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이 보는 세계] 베트남 통일의 영웅 보구엔지압 장군

지역내일 2013-10-07
언론광장 공동대표

2차 대전 후 베트남을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시키고 1954년 제네바회의 결과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을 다시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베트남 민족의 영웅 보구엔지압장군이 4일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보뉴엔지압은 1954년 5월 7일 프랑스 정예부대와 외인부대 1만여명이 참호를 파고 저항하던 디엔비엔푸 진지를 함락시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디엔비엔푸의 영웅이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식민지 북(北)베트남 군대가 종주국 프랑스 군대를 포위하고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낸 믿기 어려운 사건이다.

디엔비엔푸 함락으로 프랑스는 국위가 땅에 떨어지고 베트남의 호치민과 보뉴엔지압은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적 명사의 반열에 올랐다. 지압은 게릴라 이론과 병참의 천재이며 미국의 매카더나 독일의 롬멜과 같은 반열에 오를 전략가라는 평가도 나돈다. 프랑스나 미국 군대 하나만 패배시켰어도 대단한 전과(戰果)일텐데 초대강국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을 정복, 통일을 달성한 것은 전쟁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지압 장군은 군대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 언론인, 고등학교 역사교사 출신이다. 물론 군대에 관해 관심은 많았다. 프랑스 혁명사와 나폴레옹의 군사작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정열을 갖고 읽은 그의 군사지식은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던 지압은 1940년 호치민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 지압의 나이 29세였다. 지압을 만난 호치민은 나이 30도 안 된 지압에게 베트남 공산당 군대를 양성하고 조직하는 임무를 맡기고 그에게 '장군'의 칭호를 내렸다. 호치민이 사람을 보는 눈이 비범함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군대와는 거리가 먼 역사 교사 출신
디엔비엔푸는 단순한 전투 승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건이 일어난 시기 때문이다. 당시 제네바에서는 휴전협정 이후의 한반도 미래와 프랑스와 호치민의 군대가 싸우고 있는 베트남 독립전쟁을 종결시킬 방법을 찾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원래 한반도 문제가 더 중요한 의제였지만 한반도 문제는 별로 거론되지 않고 베트남 문제가 주(主)의제가 됐다. 프랑스는 베트남에 계속 잔류할 타협책을 찾는 데 제네바회의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디엔비엔푸는 프랑스가 베트남에서 손을 떼고 물러가게 만든 케이오 펀치 효과를 냈다. 호치민의 양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압 장군이 디엔비엔푸 함락을 5월 7일에 맞춰 총력을 기울인 것도 이런 정치적 효과를 계산했다고 본다. 지압은 군사적 성과보다 군사행동이 여론에 미칠 선전효과를 더 중시했다. 지압이 68년 1월에 단행한 테트(구정)공세에서도 베트콩 측이 입은 손실이 훨씬 컸다.

그러나 이 공세는 여론이나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베트콩의 전쟁 의지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 도리어 미국 여론이 전쟁을 빨리 끝내도록 지도층에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냈다. 군사적으로는 실패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지압은 이런 효과를 거두기 위해 인명 손실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다. 인명 몇 천명을 희생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지압이 비판 받는 부분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압은 이 전략으로 한국전쟁(37개월)보다 2배 이상 오래 끈 미국과의 전쟁(90개월)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압이 베트남의 운명에 기여한 공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나 1969년 호치민이 사망한 다음 후계자들은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고 경쟁자들을 배제했다. 지압도 자신의 능력과 명예를 시새움하는 동료들에 밀려 한동안 권력 핵심에서 배제되는 쓰린 경험을 맛봐야 했다.

목적 달성에 인명은 중요하지 않다
2005년 하노이 별장에서 만난 보뉴엔지압은 베트남을 통일한 '장군'의 모습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기의 주어진 사명을 다 한 원로 정치인의 품위를 풍기고 있었다. 지압은 통일이후의 경제개혁을 지지하고 미국과도 더 가깝게 지내기를 권고하는 열린 모습을 보였다.

독립운동 제1세대가 사라지고 새로 등장하는 세대는 지압에 대한 존경 표현이 새롭다. 100세가 되는 2011년에는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후세에 보여줄 보구엔지압기넙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베트남의 이순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지압의 공로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기억은 앞으로 더욱 새롭게 되새겨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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