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우 기획예산처장관은 다른 국무위원과 비교해 한 가지 일이 더 있다. 각 부처의 청와대 업무보고에 배석하는 일이다. 그는 12일 있을 농림부 업무보고에도 예외 없이 배석한다. 각 부처가 세운 정책들이 ‘예산행위’를 통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여부를 감별하기 위해서다. 사실상 예산이 수반되지 않는 정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우려가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흔히 “예산은 국정철학과도 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일이 마치 가계부를 적듯 단순히 나라살림의 수지표나 맞추는 데 그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이라는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예산과 기금, 공기업 민영화 등 현안 점검에 여념이 없는 장 장관을 만났다.최근 경기상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경기가 살아났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열을 우려 정부의 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수출, 투자 등이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반도체가격, 미국시장 회복속도 등 수출여건 점검도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는 경기동향을 철저히 점검하면서 부동산, 가계대출 등에서의 버블 가능성과 환율변동 등에 대해서는 미시적 측면에서 대응해야한다. 4월 말 쯤에는 경기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1분기 통계자료들이 나오니까 이것을 봐가면서 조절을 하기로 했다. 재정집행은 당초부터 상반기 배정계획은 65.4%였으나 실제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자금집행계획은 53.5%이다.
경기 대응책을 놓고 진 념 부총리와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처럼 알려졌는데 사실인가.
경기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은 재경부가 한다.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3월 초에 현 상황이 경기 과열 우려가 있고 점검해봐야할 대목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이다. 실제로 지금에 와서는 누구나 다 점검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작고 효율적인 정부 즉 작은 정부를 표방했던 현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이 최근 각종 위원회 신설과 부처들의 몸집 키우기로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4년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 정부부문을 핵심역량위주로 슬림화한 것도 사실이다.
97년 이전까지는 매년 평균 2.5% 씩 증가했으나 국민의 정부출범이후 공무원 수가 7.7% 감소하는 등 공무원수가 10년전 수준으로 감소했다.
최근 일부 행정조직의 신설은 행정환경의 변화 및 새로운 행정수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했다.
앞으로도 정부는 작은 정부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단순 업무량 증가는 자체 인력으로 조정해 대처하고 신규 기구 신설 등 인력증원 소요도 행정수요 감소분야를 지속적으로 발굴,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최소한으로 억제할 방침이다.
공공부문 구조개혁에 대해 정부에서는 성과가 있다지만 국민들은 피부적으로 못느끼는 것 같다.
사실 그런 감이 있다. 정부가 추진한 일부 공공부문 개혁이 모두 실생활에 직접 와 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은 큰 성과다.
최근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상향을 놓고 축하 리셉션을 여는 등 정부가 또 삼페인을 터뜨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더 잘하자는 다짐의 자리다. 예컨데 공공부문에 비해 금융과 기업부문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잘됐다고 하는 데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156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최근 일부 금융기관들이 영업수익을 많이 거둔 것에 대해 너무 내세우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국민 세금이 들어갔으니 앞으로는 금융부분이 다른 산업을 먹여살려야 한다.
올해는 양대 선거가 있는 해여서 예산에 대한 외부의 압력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예산 및 올해부터 기획예산처가 총괄하는 기금에 대한 편성 및 운용방안에 대해 말해달라.
지난 연말 여야합의로 기금관리기본법이 개정(2001.12)되어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국회의 심사가 제도화되는 등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변화된 기금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기금운용의 자율성과 효율성의 조화에 역점을 두어 기금사업의 구조를 핵심 사업위주로 개편했다. 또 기금운용의 탄력성을 최대한 견지하여 기금 설치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성격의 기금들이 사업성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운용방향을 정립하여 연금성기금은 재정안정화를 최우선적으로 도모하고 사업성기금은 자발적인 목표달성 노력을 유도하는 인센티브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겠다. 이와 함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사업방식으로의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근의 경기호전 추세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재정운영여건은 매우 어려워질 전망이다.
작년 세법개정에 따른 감세효과, 공기업 주식매각수입 감소 등으로 세입증가폭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나 교육·복지 지출소요, R&D·정보화와 같은 미래대비투자 등 세출소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정부는 내년도 재정운영의 목표를 「건전재정 기조 견지」와 「더불어 사는 선진사회 구현」에 두고 재정운영의 효율성 제고와 투명하고 균형있는 재원배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내년도 재정규모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이내에서 최대한 억제하고 재정지출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중장기적 시각에서 투자우선순위를 조정하는 한편 현장 집행점검 등을 통해 낭비를 방지하고 원활한 사업추진을 도모할 계획이다.
발전노조의 장기파업 등으로 공기업 민영화가 요즘 화두다. 한전과 KT, 철도 등 공공부문 민영화는 어떻게 추진해 나갈 계획인가.
장기간 지속된 발전노조 파업사태가 노사간 합의로 원만히 해결된 것은 다행이다.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이러한 국민적 지지 확산을 바탕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당초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 지분매각시 매각시기·방법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또한 국회에 제출된 철도·가스산업 구조개편 관렵법의 조기입법을 위해 노조 및 정치권 설득을 강화하겠다.
일부 국민들이 우려하는 민영화에 따른 공공성 훼손, 가격인상, 고용불안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책을 마련, 추진중이다.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KT의 정부지분 매각에 대한 원칙과 방향은 무엇인가. 과거 정부가 독점적으로 운영하던 통신산업이 매각돼 일부 재벌기업이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인 매각 방안을 마련 중이다. 주간사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정통부 장관의 매각과 관련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어떤 복안을 받아보고 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기자들과 이야기 하다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매각 비율에 대해 전혀 결정된 바 없다. 9일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가 열리지만 원칙론만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금년 6월까지 KT의 민영화를 완료하기 위하여 현재 JP모건, 삼성증권, 현대증권, LG증권등을 매각 자문사를 선정하여 매각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매각자문사의 권고(안)을 토대로 정통부, 재경부, 예산처 등 관계기관의 의견을 수렴하여 매각방법을 확정·추진할 계획이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추후 결정될 것이나, 장외경쟁입찰 등 증시부담을 최소화하고 장기보유를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할 생각이다.
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 제정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가.
현재 정부산하기관은 그 수가 약 500여개로 많고 출연·위탁·보조기관 등 형태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종합적·통일적인 체계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부처별로 개별법 등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경영혁신도 행정지침에 의하고 있어 그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산하기관 관리의 체계화 및 경영효율성·책임성 제고를 위해 (가칭)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이 법안은 산하기관의 경영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경영성과에 대한 사후평가시스템을 마련하여 자율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경영공시 및 고객헌장제 도입 등으로 경영투명성 확대 및 고객만족경영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법안 초안을 마련중이며 상반기 중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60-70년대 한국의 과학기술인 우대와 청소년들의 이공계 선망 분위기가 80-90년대의 고도성장을 낳았다면 2000년대 초 이공계 기피현상 속에서 2010년 이후 한국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재정자원을 배분하는 기획예산처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이공계 응시자 수가 감소하는 등 청소년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흥미를 돋우지 못하는 과학교육·입시제도, 과학기술자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정부는 청소년 이공계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고, 이공계로 진출하여 과학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과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제고하고,과학 기술자에 대한 사기 진작책을 강구하겠다. 동시에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인식변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종합대책이 확정되면, 기획예산처에서도 이에 필요한 예산을 적극 지원하겠다.
/정리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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