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언대>사랑방을 생각하며

지역내일 2000-11-21 (수정 2000-11-22 오전 11:09:50)
어린 시절의 겨울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의 연세는 아마도 지금의 나쯤이셨을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늘 아버지 또래의 이웃 어른들이 우리 집 사랑방을 찾아 드셨다. 나는 형제들 가운데서
도 유독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끼는 것을 좋아하여 그 자리에 빠지지 않았고 아버지나 어른들도 말리지 않
으셨다.
어른들이 다 모이면 어머니는 막걸리와 두부, 그리고 김장김치를 내오셨다. 더러는 고구마가 따라나오기도
하였다. 어른들은 음식을 드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농사이야기며 마을의 현안에 대한 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더러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
도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맛난 두부를 김치에 싸서 먹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자리가 무르익으면 어른들은 돌아가면서 옛이야기를 한 자루씩 꺼내 놓으셨다. 더러는 나를 의식해서 으스
스한 이야기들을 실감나게 하시고는 웃음 띤 얼굴로 내 반응을 살피기도 하셨다. 이야기판이 식으면 소리판
이 이어졌다.
역시 돌아가면서 아리랑이나 노래가락 등을 부르는 것이었다. 우리 옆집의 수봉이 아저씨는 유난히도 신명
이 많아서 이야기보따리도 더 많이 풀고 소리도 몇 곡씩 더하셨던 게 기억난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이 떠올라 주위를 둘러보
지만 사랑방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랑방이야 정하면 되고 손님도 부르면 될 일이지만,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각박한 삶의 조건이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집은 혈연이기주의의 강고한 성채가 되어 이웃의 접근을 차단하고, 이웃이 쫓겨난 자리를 TV와 컴퓨터가 차
지하고 있다. 집밖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서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전화방, 찜질방 등등이 만들어졌지만
이들이 사랑방의 기능을 온전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만, 그것도 생산적인 쪽이 아니라 소비적인 쪽, 밝은 쪽이 아니라 어두운 쪽으로 사랑방
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정과 놀이, 그리고 예술이 함께 하던 사랑방문화가 쇠락하고, 비슷한 듯하지만 사실은 다른 방문화가 그것
을 대체하는 과정은 곧 인정의 문화가 비정의 문화로 바뀌어간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이웃과 약자들을 외면한 채 물질의 풍요를 얻었고, 인간다운 삶의 전통들을 폐기해
버렸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생각케 하는 겨울이다.

60년 안동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안동대학교 국학부 교수
민속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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