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산상봉 명단 확정 | 60여년만에 만남] “동춘이는 가고 … 금순아 화춘아 곧 만나자”

지역내일 2013-09-17 (수정 2013-09-17 오후 1:03:44)
두 동생 상봉 예정 장 춘 할아버지 … 1951년 군 징집 후 63년만에 결국 상봉

"아버지,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에 들었답니다!"

"됐구나……."

큰아들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대상자 확정 소식을 들은 순간 장 춘(81) 할아버지는 몸에 힘이 탁 풀렸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낸 뒤 1차 500명에 선발되고 이후 250명에, 16일 최종 100명 발표를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애가 탔던가. 엊그제 세 동생 중 큰 동생이 이미 세상을 등졌다는 생사확인 결과를 듣고 가슴은 또 얼마나 무너졌던가.

장춘
<사진: 고혈압으로 쓰러져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아직 죽으면 안 된다. 동생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사진 박소원 기자>

이제 다음주면 금강산에서 두 동생을 만날 수 있게 됐는데도 장 할아버지는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가 않는다. 장 할아버지는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며 "직접 마주 앉아 서로를 봐야 진짜구나 싶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사비를 들여 동생의 사진과 편지를 받아보며 생사를 확인하긴 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 할아버지는 1951년 봄 동생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1년 3월 평온했던 함경북도의 한 시골마을로 징집영장이 날아들었다. 당시 19세였던 장 할아버지는 영장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당시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순간을 회상하면 아직도 목이 멘다.

장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나를 배웅하면서 '널 이제 언제 만나겠느냐'고 하시면서 돌아서서 우셨다.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군대 갔다 올게요. 그동안 애들 잘 돌봐주세요'라고 말씀 드렸는데 돌아서니까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 회고했다.

장 할아버지가 14~15세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장 할아버지와 세 동생들은 할아버지와 삼촌네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던 신세였다. 장 할아버지는 동생들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동생들은 전쟁이 뭔지, 군대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였다. 바로 밑에 동생이 동춘이, 그 아래가 금순이, 막내가 화춘이. 4남매가 모두 세 살 터울이었다.

그렇게 동생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지 62년이 지났다. 그동안 매번 돌아오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 음식을 먹다가도 동생들은 배곯지 않고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는 "명절에 제사는 지내지만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텔레비전에서 고향 가는 사람들 보면서 눈물 흘리고 그랬지"라며 울먹였다.

장춘
<사진: 지난 2006년 사비를 들여 동생의 사진과 편지를 받아보며 생사를 확인하긴 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박소원 기자>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이따금씩 열렸지만 동생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혹시나 북에 있는 동생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 생길까봐 신청할 엄두를 못 냈다.

그렇다고 동생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아직 죽으면 안 된다. 동생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장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다 동생 만나야지 하는 그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빨리 통일이 돼야 할 텐데요'라는 기자의 말에 장 할아버지는 "통일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서로 왕래나 하면서 소식 전하고, 편지나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르지, 그렇게 왔다갔다 하다보면 독일처럼 벽이 무너질 수도 있고…"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장 할아버지의 고향인 함경북도 경선은 바다가 가까웠다. 장 할아버지는 상봉일이 다가올수록 강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동생들과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막내 화춘이는 코를 질질 흘리던 어린 아이였다. 이제 그 어린 아이는 없고 그만한 손주를 가진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그 강가에서 뛰놀던 때처럼 장 할아버지 형제들은 이제 곧 서로를 얼싸안으며 신나게 지난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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