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땅에 떨어진 정치신의(문창재)

지역내일 2013-09-27
논설고문

기초 노령연금을 약속대로 주지 못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박근혜 대통령 말 한 마디로 이 땅의 정치신의(信義)는 땅에 떨어졌다. 철석 같이 믿었던 대통령의 약속이 깨진 마당에, 정부와 집권당 사람들의 정치철학 부재를 탓할 언덕이 있겠는가. 입만 열면 원칙과 신뢰, 약속의 정치를 강조하던 사람이어서 실망의 충격이 너무 크다.

박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 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2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득하위 70% 노인에게만 기초 노령연금을 올려주기로 한 발표가 지난해 12월 대선공약과 달라진 데 대한 사과였다.

정부발표 요지는 전체 노인 598만 명의 59%에게만 공약대로 월 20만원을 주고, 11%에게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10~20만원을 주며, 나머지 30%에게는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40%가 넘는 노인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한 간접사과였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주겠다던 공약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반드시 지킨다"던 기초노령연금 약속 뒤집어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공약포기'라는 시중여론을 강한 톤으로 부정했다. 열악한 재정여건을 거론하면서 "약속한 내용과 일정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임기 내에 실천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여 언제부터 얼마씩 주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공허하게만 들렸다. 국민 앞에서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공언한 약속도 뒤집는데, 노력하겠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기초 노령연금 인상은 선거 때마다 여야 간에 서로 더 주겠다고 한 대표적 '시소공약'이었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2017년까지 소득하위 80%에게 월 18만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내놓자, 박근혜 후보는 전체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바로 주겠다고 했다. 노인층 표심이 크게 출렁였다.

재원을 걱정하는 소리에는 '예산효율론'으로 맞받았다. 대통령 취임 후 공약 완급조절론이 나왔을 때도 "공약 수정은 없다. 반드시 지킨다"고 큰소리 쳤다. 예산 조달계획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다고도 했다.

역대 어느 정권 어느 대통령도 약속을 100% 지키지는 못했다. 가까이는 이명박정부의 747공약이 대표적이다. 연 7% 경제성장으로 일인당 4만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하여 세계7위 경제대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가슴에 공약파기라는 반감은 크지 않았다. 애를 썼지만 이루지는 못했다는데 책임을 따질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주겠다는 약속은 다르다. 당장 '내 지갑'에 들어올 돈의 문제다. 240여만명의 노인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국가재정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몇달 후에 경제가 좋아져 거뜬히 약속을 지키게 되리라고 본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노령연금 인상약속 부도는 정치신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깨진 약속이 노령 연금 뿐이라면 너그러이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영유아 무상보육,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고교 무상교육 같은 복지공약들도 다 축소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당장 만5세까지 국가 무상보육 지원약속을 어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지방정부들이 저항하고 나섰다. 국고 기준 보조율 10% 인상방침에 반발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항의 표시로 26일 국무회의 참석을 보이콧 했다.

경제민주화·검찰개혁 약속도 기대하기 어렵게 돼
일자리 창출, 경제민주화, 검찰개혁 같은 경제 사회분야 공약들도 다 공염불이 되어간다.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을 지양하겠다는 약속은 취임 초 중소기업 관련단체 일회성 방문으로 종을 쳤다. "투자하는 분들은 업고 다녀야 한다"는 박 대통령 발언은 대기업중심 경제에로의 회귀 신호탄이 되었다.

무엇보다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은 검찰개혁 약속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일이다. 어제 막을 내린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신의란 믿음과 의리가 합쳐진 말이다. 의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킬 도리다.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도 도리를 어기는 것보다 큰 부끄러움이 없거늘, 하물며 국정 최고 지도자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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