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돈 선거’ 매장하자(김호준 2002.12.02)

지역내일 2002-12-02
‘돈 선거’ 매장하자
김호준 정치평론가 충남대학교 초빙교수


올 대통령 선거전에선 아직 선심관광 이야기가 나오질 않는다. 선거 철이면 신문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유명 관광지의 버스행렬이 눈에 띠질 않는다. 유원지를 어지럽히는 술 취한 유권자들의 추태도 못 본 것 같다. 아파트촌이나 음식점의 향응 이야기도 들리질 않는다. 아직 선거전 초반이기 때문에 선거풍토가 달라졌다고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돈 봉투’ 이야기만 나오지 않으면 깨끗한 선거가 자리잡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선거는 31년 만에 재현된 양당 대결구도로 인해 전례 없이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지만, 적어도 ‘돈 선거’만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전망이다. 유권자 의식변화로 ‘손 벌리기’ 행태가 줄어들고, 기업회계의 투명성 강화로 비자금 빼내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극성스런 시민단체들이 감시의 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각 당 후보들의 ‘법정선거비용 준수’ 다짐과 ‘선거자금 공개’ 약속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부정한 돈으로 선거를 치르는 시대는 지났다”며 “국고보조금과 후원금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언명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부정한 정치자금은 한푼도 받지 않고 한푼도 쓰지 않겠다”며 “이번에 선거운동을 한번 바꿔, 법정선거비용 안에서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에 영수증까지 첨부해 선거자금 사용내역을 소상히 공개하겠다는 약속들이다. 돈이란 원래 컴컴한 구석이 많아 얼마나 실행에 옮겨질 지는 모르나 일단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싶다.
각 당의 전례 없는 당비 납부실적도 선거풍토 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지역구에선 7000만 원, 이부영 의원 구에선 1000만 원의 당비가 각기 모금됐다고 한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변화다. 더욱 놀라울 일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이 ‘돼지 저금통’을 돌려 40억 이상을 모금했다는 사실이다.

사라진 선심관광, 달라진 선거풍토 기대
이런 소액다수의 선거자금이 부패와 정격유착의 사슬을 끊고 깨끗한 선거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에 중앙선관위가 공시한 법정선거비용은 341억 원이다. 서민들 눈엔 아직도 많다 싶은 거액이지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선거 한번에 조 단위의 천문학적 자금이 동원됐던 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라는 생각이다. 과거 여의도 유세 한번에 들어간 돈이 올 대선 법정비용과 맞먹는 규모였으니 돈 선거의 폐해를 짐작할 만하다. 이젠 그런 낭비적인 집회 대신 생산적인 TV토론이 자리를 잡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대선 자금은 재계에서 뭉칫돈이 나오고, 그것이 부패와 정경유착으로 이어져 문제를 야기했다. 또 너무 많이 거뒀다가 미쳐 쓰지 못하고 남은 수백 억, 수천 억 원의 대선 잔금도 정치·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두 전직 대통령의 수천 억 비자금 사건이 그랬고, 전·현직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도 대선 자금과 무관치 않았다. 대선 자금의 근본적인 문제는 법정 한도액을 무시하고 돈 선거를 치르다 보니 대통령이 범법자로 출발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사는 그런 원죄 속에 당선된 범법자가 염치없이 개혁의 칼자루를 휘두르는 아이러니의 반복이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각기 대선연대와 체결한 선거자금 공개협약에 따라 앞으로 3~7일 단위로 지출 명세서를 후보의 홈페이지에 올린다. 그리고 1주일 단위로 관련 회계장부를 대선연대에 제출하는 형식으로 선거자금을 공개한다. 또 선거자금 지출 시 지정된 단일계좌를 사용하고 모든 지출에서 100만원 이상 거래에 대해 영수증 등을 첨부해 이를 입증한다. 대선연대는 각 후보 진영의 자금사용을 철저히 검증하고, 허위신고 후보에 대해서는 낙선운동 수준의 준엄한 제재에 나서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치권은 오래 전부터 선거자금을 이중장부로 관리해왔다. 선관위 신고용과 ‘대외비’ 내부용으로 나눠 별도 기재했다.
실 정당이 사용한 선거자금 가운데 선관위 신고를 위해 공식적으로 회계처리하고 장부에 기록한 금액은 전체의 20~3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는 이런 조직적 은폐를 파헤칠 강제수단이 없다. 시민단체가 선거자금의 투명성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선거자금 공개” 약속 지켜야
그런데 시민단체와 각 후보가 체결한 협약서는 공개대상을 공식자금은 물론 비공식 자금까지 포함하고 있다. 선거자금 공개의 성패는 1차로 각 후보 진영의 정직성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선거자금 공개는 시민단체의 몫이 아니다. 법제화로 해결하는 것이 정도다. 하지만 정치권의 불성실로 이렇게 된 이상 각 당은 시민단체의 주도에 적극 호응해야 마땅하다. 선관위는 대선연대를 지원하면서 선거감시의 보완적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대선연대는 2년 전 ‘낙선운동’ 때처럼 위법논란이나 공정성시비가 불거지지 않도록 이 운동을 현명하게 끌고 나가야 한다. 돈 선거를 매장하려는 시민들의 고발정신도 긴요하다. 돈 안 드는 깨끗한 선거는 어떻게 하든 이번에 꼭 정착시켜야 할 명제다. 결코 놓쳐서는 안될 좋은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김호준 정치평론가 충남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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