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당선자의 매듭 끊기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 언론학
이 땅에는 두 세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를 바라보는 두 부류 사람들의 시선을 말한다. 한 쪽은 노 당선자를 이쁘게 보고 있다. 나는 대원로 한분이 “그가 하는 짓이 귀엽지 않으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 당선자의 직선적이고 고지식한 기질에 매료된 사람들, 이들은 자수성가로 대통령직을 따낸 그와 밀월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쪽이 있다. 노 당선자가 등장하면 아예 텔레비전 화면을 꺼버린다고 말하는 쪽이다. 나는 “땡노 뉴스는 절대 보지않는다”고 다짐하는 경제 전문가를 알고 있다. 북핵 문제가 커지고, 미국의 언행이 불손해지고, 대북송금의혹이 소리를 내자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본다.
설날 연휴에 SBS 텔레비전이 방영한 ‘한선교․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보는 시각차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당선자 부부는 한복을 차려입고 이 설맞이 대담 방송에 출연했다. 나는 SBS의 예고편 한 장면을 보고 이 방송에 구미가 당겼다. 노무현 당선자는 그의 직선적 성품대로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당신 혼자서 대통령 되었느냐”고 이 사람(권양숙 여사를 가리킴)이 핀잔을 주더라는 말이다. 방청석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당황한 권 여사가 당선자의 소매를 붙잡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예고편에 나온 이 장면은 본 방송 90분을 내내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짐작하건데 당선자 측의 요구로 ‘검열 삭제’를 당한 것이 아닐까한다. 나는 지금 이 정도의 검열 삭제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의도는 없다. 언론 개혁(특히 방송 개혁) 문제는 노 당선자가 대통령이 된 후에 어떻게 수행할지 두고 보아야 할 근본안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설날 연휴의 당선자 부부 대담은 방청석의 웃음을 잇달아 자아냈다. ‘내생애 최고의 사건’을 묻자 노 당선자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통령 당선은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선자는 첫 키스의 추억을 고백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했다. 그러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는 권양숙 여사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며 자기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말했다. 이 때 부부는 함께 눈물을 지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는 다분히 기획된 냄새가 났었다. 그에 비하면 노 당선자 부부가 출연한 자리는 서민적인 대화 무대를 꾸몄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당선자 부부 대담을 인간적인 흥미로 부담없이 바라보는 쪽의 소회일 것이다.
당선자를 보는 두 세계 사람들
이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은 얼마던지 있다. 나는 한 논객이 일간지에 낸 글에서 그 쪽의 심경을 읽었다. 그는 노 당선자 부부가 출연한 대담 쇼를 보면서 역시 선거는 승자의 축제라는 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프로를 구상한 동기가 승자에게 다시한번 승리의 꽃다발을 안겨 주기 위한 것이라면 입장을 바꾸어 패자의 입장에서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으로 노 당선자 진영에 하고 싶은 말은 패자의 입장에서 민심을 짚어 봐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노 당선자는 이런 두 세계 사람들의 엇갈리는 시선을 받으며 정치적인 난제의 매듭을 풀어나가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의사 결정 방식은 직선적이다. 일을 딱 잘라서 결정하는 개성을 보일 때가 많다. 지도자가 난제를 용기있고 현명하게 풀어 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알렉산더 대왕이 행한 ‘고르비온의 매듭절단’은 직선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소아시아 고르디온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고르디아스 왕이 바친 전차 한대가 있었다. 그 수레의 채에는 대단히 복잡한 매듭이 있었는데 이를 푸는 자에게 아시아 지배가 약속된다고 전해졌다. 아무도 그 매듭을 풀지 못했다. 소아시아 원정에 나선 마케토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 앞에 섰다. 그는 단칼에 매듭을 끊었다. 난문제를 단숨에 푸는 것을 ‘고르디아스의 매듭 절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알렉산더의 과단성에 연유한다.
89년에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곤 크렌츠가 동독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자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절단한 사람으로 비유된 적이 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신문이 베를린 발신 기사로 그렇게 썼다. 사실 에곤 크렌츠로 하여금 베를린 장벽 철거의 단안을 내리게 만든 후견인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가 아니라도 분단 독일의 족쇄이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은 진짜 큰 손은 고르바초프 였다.
때로 과단성 있게, 때로 신중하게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역사적 사실은 잘했으면 고르디온의 매듭 절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국민과 야당과 상의하지 않고 진상을 은폐하다가 스스로 화를 불렀다. 내게는 현대의 정주영 명예회장의 인상이 각인되어 있다. 회색 중절모를 눌러쓴채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돌파하는 ‘늙은 목동’이라는 이미지이다. 그의 강한 개성과 집념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의 호쾌한 행보 역시 고르디온의 매듭 끊기에 해당한다. 지금 노 당선자는 북핵 문제나 대북송금 의혹에 직면했으나 자기 성품대로 호기있게 고르디온의 매듭을 끊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조지 부시는 분단의 길을 여는데 고르바초프 만큼도 ‘평화적’이지 못하다. 노 당선자는 상황의 성격에 따라서 때로는 과단성 있게, 때로는 신중하게 양면으로 정책 결단을 내릴 일이다. 노 당선자가 밀월 기간 안에 일거수 일투족을 다져서 대통령의 걸음을 내디디기를 기다려 본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 언론학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 언론학
이 땅에는 두 세계 사람들이 살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를 바라보는 두 부류 사람들의 시선을 말한다. 한 쪽은 노 당선자를 이쁘게 보고 있다. 나는 대원로 한분이 “그가 하는 짓이 귀엽지 않으냐”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노 당선자의 직선적이고 고지식한 기질에 매료된 사람들, 이들은 자수성가로 대통령직을 따낸 그와 밀월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쪽이 있다. 노 당선자가 등장하면 아예 텔레비전 화면을 꺼버린다고 말하는 쪽이다. 나는 “땡노 뉴스는 절대 보지않는다”고 다짐하는 경제 전문가를 알고 있다. 북핵 문제가 커지고, 미국의 언행이 불손해지고, 대북송금의혹이 소리를 내자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본다.
설날 연휴에 SBS 텔레비전이 방영한 ‘한선교․정은아의 좋은 아침’을 보는 시각차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당선자 부부는 한복을 차려입고 이 설맞이 대담 방송에 출연했다. 나는 SBS의 예고편 한 장면을 보고 이 방송에 구미가 당겼다. 노무현 당선자는 그의 직선적 성품대로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당신 혼자서 대통령 되었느냐”고 이 사람(권양숙 여사를 가리킴)이 핀잔을 주더라는 말이다. 방청석에서는 폭소가 터지고 당황한 권 여사가 당선자의 소매를 붙잡으며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예고편에 나온 이 장면은 본 방송 90분을 내내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짐작하건데 당선자 측의 요구로 ‘검열 삭제’를 당한 것이 아닐까한다. 나는 지금 이 정도의 검열 삭제에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의도는 없다. 언론 개혁(특히 방송 개혁) 문제는 노 당선자가 대통령이 된 후에 어떻게 수행할지 두고 보아야 할 근본안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설날 연휴의 당선자 부부 대담은 방청석의 웃음을 잇달아 자아냈다. ‘내생애 최고의 사건’을 묻자 노 당선자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통령 당선은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선자는 첫 키스의 추억을 고백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했다. 그러나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는 권양숙 여사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이며 자기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고 말했다. 이 때 부부는 함께 눈물을 지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는 다분히 기획된 냄새가 났었다. 그에 비하면 노 당선자 부부가 출연한 자리는 서민적인 대화 무대를 꾸몄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당선자 부부 대담을 인간적인 흥미로 부담없이 바라보는 쪽의 소회일 것이다.
당선자를 보는 두 세계 사람들
이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은 얼마던지 있다. 나는 한 논객이 일간지에 낸 글에서 그 쪽의 심경을 읽었다. 그는 노 당선자 부부가 출연한 대담 쇼를 보면서 역시 선거는 승자의 축제라는 점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프로를 구상한 동기가 승자에게 다시한번 승리의 꽃다발을 안겨 주기 위한 것이라면 입장을 바꾸어 패자의 입장에서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으로 노 당선자 진영에 하고 싶은 말은 패자의 입장에서 민심을 짚어 봐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노 당선자는 이런 두 세계 사람들의 엇갈리는 시선을 받으며 정치적인 난제의 매듭을 풀어나가고 있다. 노무현 당선자의 의사 결정 방식은 직선적이다. 일을 딱 잘라서 결정하는 개성을 보일 때가 많다. 지도자가 난제를 용기있고 현명하게 풀어 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알렉산더 대왕이 행한 ‘고르비온의 매듭절단’은 직선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소아시아 고르디온의 아크로폴리스에는 고르디아스 왕이 바친 전차 한대가 있었다. 그 수레의 채에는 대단히 복잡한 매듭이 있었는데 이를 푸는 자에게 아시아 지배가 약속된다고 전해졌다. 아무도 그 매듭을 풀지 못했다. 소아시아 원정에 나선 마케토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 앞에 섰다. 그는 단칼에 매듭을 끊었다. 난문제를 단숨에 푸는 것을 ‘고르디아스의 매듭 절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알렉산더의 과단성에 연유한다.
89년에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곤 크렌츠가 동독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자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절단한 사람으로 비유된 적이 있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 신문이 베를린 발신 기사로 그렇게 썼다. 사실 에곤 크렌츠로 하여금 베를린 장벽 철거의 단안을 내리게 만든 후견인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가 아니라도 분단 독일의 족쇄이던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은 진짜 큰 손은 고르바초프 였다.
때로 과단성 있게, 때로 신중하게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역사적 사실은 잘했으면 고르디온의 매듭 절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국민과 야당과 상의하지 않고 진상을 은폐하다가 스스로 화를 불렀다. 내게는 현대의 정주영 명예회장의 인상이 각인되어 있다. 회색 중절모를 눌러쓴채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돌파하는 ‘늙은 목동’이라는 이미지이다. 그의 강한 개성과 집념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튼 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의 호쾌한 행보 역시 고르디온의 매듭 끊기에 해당한다. 지금 노 당선자는 북핵 문제나 대북송금 의혹에 직면했으나 자기 성품대로 호기있게 고르디온의 매듭을 끊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조지 부시는 분단의 길을 여는데 고르바초프 만큼도 ‘평화적’이지 못하다. 노 당선자는 상황의 성격에 따라서 때로는 과단성 있게, 때로는 신중하게 양면으로 정책 결단을 내릴 일이다. 노 당선자가 밀월 기간 안에 일거수 일투족을 다져서 대통령의 걸음을 내디디기를 기다려 본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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