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큰일났어요. 미라가 친구들과 소주를 마셨어요. 생일빵이래요.”
학급의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공개적으로 보고할 의무가 있는 8명의 선도위원 중 한명인 경숙이가 숨을 몰아쉬며 알려온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유명한 미라 패거리가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2교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생일빵 소주를 마셨던 것이다. 중대한 사태에 직면한 김 선생은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따르자니 4명의 제자들이 선도처분(정학)을 당할 것 같고, 덮어두자니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 덤터기를 쓸 것이 뻔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김 선생은 재빨리 행동했다. 4교시 후 점심시간에 긴급 학급회의를 소집했다. 교실 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린 후 담임과 아이들은 교탁을 사이에 두고 인디안들처럼 엄숙하게 마주섰다.
“어떻게 대낮에 학교에서 소주를 먹니? 법대로 학생부에 넘기겠다.”
“선생님, 저 아이들 한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술 먹지 않게 하겠어요.”
“안된다. 그러면 담임인 나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말썽꾼 친구를 위해 용서를 비는 학급 아이들과 징계위원회에 넘겨 처벌하겠다는 담임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다. 고민에 빠졌던 담임은 마침내 판결을 내렸다.
“좋다. 봐줄 수는 없고 담임이 직접 벌칙을 내리는 방법이 있다. 찬반 여부를 표결한다.”
담임은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상호 합의 하에 미라네 아이들에게 5대씩의 매를 때렸고, 담임 역시 의자에 올라가 스스로의 종아리를 걷고 7대의 회초리를 쳤다.
담임의 자해(?)가 끝나기도 전에 미라는 울음을 터트리며 매를 든 담임의 손을 붙잡았고, 3명의 친구들은 무릎을 꿇었다. 교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담임은 배수진을 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용서와 가르침의 미학을,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종아리를 치며 올바른 가르침을 시행했다는 명분을 쌓은 것이다. 다행히 그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참교육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그것은 아무리 훌륭해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이것이 기준이다”라고 정하는 것보다는 전근대적인 매를 때리는 행위조차 ‘아이들과 함께 합의하고 지켜가는 것’이 참다운 교육적 기준이 아닌가 싶다. 교사의 바른 권위는 아이들의 존경과 감동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
학급의 중대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공개적으로 보고할 의무가 있는 8명의 선도위원 중 한명인 경숙이가 숨을 몰아쉬며 알려온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유명한 미라 패거리가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2교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생일빵 소주를 마셨던 것이다. 중대한 사태에 직면한 김 선생은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따르자니 4명의 제자들이 선도처분(정학)을 당할 것 같고, 덮어두자니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나 덤터기를 쓸 것이 뻔했다.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김 선생은 재빨리 행동했다. 4교시 후 점심시간에 긴급 학급회의를 소집했다. 교실 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린 후 담임과 아이들은 교탁을 사이에 두고 인디안들처럼 엄숙하게 마주섰다.
“어떻게 대낮에 학교에서 소주를 먹니? 법대로 학생부에 넘기겠다.”
“선생님, 저 아이들 한번만 봐주세요. 다시는 술 먹지 않게 하겠어요.”
“안된다. 그러면 담임인 나도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말썽꾼 친구를 위해 용서를 비는 학급 아이들과 징계위원회에 넘겨 처벌하겠다는 담임 사이에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다. 고민에 빠졌던 담임은 마침내 판결을 내렸다.
“좋다. 봐줄 수는 없고 담임이 직접 벌칙을 내리는 방법이 있다. 찬반 여부를 표결한다.”
담임은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상호 합의 하에 미라네 아이들에게 5대씩의 매를 때렸고, 담임 역시 의자에 올라가 스스로의 종아리를 걷고 7대의 회초리를 쳤다.
담임의 자해(?)가 끝나기도 전에 미라는 울음을 터트리며 매를 든 담임의 손을 붙잡았고, 3명의 친구들은 무릎을 꿇었다. 교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담임은 배수진을 친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용서와 가르침의 미학을, 시비를 거는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종아리를 치며 올바른 가르침을 시행했다는 명분을 쌓은 것이다. 다행히 그 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참교육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그것은 아무리 훌륭해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이것이 기준이다”라고 정하는 것보다는 전근대적인 매를 때리는 행위조차 ‘아이들과 함께 합의하고 지켜가는 것’이 참다운 교육적 기준이 아닌가 싶다. 교사의 바른 권위는 아이들의 존경과 감동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