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1> 진안에서 임실, 순창까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이 빼앗기는 강
발원지 파헤치는 도로공사 … 하루 200만톤이 김제·만경으로, 본류로는 겨우 3만5000톤
태풍 뒤의 궂은 비를 맞으며 섬진강 발원지 고중대 마을을 찾아가는 길, 마령―장수간 4차선 도로공사가 팔공산(1151m) 꼭대기까지 올라가 발원지계곡을 온통 파헤치고 있다.
고중대 마을은 이제 흔적만 남아 골재 야적장으로 변해버렸고 끝까지 상투를 고집하며 마을을 지키던 이기우(2000년 취재 당시 75세)옹과 염정열(당시 73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도로공사장 끝 계곡 상부에는 대낮에도 찬 기운이 스며나오는 샘 하나가 콘크리트로 봉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공사 관계자는 “상투 튼 할아버지는 지난 4월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며 “섬진강 발원지가 이 계곡이란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000
섬진강의 발원지를 두고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하고, 장수 사람들은 수분재(水分峙)라고 한다.
실제 마이산 동쪽에 떨어지는 물은 금강으로 가고, 서쪽에 떨어지는 물은 섬진강으로 간다. 또 수분재 북쪽 물은 금강으로, 남쪽 물은 섬진강으로 간다. 《택리지》나 《연려실기술》도 섬진강의 발원지를 마이산으로 보았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지지자료》는 ‘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 갈도까지 본류 길이는 212. 3km’라고 기록하는데, 부귀산(806.4m)은 진안읍 북서쪽 정곡리 뒷산이다. 이후 건설부에서 만든 《하천편람》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전국하천조사서》도 이 발원지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나 섬진강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가장 긴 물줄기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151m) 자락에서 시작된다. 근래 들어 원신암 마을 동북쪽 천산데미(1080m) 아래 ‘데미샘’을 최장(最長) 발원지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편협한 해석으로 보인다.
팔공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모두 세 줄기다. 왼쪽 물줄기는 팔공산 서쪽 마령치에서, 중심 물줄기는 고중대 마을 윗 계곡에서, 오른쪽 물줄기는 원신암 마을 동북쪽에서 시작된다. 이 세 줄기 모두 신암리 수구(水口)에서 만나 반송리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반송리는 정몽주의 생질이었던 만육 최 만 선생의 유허비가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비록 작은 물줄기지만 섬진강 본류 옆으로 아담한 정자들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윽한 풍광을 이룬다. 이 물줄기를 이 일대 사람들은 ‘제룡강’이라 부른다.
반송리를 지난 제룡강은 마이산을 향해 정북쪽으로 흘러든다. 성수산(1059m) 물줄기를 더하고 부귀산과 마이산의 물줄기를 받아 어느 정도 강의 모습을 갖춘 섬진강은 성수면 일대의 아름다운 산악지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까지 내려가는 섬진강 줄기를 이곳 사람들은 ‘오원강’이라 부른다. 신선들이 까마귀와 놀던 강이라는 뜻이다. 관촌을 지난 섬진강은 넓은 평야지대(신평들)를 만나 ‘신평천’이 된다. 신평천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임실 용암리 중기사 석등’(보물 제267호)을 지나 옥정호(운암호)로 들어간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떠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 1=""> 중에서
총저수량 4억6천6백만㎥, 섬진강 본류에 들어선 이 거대한 호수의 물은 그러나 대부분 섬진강 수계 밖으로 유출된다. 두 개의 취수구를 통해 초당 24톤, 하루 200만톤의 물이 김제평야와 계화도 간척지의 관개용수, 전주시의 생활용수로 공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순창군 쪽으로 내려가는 섬진강 본류엔 강물이 바닥이다. 섬진강댐에서 하류로 방류되는 ‘하천유지용수’는 하루 3만5000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곳 수자원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2001년 섬진강댐의 총 방류량 4억 9000만톤 중 본류로 흘러간 수량은 2000만톤에 불과했다. 나머지 4억 7000만톤은 동진강 수계로 방류됐다.
이런 탓에 옥정호(섬진강댐) 하류에서 순창을 지나 곡성군 경계에 이를 때까지, 섬진강은 제대로 된 강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임실 덕치의 천담리, 구담리 적성강 구간조차도 수량이 너무 적어 그 맛을 느끼기 힘들 정도다. 강 바닥엔 미끌미끌한 물이끼가 끼어 있고, 기기묘묘한 강변 암반지대에는 허옇게 말라붙은 오염물질 투성이다.
‘사람만이 희망’인가, ‘문제’인가 000
원래 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바닥이 깎이고, 침적토가 쌓이고,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때로는 마르기도 한다. 자연 생태계와 사람들의 문화는 이런 강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정화시키며 지난 수천년 동안 진화해왔다.
그러나 댐은 홍수와 갈수(渴水)라는 강의 변화를 통제한다. 침전물과 영양소를 가두고 물고기들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의 이동을 막아버린다. 댐은 강물의 온도와 화학적 조성을 바꾸고, 침식과 퇴적과 같은 지질학적 과정까지 방해한다.
건설교통부는 이곳 순창군 적성면에서 임실군 강진면 일대에 저수량 1억 5000만톤 규모의 적성댐을 2011년까지 건설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적성강 구간이 자칫 수몰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노래했지만,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곳곳에서 우리는 ‘사람만이 문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캡션>
섬진강은 유역면적(4,897㎢)과 본류의 길이(225km)로 볼 때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에 이어 4번째로 크고 긴 강이다. 물줄기는 전북 진안·임실·순창·남원, 전남 화순·장흥·보성·곡성·구례·순천·광양, 경남 하동 등 3개 도(道), 12개 지자체에 걸쳐 있고,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사이로 흘러 남해바다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인 지리산에서 호남정맥의 동쪽 끝인 광양 백운산까지, 천리가 넘는 산줄기 안의 68개 물줄기가 모인 강이다. 이 긴 산자락 계곡 계곡이 모두 섬진강의 발원지인 셈이다.
마암분교를 지나 정읍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산외면 종산리에서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관개용 수로로 내려가는 엄청난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이 물줄기는 칠보발전소 발전용수와 함께 ‘징게망게’(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김제·만경 평야를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3만헥타르의 농경지를 적신다. 섬진강에서 빠져나간 물이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의 젖줄을 이루는 것이다.
관개용수 초당 24톤, 약 200만톤
유지수 초당 0.4톤, 하루 3만5000톤
작년 기준 총방류량 4억9000만톤 중 유지용수 2000만톤
최대 통수량 0.7톤 하루 5만톤
7만톤이란 수량은 섬진강댐의 평상시 최대 방류량이다. 홍수가 크게 나서 댐 위에 있는 수문을 여는 경우가 아니라면, 섬진강 본류로 가는 물길은 직경 30cm의 조그만 파이프밖에 없다. 방류량을 줄일 수는 있어도 늘일 수는 없는 것이다.
“3백만톤과 7만톤은 너무 심한 차이가 아니냐”라는 질문에 이곳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옥정호 물은 소유권이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옛 동진농조)에 있다”며 “요즘 같은 갈수기에는 상류에서 유입되는 수량이 5만여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천유지용수 7만톤은 적은 양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곳곳에서 수난당하는 마을 지킴이들
사람들은 섬진강의 물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다.
덕치면 천담마을의 경우, 도로공사로 강 건너 있던 ‘보지샘’(여성 성기 형상의 샘)이 사라졌고, 다리 공사 이후 마을 입구의 장승마저 감쪽같이 없어졌다. 섬진강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천담리 당산나무’는 경지정리와 함께 가지가 다 잘린 채 옮겨졌다.
임실군 청웅면 옥전리 ‘할아버지 장승’은 5년 전 ‘할머니 장승’을 도둑맞아 새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지난 3월에는 이 할아버지 장승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할아버지 장승을 새로 깎아 세웠는데, 석수장이들의 실수인지 할아버지가 더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구담계곡의 ‘요강바위’는 3년 전 도난당해 경기도 용인까지 옮겨지는 수난을 당했다. 당시 범인들은 “마을까지 길을 닦아주겠다”며 대형 트럭과 크레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낸 다음, 50톤이 넘는 요강바위를 훔쳐갔다고 한다.
다행히 언론 보도와 시민 제보로 요강바위는 제자리를 찾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그 일을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 양 분노하고 있었다.캡션>섬진강>섬진강-1>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많이 빼앗기는 강
발원지 파헤치는 도로공사 … 하루 200만톤이 김제·만경으로, 본류로는 겨우 3만5000톤
태풍 뒤의 궂은 비를 맞으며 섬진강 발원지 고중대 마을을 찾아가는 길, 마령―장수간 4차선 도로공사가 팔공산(1151m) 꼭대기까지 올라가 발원지계곡을 온통 파헤치고 있다.
고중대 마을은 이제 흔적만 남아 골재 야적장으로 변해버렸고 끝까지 상투를 고집하며 마을을 지키던 이기우(2000년 취재 당시 75세)옹과 염정열(당시 73세)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도로공사장 끝 계곡 상부에는 대낮에도 찬 기운이 스며나오는 샘 하나가 콘크리트로 봉해져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공사 관계자는 “상투 튼 할아버지는 지난 4월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며 “섬진강 발원지가 이 계곡이란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000
섬진강의 발원지를 두고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하고, 장수 사람들은 수분재(水分峙)라고 한다.
실제 마이산 동쪽에 떨어지는 물은 금강으로 가고, 서쪽에 떨어지는 물은 섬진강으로 간다. 또 수분재 북쪽 물은 금강으로, 남쪽 물은 섬진강으로 간다. 《택리지》나 《연려실기술》도 섬진강의 발원지를 마이산으로 보았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지지자료》는 ‘전북 진안군 우곡리 부귀산에서 발원하여 경남 하동 갈도까지 본류 길이는 212. 3km’라고 기록하는데, 부귀산(806.4m)은 진안읍 북서쪽 정곡리 뒷산이다. 이후 건설부에서 만든 《하천편람》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전국하천조사서》도 이 발원지 개념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나 섬진강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가장 긴 물줄기는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팔공산(1151m) 자락에서 시작된다. 근래 들어 원신암 마을 동북쪽 천산데미(1080m) 아래 ‘데미샘’을 최장(最長) 발원지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편협한 해석으로 보인다.
팔공산 자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는 모두 세 줄기다. 왼쪽 물줄기는 팔공산 서쪽 마령치에서, 중심 물줄기는 고중대 마을 윗 계곡에서, 오른쪽 물줄기는 원신암 마을 동북쪽에서 시작된다. 이 세 줄기 모두 신암리 수구(水口)에서 만나 반송리쪽으로 흘러 내려간다.
반송리는 정몽주의 생질이었던 만육 최 만 선생의 유허비가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비록 작은 물줄기지만 섬진강 본류 옆으로 아담한 정자들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윽한 풍광을 이룬다. 이 물줄기를 이 일대 사람들은 ‘제룡강’이라 부른다.
반송리를 지난 제룡강은 마이산을 향해 정북쪽으로 흘러든다. 성수산(1059m) 물줄기를 더하고 부귀산과 마이산의 물줄기를 받아 어느 정도 강의 모습을 갖춘 섬진강은 성수면 일대의 아름다운 산악지대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임실군 관촌면 사선대까지 내려가는 섬진강 줄기를 이곳 사람들은 ‘오원강’이라 부른다. 신선들이 까마귀와 놀던 강이라는 뜻이다. 관촌을 지난 섬진강은 넓은 평야지대(신평들)를 만나 ‘신평천’이 된다. 신평천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임실 용암리 중기사 석등’(보물 제267호)을 지나 옥정호(운암호)로 들어간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떠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김용택 <섬진강 1=""> 중에서
총저수량 4억6천6백만㎥, 섬진강 본류에 들어선 이 거대한 호수의 물은 그러나 대부분 섬진강 수계 밖으로 유출된다. 두 개의 취수구를 통해 초당 24톤, 하루 200만톤의 물이 김제평야와 계화도 간척지의 관개용수, 전주시의 생활용수로 공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순창군 쪽으로 내려가는 섬진강 본류엔 강물이 바닥이다. 섬진강댐에서 하류로 방류되는 ‘하천유지용수’는 하루 3만5000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곳 수자원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2001년 섬진강댐의 총 방류량 4억 9000만톤 중 본류로 흘러간 수량은 2000만톤에 불과했다. 나머지 4억 7000만톤은 동진강 수계로 방류됐다.
이런 탓에 옥정호(섬진강댐) 하류에서 순창을 지나 곡성군 경계에 이를 때까지, 섬진강은 제대로 된 강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김용택 시인이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임실 덕치의 천담리, 구담리 적성강 구간조차도 수량이 너무 적어 그 맛을 느끼기 힘들 정도다. 강 바닥엔 미끌미끌한 물이끼가 끼어 있고, 기기묘묘한 강변 암반지대에는 허옇게 말라붙은 오염물질 투성이다.
‘사람만이 희망’인가, ‘문제’인가 000
원래 강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바닥이 깎이고, 침적토가 쌓이고,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때로는 마르기도 한다. 자연 생태계와 사람들의 문화는 이런 강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정화시키며 지난 수천년 동안 진화해왔다.
그러나 댐은 홍수와 갈수(渴水)라는 강의 변화를 통제한다. 침전물과 영양소를 가두고 물고기들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의 이동을 막아버린다. 댐은 강물의 온도와 화학적 조성을 바꾸고, 침식과 퇴적과 같은 지질학적 과정까지 방해한다.
건설교통부는 이곳 순창군 적성면에서 임실군 강진면 일대에 저수량 1억 5000만톤 규모의 적성댐을 2011년까지 건설할 계획을 추진중이다.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적성강 구간이 자칫 수몰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노래했지만,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곳곳에서 우리는 ‘사람만이 문제’임을 절감하게 된다.
<캡션>
섬진강은 유역면적(4,897㎢)과 본류의 길이(225km)로 볼 때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에 이어 4번째로 크고 긴 강이다. 물줄기는 전북 진안·임실·순창·남원, 전남 화순·장흥·보성·곡성·구례·순천·광양, 경남 하동 등 3개 도(道), 12개 지자체에 걸쳐 있고,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 사이로 흘러 남해바다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백두대간의 남쪽 끝인 지리산에서 호남정맥의 동쪽 끝인 광양 백운산까지, 천리가 넘는 산줄기 안의 68개 물줄기가 모인 강이다. 이 긴 산자락 계곡 계곡이 모두 섬진강의 발원지인 셈이다.
마암분교를 지나 정읍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산외면 종산리에서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관개용 수로로 내려가는 엄청난 물줄기를 만나게 된다. 이 물줄기는 칠보발전소 발전용수와 함께 ‘징게망게’(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김제·만경 평야를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3만헥타르의 농경지를 적신다. 섬진강에서 빠져나간 물이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의 젖줄을 이루는 것이다.
관개용수 초당 24톤, 약 200만톤
유지수 초당 0.4톤, 하루 3만5000톤
작년 기준 총방류량 4억9000만톤 중 유지용수 2000만톤
최대 통수량 0.7톤 하루 5만톤
7만톤이란 수량은 섬진강댐의 평상시 최대 방류량이다. 홍수가 크게 나서 댐 위에 있는 수문을 여는 경우가 아니라면, 섬진강 본류로 가는 물길은 직경 30cm의 조그만 파이프밖에 없다. 방류량을 줄일 수는 있어도 늘일 수는 없는 것이다.
“3백만톤과 7만톤은 너무 심한 차이가 아니냐”라는 질문에 이곳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옥정호 물은 소유권이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옛 동진농조)에 있다”며 “요즘 같은 갈수기에는 상류에서 유입되는 수량이 5만여톤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천유지용수 7만톤은 적은 양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곳곳에서 수난당하는 마을 지킴이들
사람들은 섬진강의 물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니었다.
덕치면 천담마을의 경우, 도로공사로 강 건너 있던 ‘보지샘’(여성 성기 형상의 샘)이 사라졌고, 다리 공사 이후 마을 입구의 장승마저 감쪽같이 없어졌다. 섬진강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천담리 당산나무’는 경지정리와 함께 가지가 다 잘린 채 옮겨졌다.
임실군 청웅면 옥전리 ‘할아버지 장승’은 5년 전 ‘할머니 장승’을 도둑맞아 새 장가를 들었다. 그런데 지난 3월에는 이 할아버지 장승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할아버지 장승을 새로 깎아 세웠는데, 석수장이들의 실수인지 할아버지가 더 할머니 같은 모습이다.
구담계곡의 ‘요강바위’는 3년 전 도난당해 경기도 용인까지 옮겨지는 수난을 당했다. 당시 범인들은 “마을까지 길을 닦아주겠다”며 대형 트럭과 크레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낸 다음, 50톤이 넘는 요강바위를 훔쳐갔다고 한다.
다행히 언론 보도와 시민 제보로 요강바위는 제자리를 찾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그 일을 바로 어제 일어난 일인 양 분노하고 있었다.캡션>섬진강>섬진강-1>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