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를 살려가자면
임춘웅 객원 논설위원
모처럼 베트남에 다녀왔다. 지난 21일 호치민시 리젠드 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 ‘한류(韓流)의 배경과 전망’이란 세미나에 참석키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32년 전인 1970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방문한 이래 처음 베트남 땅을 다시 밟는다는 감회도 작지 않았다.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는 속에 각종 군용기가 가득했던 탄손 나트 공항은 이제 한적한 시골 비행장으로 변해 있었다. 전쟁 중에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혈안이던 공항 요원들의 살기등등한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전쟁과 평화의 다른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하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이었다. 아무런 신호나 통제가 없는 속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오토바이 물결은 마치 송사리 떼처럼 보였다. 베트남의 힘이 바로 저런데 숨어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순간 스쳐갔다.
한류, 분명 역사적 일이나 과장된 일면도
일행 중의 한분이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시민단체가 베트남전 당시에 있었을지도 모를 한국군의 가혹행위에 대해 공동조사를 해보자는 제의를 베트남 정부가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베트남은 과거의 일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한류(한국의 대중문화 유행의 줄임말)도 이런데서 배경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 전투 부대를 파견했던 한국, 비록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바로 그 땅에서 한류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다.
그러나 한국에 알려진 베트남의 한류는 다소 과장된 듯했다. 호치민시의 중심지를 며칠동안 지나다녔지만 한류의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각종 연예인들 사진으로 벽면을 온통 장식해 놓은 어느 음식점에서도 한국 연예인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오락환 주 베트남 대사는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얼마전 중국의 서남부를 여행했는데 그곳에서도 한류를 감지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한류는 중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아직은 대중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제한된 문화현상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한국의 매스컴이 얼마간 과장해서 국내에 알린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한류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더욱 없다. 자기 폄하는 언제나 퇴보적이다. 그것이 비록 얼마간 과장됐다고 해도 한국의 문화가 중국 대만 베트남 몽골 등 인근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연방 지역과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지나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세계에 ‘한류’라는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뿐 아니라 과장됐다고는 해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류의 진원을 한 참석자는 “경제적 풍요와 서구화에 대한 선망”이라고 진단했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지금 역동적으로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한국의 성공적인 선진화 작업이 이들 후발 국가들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나라들은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문화적으로도 커다란 공백기를 경험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누리지 못했던 문화공백을 한류가 메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寒流(한류) 안 되려면 고급화와 상호존중해야
그러나 한류(韓流)가 곧 한류(寒流)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대외경제연구원(KIEF)이 조사한 것을 보면 한류는 앞으로 3년내에 중국에서 사라지고 말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홍콩의 무술영화가 이내 사라지고 만 선례를 보라고 말한다. 한류에 한국 특유의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라든가 지나친 모방, 무분별한 상업적 진출 따위가 한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불길한 전망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대중문화의 질을 높이는 일과 내용의 다양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또 주는 것에 익숙지 않다. 우리가 이들 나라에서 한류라는 선물을 받고 있다면 그들 나라의 문화를 우리도 수용하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주려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위압적 자세나 교만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전 때 터키가 우리를 도왔고 월드컵 때 우리는 터키에 따뜻한 우정을 표했다. 그 대가가 지금 터키에 부는 ‘한국바람’이다. 주고받는 문화, 꾸준한 자기 향상 노력만이 한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임춘웅 객원 논설위원
임춘웅 객원 논설위원
모처럼 베트남에 다녀왔다. 지난 21일 호치민시 리젠드 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 ‘한류(韓流)의 배경과 전망’이란 세미나에 참석키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는 32년 전인 1970년 전쟁이 한창이던 때 방문한 이래 처음 베트남 땅을 다시 밟는다는 감회도 작지 않았다.
멀리서 포성이 들려오는 속에 각종 군용기가 가득했던 탄손 나트 공항은 이제 한적한 시골 비행장으로 변해 있었다. 전쟁 중에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혈안이던 공항 요원들의 살기등등한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전쟁과 평화의 다른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하나는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물결이었다. 아무런 신호나 통제가 없는 속에서도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오토바이 물결은 마치 송사리 떼처럼 보였다. 베트남의 힘이 바로 저런데 숨어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순간 스쳐갔다.
한류, 분명 역사적 일이나 과장된 일면도
일행 중의 한분이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시민단체가 베트남전 당시에 있었을지도 모를 한국군의 가혹행위에 대해 공동조사를 해보자는 제의를 베트남 정부가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베트남은 과거의 일에 연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베트남의 한류(한국의 대중문화 유행의 줄임말)도 이런데서 배경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미국 다음으로 대규모 전투 부대를 파견했던 한국, 비록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바로 그 땅에서 한류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다.
그러나 한국에 알려진 베트남의 한류는 다소 과장된 듯했다. 호치민시의 중심지를 며칠동안 지나다녔지만 한류의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각종 연예인들 사진으로 벽면을 온통 장식해 놓은 어느 음식점에서도 한국 연예인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오락환 주 베트남 대사는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얼마전 중국의 서남부를 여행했는데 그곳에서도 한류를 감지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한류는 중국에서나, 베트남에서나 아직은 대중예술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제한된 문화현상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을 한국의 매스컴이 얼마간 과장해서 국내에 알린 게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한류를 과소평가할 필요는 더욱 없다. 자기 폄하는 언제나 퇴보적이다. 그것이 비록 얼마간 과장됐다고 해도 한국의 문화가 중국 대만 베트남 몽골 등 인근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연방 지역과 폴란드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지나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세계에 ‘한류’라는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뿐 아니라 과장됐다고는 해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류의 진원을 한 참석자는 “경제적 풍요와 서구화에 대한 선망”이라고 진단했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지금 역동적으로 서구화를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한국의 성공적인 선진화 작업이 이들 후발 국가들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나라들은 사회주의체제 아래서 문화적으로도 커다란 공백기를 경험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누리지 못했던 문화공백을 한류가 메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寒流(한류) 안 되려면 고급화와 상호존중해야
그러나 한류(韓流)가 곧 한류(寒流)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대외경제연구원(KIEF)이 조사한 것을 보면 한류는 앞으로 3년내에 중국에서 사라지고 말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홍콩의 무술영화가 이내 사라지고 만 선례를 보라고 말한다. 한류에 한국 특유의 콘텐츠가 없다는 점이라든가 지나친 모방, 무분별한 상업적 진출 따위가 한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런 불길한 전망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대중문화의 질을 높이는 일과 내용의 다양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는 또 주는 것에 익숙지 않다. 우리가 이들 나라에서 한류라는 선물을 받고 있다면 그들 나라의 문화를 우리도 수용하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주려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인 특유의 위압적 자세나 교만을 극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전 때 터키가 우리를 도왔고 월드컵 때 우리는 터키에 따뜻한 우정을 표했다. 그 대가가 지금 터키에 부는 ‘한국바람’이다. 주고받는 문화, 꾸준한 자기 향상 노력만이 한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임춘웅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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