국회의원과 장관도 지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낙선할 것이 뻔한데도 우악하게 지역감정 해소를 외치며 부산에서 내리 3번이나 출마했다. 미욱하게 보이는 그의 끈기와 소신이 절망에 빠진 국민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이인제가 광주의 선택을 음모론으로 폄하한 것은 자가당착이다. 경선 캠프에 현역 국회의원 한 사람도 없었던 노무현이 1위를 했으니, ‘보은’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이인제를 찍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양심을 속일 수 없어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다는 고백이 있다. 노무현을 지지하고도 상부에는 한화갑을 지지했다고 보고한 조직원도 있다. 이인제와 한화갑은 돈과 조직을 움직였고, 노무현은 선거인단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것이 광주의 진실이다.
이인제 대세론의 근거는 그가 이회창과의 가상 대결에서 경쟁력이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대세론 자체가 허구다. 조사 때마다 지지 후보가 없다는 무응답자가 40% 가까이 되었는데,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1위와 2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대세론 운운했으니 한심한 일 아닌가? 그 동안 여론 조사에서 응답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노무현 지지로 돌아선 것이 노무현 돌풍의 실체이다. 이인제 지지자나 이회창 지지자 중에서 노무현 지지자로 입장을 바꾼 사람은 많지 않다. 노무현 지지가 30대와 40대에서 특히 높은 것도 이러한 해석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다.
이인제는 왜 추락하는가? 그는 3김 정치와 단절하지 못하고,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 그는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깨닫지 못하고, 시대적 과제인 개혁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민주당의 정풍 운동에 대해서도 미온적이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점퍼 차림으로 국민 속에 파고들었기 때문에, 그가 500만 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에 입당한 후 주위에 돈과 사람이 모이자 여당 후보나 대통령이 된 것처럼 오만해졌다.
이인제가 여권 실세와 가깝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돈과 조직을 거머쥔 여권 실세의 지지를 받고,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고 믿는 일부 수구 언론에 편승하면 대통령 당선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노사모’와 같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 자발적 조직의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인터넷의 위력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인제가 믿었던 돈은 김근태의 고백으로, 조직은 경선제 도입으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국민 경선제를 도입한 순간 이인제의 추락은 예고되었다.

/ 전남대 교수·정치학 한국정치법학연구소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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