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2> 선사시대의 무덤, 고인돌

한반도는 세계 거석문화의 중심이었다

지역내일 2000-11-24 (수정 2000-11-24 오후 2:56:05)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6Km 정도 가다보면 국도 오른쪽으로 ‘강화 고인돌공
원’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걸어 들어가면 북방식 고인돌로는
남한에서 가장 큰 ‘강화 부근리 고인돌’이 당당한 자태를 드러낸다.
인천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위치한 이 고인돌은 1964년 이래 사적 137호로 지정·보호되
어 왔다. 길이 7.1m, 너비 5.5m, 무게 50여톤의 거대한 덮개돌이 지상 2.6m의 높이로 들어올
려져 있는 모습은 축조 후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고려산 주변에 산재한 120여기의 고인돌 000
이 거대한 바위돌을 어떻게 굄돌 위로 들어올렸을까? 어떻게 20도나 기울어진 2개의 굄돌만
으로 엄청난 무게의 덮개돌을 수천년 동안 지탱할 수 있었을까? 굄돌은 원래 기울어진 채로
설치한 것일까, 아니면 똑바로 세웠던 것이 기울어진 것일까?
강화 부근리 고인돌 앞에서 이런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강화도에는 ‘강
화 고인돌’ 외에도 무너진 고인돌들을 포함, 약 12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고인돌들은
주로 고려산(436m)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48번 국도에서 외포리 방면으로 가다가 내가면 오상리에서 강화읍 가는 길로 600m 정도 가
면 ‘고인돌식당’이 있다. 이 고개 오른쪽에 고인돌 하나가 납작하게 누워 있다. ‘오상리 고인
돌’은 지상에 무덤방을 두고 있으면서도 덮개돌의 규모에 비해 아주 낮은 굄돌을 써서 그냥
보면 보통 바위로 착각할 만큼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하점면 신삼리로 돌아가 부근리 쪽으로 가다 보면 길 아래 논에 무너진 고인돌 1
기가 나타난다. ‘신삼리 고인돌’의 덮개돌에는 정으로 홈을 파서 돌 귀퉁이를 자르려고 시도
한 흔적이 보이는데, 이 홈 속에는 아직도 정이 부러진 채로 남아 있다.
신삼리 고인돌에서 동촌마을을 거쳐 고려산 서북쪽으로 가면 삼거리 샘말마을이 나온다. 샘
말에서 약 30~40분 정도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면 북서향의 능선 위에 탁자식으로 추정되는
고인돌 9기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낙엽 수북한 산길 양쪽 산자락은 현세인들의 묘지로 쓰
이고 있어 더욱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거석문화권의 중심” 000
‘고인돌’(支石墓·Dolmen)은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등
거의 세계 전역에 분포하며, 그 분포 지역은 대부분 바다에 인접한 곳에 밀집해 있다.
한반도는 명실상부한 ‘고인돌 종주국’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7만여기의 고인돌 중 절반에
가까운 3만여기의 고인돌이 한반도에 집중해 있다. 대동강 유역의 1만여 기와 전남 지방의 2
만여 기가 그것이다. 이는 거석 유적 가운데 순수한 고인돌이 수천기뿐인 유럽이나 거석 유
적이 수백기에 불과한 동남아시아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지금까지 남한에 2만여기, 북한에 1만여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 수를 7만∼8만기까지 늘려 잡기도 한다. 지난 30년 동안 무려 4만여개의 고인돌이 파괴·훼
손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고고학자들은 “한반도는 동아시아 거석문화권의 중심”이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한다. 중국
의 경우 황해를 끼고 있는 요령·산동·절강성 일대에서 350여기, 일본은 한반도와 인접한 구주
(큐우슈우) 지역에서 550여기의 고인돌이 조사됐으나, 형태의 다양성이나 분포도에서 한반
도에 크게 못 미친다.
이처럼 한반도에 고인돌이 집중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포대 이영문(고고인류사학과) 교
수는 △아시아지역 고인돌의 중심 분포지는 한반도이고 △북쪽에 북방식 고인돌이 많고 남쪽
에 남방식이 많으며 △돌널무덤과 비슷한 개석식 고인돌이 중국 요녕성을 포함한 한반도 전
역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한반도에서 남·북방의 문화가 융합된 독자적인 고인돌 문
화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세계 거석문화의 발생, 분포 및 전파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밀집분포도나 규모, 다양한 형식 때문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시공동체사회의 공동무덤일 가능성 높아 000
한반도 전역에 수만기가 산재해 있는 ‘고인돌’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원시시대 무덤은 단순히 죽은 사람을 묻어두는 시설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사회 내부에 지
배계층이 형성된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들 지배자들의 무덤은 일종의 종교적 신앙의
대상물로 받아들여졌다. 80년대까지는 고인돌의 주인은 청동기시대의 지배계급이었다는 설
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인돌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러 개의 군집으로 수십 기씩 여러 곳에 분
포하는 것으로 보아, 일정한 지역 안에서 집단 간의 상호 협동체계에 의해 혈연 혹은 지연으
로 뭉친 공동체사회의 공동무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이 공동체사회가 집단간 전투를 통한 흡수통합 과정에서 유력한 집단과 지배자가 출현
하여 소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보고, 그 과정에서 숨진 전사자의 공헌
묘로 고인돌을 축조했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넓은 들판의 얕은 구릉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고인돌은 그 모습은 물론, 제작과정 자체가 하
나의 웅장한 종교의식이었을 것이다. 전북 고창군 용계리의 고인돌 중에는 높이 4m, 길이
5.5m, 너비 4.5m에 무게가 150톤이나 되는 초대형까지 있는데, 이런 초대형 돌을 운반하고
일정한 형태의 조형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이 필수적이다.
이런 작업은 혹 강제적인 명령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동이었
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석재 운반이라는 공동작업은 주민 모두가 동참함으로써 주민들 간의
연대의식과 동족의식을 굳게 해주는 기회로 작용했을 것이다.

맨손으로 만들어낸 단순한 아름다움 000
맨손이나 간단한 도구만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드는 조형물은 그 속성상 단일
부재를 크게 하고, 완성되는 전체 조형물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부재(재료)가 커야
노동인력을 한 작업에 집중시킬 수 있고 통솔하는 절차도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작업이 복잡한 공정과 아주 세밀한 노동을 요구한다면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고인돌의 조형적 단순성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그러나 이렇게 축
조된 고인돌의 단순성이 갖는 상징성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대부분 우리나라에 흔한 화강암 계통의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화강암으
로 만들어진 우리 고인돌에는 한민족 고유의 원시적 조형감각이 살아 있다. 거칠게 다듬어
진 화강석 표면이 주는 생동감과 함께, 원시조형의 단순하면서 상징적인 특성을 유감없이 드
러내는 것이다.

▲고인돌 운반 과정 재현. 고인돌을 운반하기 위해선 그 크기에 따라 적게는 16~20명, 많게
는 200여 명의 힘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스기사>

강화·고창 고인돌군 세계문화유산 추진

‘고인돌’은 거석문화(巨石文化)의 하나를 가리키기도 하고 거석문화를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
다.
고대 인류의 무덤인 고인돌은 더러는 자기 영역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강성한 힘을 외부에 표
시하는 표석 상징물이기도 하고, 더러는 종족이나 집단·사회의 모임장소, 의식을 행하는 제단
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선돌(立石), 열석(列石), 돌널무덤(石棺墓), 돌무지무덤(積石
墓) 등 다양한 형태로써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세계 거석문화의 발생, 분포 및 전파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
다. 특히 전북 고창의 고인돌군과 강화도의 고인돌군은 밀집분포도나 다양한 형식이 공존하
고 있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록절차를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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