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왕위주장자’들은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지난 달 31일(금),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이 연극은 노르웨이의 유명한 극작가 헨리 입센의 역사극으로 154년 만에 국내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며 시대적 배경은 군웅이 할거하던 중세 노르웨이로 왕의 자리라는 최고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제목 자체만으로도 최근의 대선 정국과 맞물려 관심을 가게 만드는 작품이다.
텅 빈 무대,뿌리 드러낸 채 매달린 나무가 유일한 장식
연극 ‘왕위주장자’가 공연되는 무대의 바닥에는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벽은 꽉 닫힌 채 수많은 문들로 연결돼 있고 그 텅 빈 무대 위에는 뽑혀진 채 그대로 뿌리를 드러낸 나무 한 그루가 유일한 장식이다.그 허무한 듯 텅 빈 무대 위로20여명이 넘는 인간 군상들이 들락거리면서 연극 ‘왕위 주장자’들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 작품의 연출가 김광보는 빈 공간에서 연극을 만드는 연출가로 유명하다.빈 공간에서 오로지 배우가 돋보이는 연출을 해온 탓이다.그는 이번 무대 역시 거꾸로 매달린 나무뿌리로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의 모습 혹은 권력의 근원을 그리고자 했다고 이야기한다.
시대를 초월해 현 상황에 충실한 대사와 상황 설정 돋보여
이 작품은 시대적으로는 15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엇비슷하게 맞물려 마치 헨리 입센이 한국에서 일어날 일을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되었다는 게 연출가의 변이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충실하기 보다는 오히려 지금의 현 상황에 충실한 대사와 상황 설정이 다소 암시되어 있다.
“더 이상 이름뿐인 왕은 필요치 않아…”,“왕이 되기 위해 저렇게 비굴해야 하나…” 등 연극 속의 대사는 권력자의 자세와 권력자가 되기 위한 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왕위를 지키려는 호콘 왕,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스쿨레 백작의 내면의 갈등이 그들의 권력의지와 결부돼 어떻게 전개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지닌 끊임없는 의심의 결말
이 연극의 주요 캐릭터는 호콘 왕, 스쿨레 백작 그리고 니콜라스 주교다. 호콘 왕은 자신이 왕이라는 소명의식이 확실한 인물이다.왕의 생각으로 왕의 말을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호콘 은 자신이 절대 권력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진정한 권력을 신에게 받았다는 확신으로 절대 권력을 펼치는 군주다.이에 반해 스쿨레 백작은 권력의 최고 왕좌인 왕위에 오르기 위해 오랜 세월 욕망을 멈추지 않고 마침내 그 권력을 손에 거머쥔다.그래서인지 호콘에 비해서는 오히려 더 인간적인 왕의 모습으로 그려진다.하지만 권력을 가진 후에는 자신의 권력과 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고 시민들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니콜라스 주교는 스쿨레 백작의 옆에서 그의 의심을 부추기고 호콘과의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한다. 극 ‘왕위주장자’는 결국 스쿨레가 지상으로 보내진 신의 의붓아들이었다고 규정지으며 막을 내린다.마지막 무대는 등장인물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꿈틀거리며 저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인간의 군상을 보여줬다.또한 끝까지 텅 빈 무대를 지켜내는 나무뿌리는 권력의 공허함과 더불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자들의 엉켜있는 내면의 갈등을 상징하는 듯하다.연극 ‘왕위 주장자들’은 이달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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