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열차, 운문산 운무에 빠져들다] “벌 받으러 온 줄 알았는데 수학여행보다 재밌어요”

지역내일 2013-09-25 (수정 2013-09-25 오후 1:51:18)
간섭보다 따뜻한 관심 필요 …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껴"

"솔직히 벌 받으러 가는 줄 알았어요. 학교에서 사고(?)좀 쳤거든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고 편했어요." 1박 2일 힐링열차 캠프를 마친 서창호(중2·가명)군은 "선생님들이 일방적인 강요나 지시를 하지 않아 생활하기 편했다"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속마음을 털어놨다.

9월 14일 오전 8시 43분 무궁화호 열차가 대전역을 출발했다. 열차는 굵은 빗줄기를 뚫고 경산역을 향해 달렸다. 아이들은 창밖을 바라보거나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열차 안은 훈련소로 가는 입영열차처럼 썰렁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학교생활 중 사고 친 죄(?)로 힐링열차를 탔다고 말했다.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몇몇 아이들은 선생님 강요로 힐링열차를 탔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대부분 아이들은 체벌수준에 해당하는 극기훈련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군은 "욱하는 마음에 친구를 때렸는데, 곧바로 실수라고 생각했고 친구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에 알렸고 그 후로는 학교와 집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실수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제아가 되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7번째 '힐링열차'는 대전시내 중 2학년 남학생 40여명이 참여해 경북 청도 운문산자연휴양림에서 1박 2일로 진행했다.


힐링열차

<사진: 힐링열차 안에서 열린 조별노래자랑에서 '먼지가 되어'를 열창하고 있는 학생들(위 왼쪽)과 숲에서 눈을 가린 채 친구 손을 잡고 걷고 있는 학생(위 오른쪽). 힐링열차 캠프를 마친 학생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아래) 청도 = 전호성 기자>

운문산 기를 앞도한 아이들의 활동력 = 열차가 출발하자 기타리스트가 멋진 연주를 시작했다. 기타선율이 달리는 기차소리와 어울려 열차안에 잔잔하게 깔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무관심'. 잠시 후 진행교사가 조별 노래자랑을 제안하자 몇 몇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민호(중2·가명)군이 기타반주에 맞춰 '먼지가 되어'를 열창했다. 아이들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더니 박수를 치며 따라 불렀다. 아이들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노래 몇 곡을 부르는 사이 경산역에 도착 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신기하게도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멈추는가 했더니 어느새 하얀 운무로 변했다. 운무는 운문산을 넘지 못하고 산허리를 휘감으며 산수화를 연출했다.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고 숲길을 뛰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열차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친구' 만드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휴양림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나뭇잎에 물감을 칠한 후 하얀 티셔츠에 찍어내는 '나뭇잎 티셔츠 만들기' 체험을 했다.

처음에는 관심 없어 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나뭇잎으로 다양한 모양을 연출해 나만의 티셔츠를 만들었고 조별 패션쇼도 열었다. 이민규(중2·가명)군은 "제 티셔츠는 착시현상을 이용해 만들었어요. 위에서 보면 사람얼굴이고 아래에서 보면 빨갛게 익은 과일이에요"라며 땀을 닦는다.

곧바로 운동장으로 나간 아이들은 축구공과 한판 씨름을 하며 스트레스를 털어냈다. 후진기어가 없다는 '중2' 아이들의 왕성한 활동력은 운문산의 기를 압도했다.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은 조별로 나눠 저녁식사 준비에 열중했다.

똑같은 식사재료를 받았지만, 조별로 창의성을 발휘해 전혀 다른 반찬을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난간에 걸터앉아 여유를 즐겼고, 스텝들이 구워주는 바비큐를 받아먹으며 깔깔댔다.

<사진: 경북 청도군 운문산 자연휴양림에서 진행한 힐링열차 캠프에 참석한 아이들이 숲해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청도 = 전호성 기자>

식물 다양성과 조화에 '탄복'=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다음날 숲해설가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처음들어 보는 숲 이야기가 신기했다. 생물의 다양성과 조화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조선시대 사약 재료로 사용됐다는 천남성이 성전환식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초피나무 열매와 줄기 쓰임새에 대해서도 들었다. 밤나무 줄기에 비누방울을 찍어 불자 긴 막대모양의 거품 띠가 만들어졌다. 해설가는 식물의 물관과 체관에 대한 공부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친구 손을 꼭 잡고 산길 걷기 체험도 했다.

나영환군은 "학교 수업시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을 느꼈다"며 "수학여행보다 훨씬 즐겁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나군은 이번 힐링열차를 통해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1박 2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채홍길 대전시교육청 학교생활안전과장은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학생이라는 본질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아이들 자존감을 찾아주는 것이 교육의 진정한 좌표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강요나 지시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의 깊은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가정과 학교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과장은 "아이들은 간섭하는 걸 매우 싫어한다. 틀렸다고 질책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힐링열차는 대전시교육청과 코레일,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가 학생들의 '자아찾기'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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