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날씨가 바꾼 익사이팅 세계사] 기상이변, 현재진행형의 위협

지역내일 2013-09-06 (수정 2013-09-06 오후 1:46:59)
윤재석 언론인

지난여름은 정말로 잔인했다. 47일이라는 기상 관측이래 최장을 기록한 폭염에 기상청 슈퍼컴퓨터마저 비웃은 게릴라성 국지호우로 세인들은 물론 기상관계자들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게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주 변덕스런 아열대 기후로 변해버렸다. 그런가 하면 2011년 겨울엔 보기드문 혹한이 엄습했다. 2010년 12월부터 시작된 혹한은 무려 39일간 지속됐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 같은 기상이변은 현재진행형의 위협이다.

익사이팅 세계사날씨는 역사를 바꾼다. 저자가 '날씨가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2010년)'와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2012년)'에 이어 속편으로 낸 이 책은 문명의 흥망, 전쟁의 승패, 역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날씨와 기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저술이다. 오랜 세월 기상전문가이자 기상 장교로 일해 온 저자는 날씨와 전쟁, 기후와 문명의 상관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전쟁에서 날씨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였다면 기후는 문명을, 나아가 역사를 바꾸는 큰 요소라는 것이다. 마야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대가뭄으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었다. 소빙하기가 닥쳤을 때 그린란드에 살던 바이킹들은 생존하지 못했지만 기후변화에 적응한 이누이트족은 살아남았다. 핏케언 섬과 마오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 문명은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졌지만 티코피아 섬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옥하게 건재하고 있다.

◆기후, 문명과 역사를 바꾸다 = 기원 전 2350년 경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에 세워진 아카드 제국은 약 150년 동안 번성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배경에는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땅이 말라붙고, 사람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났으며, 인구이동으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면서 멸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1993년 고고학자와 지질학자, 토양과학자로 이뤄진 미국과 프랑스 공동연구팀이 토양 수분을 최첨단 기법으로 분석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아카드뿐만이 아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의 자손인 악숨이 고대 에티오피아에 세워 유향 생산으로 번영을 누렸던 악숨 왕국도, 앙코르와트의 벽에 새겨진 찬란한 문명도 대가뭄으로 인한 기근으로 멸망하고 만다. 그 외에도 비로 멸망한 우바르, 소빙하기 한파로 멸망한 그린란드의 바이킹 정착지, 대건조기가 무너뜨린 남미의 티와나쿠와 아나사지 문명 등의 흥망성쇠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다.

날씨를 잘 이용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위왕 조조 휘하의 우금과 형주 증구천에서 대치하고 있던 관우가 증구천 상류를 막았다가 집중 호우 속에서 둑을 무너트려 조조군을 대패시킨 거나,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술레이만 1세의 헝가리 정복과 오스트리아 공격, 프레베자 해전 모두 날씨를 이용한 전법이었다.

한편 악천후를 이용해 전세를 유리하게 바꾸는 전술도 고래로부터 활용돼온 날씨전법.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고원지대에서 살던 몽골 칭기즈칸의 아들 오고타이는 스스로의 운신이 쉽지 않은 여름의 진흙뻘을 피해 한겨울인 12월 볼가강을 건너 러시아를 공격해 이듬해 3월 북부러시아를 손아귀에 넣는다. 영국 명예혁명 당시 오렌지 공 윌리엄은 프로테스탄트 바람(Protestant winds)의 도움을 받아 잉글랜드 페번지 상륙에 성공한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짙은 안개 덕분에 가능했다.

문제는 자연(또는 날씨)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한쪽이 알고 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떼어논 당상이다. 남유다의 히즈키야 왕은 라기스성을 함락한 후 예루살렘 성을 포위한 아시리아의 센나케리브 왕에 맞서 싸우기 위해 대규모 수로공사를 감행한다. 성 밖 기혼샘에서 533m의 터널을 뚫어 성 안 실로암못으로 안정적인 물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건조한 기후에서 성 밖의 센나케리브 왕은 물 부족으로 고생하다 결국 퇴각했다. 고대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군은 전쟁 중 강한 폭풍, 바람, 이상 조류 등의 기상기후로 말미암아 싸움에서 패해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한 때 만주의 강국이었던 부여 왕 대소는 한랭 기후와 가뭄으로 인한 식량해결을 위해 고구려에 조공을 바치라고 했으나 거절당한다. 이를 기화로 기원 전 6년 군사 5만을 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갑작스런 혹한과 폭설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했다. 서기 13년 제2차 공격 때도 고구려 수도 국내성 진출을 눈앞에 두고 심야 강추위 속에서 무휼(대무신왕)에게 대패하고 만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치욕스런 전쟁으로 꼽히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세는 모두 추위가 결정지었다. 1592년 4월 700여 척의 전함으로 조선을 침공한 왜군은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개전 두달 만인 6월 중순 조선팔도를 거의 유린했으나 12월 25일 명나라 군 5만이 압록강을 건너오자 꼬리를 내리고 패주한다. 바로 추위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탓이다. 1636년에 발생한 병자호란 역시 추위에 강한 청나라 군대가 12월 압록강이 얼었을 때 쳐들어올 것을 미리 알지 못한 결과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는 뜻밖에 날씨로 인해 승패가 갈린 사례는를 수도 없이 많다.

결국 기후는 또 다른 전장(戰場)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은 세금부과였지만 그 뒤론 한랭기후가 원인이었다. 추운 날씨로 영국 경제가 파탄 직전에 이르자 전비 충당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아메리카 식민지에 점점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게 됐다. 하지만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의 병력은 수적으로나 무장에서 절대 열세였다. 1776년 12월 26일,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강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 절호의 찬스를 노칠 워싱턴이 아니었다. 그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얼음이 둥둥 떠내려가는 델라웨어 강을 건너 영국군을 공격했다. 소수의 오합지졸이 다수의 용맹스런 영국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강추위 속 기습 덕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도-중국 항공단 조종사들은 인도 북동부 아샘 지방에서 중국의 쿤밍(昆明)까지 800㎞나 이어진 험난한 공로를 넘는 극적인 공수작전을 통해 미군과 중국군에게 보급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날씨얘기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역사 얘기다. 이는 순전히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대학에서 기상학을 공부하고 공군 기상장교로 복무한 경력을 지닌 그는, 현재 날씨정보회사의 기상정보본부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는 천생 '기상쟁이'다.

플래닛미디어 / 반기성 지음 /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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