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사람> 스웨덴서 20년 보낸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신필균 이사장
“일 할 기회 줘야 장애인도, 사회도 건강”
지역내일
2002-08-07
(수정 2002-08-08 오후 2:03:58)
부임 한 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신필균(55) 신임 이사장은 어느 해보다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다. 임명장을 받은 당일 부랴부랴 취임식을 끝내고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국회 업무보고와 전국 지역사무소 방문…
“덕분에 최단기간에 공단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압축적인’ 업무 파악을 마친 지금 신 이사장이 생각하는 공단은 ‘장애인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기 위한 가능성과 기회를 창조하는 기관’이다.
“장애인 스스로 정상적인 생활하게 하기 위해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줘야 합니다. 공단은 그 매개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가 훈련받은 일꾼들을 키워내면 사회에선 활용하는 거죠. 장애인들은 자립하고. 조만간 아주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옮길 겁니다.”
사실 부임 초기 ‘낙하산 인사’ 해프닝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공단을 이끌어가긴 신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게 중평이다. 사회복지정책과 인연이 깊은 신 이사장의 이력 때문이다.
신 이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70년대 중반 스웨덴으로 유학간 뒤 20년을 살았다. 그것도 스톡홀름시의회 사회보험청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으로 환경, 복지분야에서 활동했고 99년 중순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들어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정부정책에 반영하고 조율하는 일을 해왔다.
신 이사장은 정서적으로도 적격 논란을 잠재울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신 이사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경증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장애인이죠. 계단 있는 건물을 가장 무서워합니다(웃음). 장애인정책에 관심과 사명감이 높은 것도 제가 장애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 이사장은 20년 가까이 장애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정확히 스웨덴에서 생활한 기간이다. 처음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버스에 올랐는데 뒤이어 정신지체아들이 주루룩 올라탔다. ‘쳐다보지 말아야지’ 해도 자꾸 눈길이 갔다. 그렇게 많은 정신지체아들을 한꺼번에 본 것이 처음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이들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어디에도 움츠러든 모습이 없었다. 스웨덴은 그런 나라였다.
신 이사장은 이런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공단에 접목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을 ‘다른 기능을 가진 인적자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홍보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0%가 장애인이거든요. 120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왜 드라마에는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죠. 대중매체에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등장한다면 장애인 인권헌장이 따로 필요 없을 겁니다.”
/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덕분에 최단기간에 공단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었어요.” ‘압축적인’ 업무 파악을 마친 지금 신 이사장이 생각하는 공단은 ‘장애인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기 위한 가능성과 기회를 창조하는 기관’이다.
“장애인 스스로 정상적인 생활하게 하기 위해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줘야 합니다. 공단은 그 매개역할을 하는 거죠. 우리가 훈련받은 일꾼들을 키워내면 사회에선 활용하는 거죠. 장애인들은 자립하고. 조만간 아주 구체적인 실천계획으로 옮길 겁니다.”
사실 부임 초기 ‘낙하산 인사’ 해프닝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공단을 이끌어가긴 신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게 중평이다. 사회복지정책과 인연이 깊은 신 이사장의 이력 때문이다.
신 이사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70년대 중반 스웨덴으로 유학간 뒤 20년을 살았다. 그것도 스톡홀름시의회 사회보험청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으로 환경, 복지분야에서 활동했고 99년 중순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들어가 시민사회의 의견을 정부정책에 반영하고 조율하는 일을 해왔다.
신 이사장은 정서적으로도 적격 논란을 잠재울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신 이사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경증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장애인이죠. 계단 있는 건물을 가장 무서워합니다(웃음). 장애인정책에 관심과 사명감이 높은 것도 제가 장애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 이사장은 20년 가까이 장애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정확히 스웨덴에서 생활한 기간이다. 처음 버스를 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버스에 올랐는데 뒤이어 정신지체아들이 주루룩 올라탔다. ‘쳐다보지 말아야지’ 해도 자꾸 눈길이 갔다. 그렇게 많은 정신지체아들을 한꺼번에 본 것이 처음이었다. 더 충격적인 건 이들이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어디에도 움츠러든 모습이 없었다. 스웨덴은 그런 나라였다.
신 이사장은 이런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공단에 접목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을 ‘다른 기능을 가진 인적자원’으로 인식하게 하는 홍보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10%가 장애인이거든요. 120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왜 드라마에는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죠. 대중매체에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이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등장한다면 장애인 인권헌장이 따로 필요 없을 겁니다.”
/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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