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창립10주년 기념 및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국제법정을 위한
가을콘서트가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콘서트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개최돼 벌써 400회를 훨씬 넘긴 수요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중고교학생들을 비롯해 그동안 정대협의 활동에 함께했던 사회 각계인사들이 참여했다.
참가가수 공연과 영상물 상연등의 행사와 함께 많은 관객들의 눈길을 모은 것은 놀이패 ‘한두레’의 김옥
희씨가 펼친 ‘그때 그곳에’라는 모노극.
‘남지나로 끌려가는 배안에서 16살 순이는 자신에게 닥칠 무서운 운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채 돈많이
벌어 고향에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밤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조선처녀들의 비명소리, 거세게 문
여닫는 소리. 순이의 마음속에 한발자국씩 공포가 다가서고 결국 순이의 방에도 일본군인들이 들이닥친 뒤
생지옥 같은 강제위안부의 나날이 시작된다.
끔찍스런 세월이 흘러 일본이 패망하고 갖은 고생끝에 돌아온 고향마을. 그러나 순이는 선뜻 집에 가지 못하
고 마을입구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먼 발치에서 나타난 엄마의 모습. 오랜세월 보고팠던 그 얼굴이지만 순
이는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입을 막은 채 소리죽여 오열하다 결국 ‘부모님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만
을 남기고 큰절을 올린 뒤 돌아선다.’
김씨가 두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쓸쓸히 돌아서는 순이의 모습을 연기할 때 관객들은 모두 그 시절의 순이가
되어 비통함과 가슴아픔으로 숙연했다. 모두가 김씨를 통해 강제위안부의 처절했던 삶들을 다시 한번 가슴
속으로 느끼는 듯 했다.
김씨와 정대협의 인연은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소리없는 만가’라는 마
당극에 김씨가 주인공 순이역을 맡으면서부터. 공연을 통해 강제위안부의 고통스런 삶을 알게된 김씨는 수
요시위에도 참가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해왔다.
김씨는 “처음엔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지만 직접 만나보고 듣고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뻔뻔스런 일본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김씨는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명예회복과 일본의 진정한 사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배우로서 최대한 함께 하겠
다”고 말했다.
/ 이호석 기자 arisan@naeil.com
가을콘서트가 지난 1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콘서트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개최돼 벌써 400회를 훨씬 넘긴 수요시위에 참여했던 많은
중고교학생들을 비롯해 그동안 정대협의 활동에 함께했던 사회 각계인사들이 참여했다.
참가가수 공연과 영상물 상연등의 행사와 함께 많은 관객들의 눈길을 모은 것은 놀이패 ‘한두레’의 김옥
희씨가 펼친 ‘그때 그곳에’라는 모노극.
‘남지나로 끌려가는 배안에서 16살 순이는 자신에게 닥칠 무서운 운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채 돈많이
벌어 고향에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밤마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조선처녀들의 비명소리, 거세게 문
여닫는 소리. 순이의 마음속에 한발자국씩 공포가 다가서고 결국 순이의 방에도 일본군인들이 들이닥친 뒤
생지옥 같은 강제위안부의 나날이 시작된다.
끔찍스런 세월이 흘러 일본이 패망하고 갖은 고생끝에 돌아온 고향마을. 그러나 순이는 선뜻 집에 가지 못하
고 마을입구에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먼 발치에서 나타난 엄마의 모습. 오랜세월 보고팠던 그 얼굴이지만 순
이는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입을 막은 채 소리죽여 오열하다 결국 ‘부모님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만
을 남기고 큰절을 올린 뒤 돌아선다.’
김씨가 두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쓸쓸히 돌아서는 순이의 모습을 연기할 때 관객들은 모두 그 시절의 순이가
되어 비통함과 가슴아픔으로 숙연했다. 모두가 김씨를 통해 강제위안부의 처절했던 삶들을 다시 한번 가슴
속으로 느끼는 듯 했다.
김씨와 정대협의 인연은 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소리없는 만가’라는 마
당극에 김씨가 주인공 순이역을 맡으면서부터. 공연을 통해 강제위안부의 고통스런 삶을 알게된 김씨는 수
요시위에도 참가하는 등 열성적으로 활동에 임해왔다.
김씨는 “처음엔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지만 직접 만나보고 듣고하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뻔뻔스런 일본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김씨는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명예회복과 일본의 진정한 사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배우로서 최대한 함께 하겠
다”고 말했다.
/ 이호석 기자 aris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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