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점/검] 임대아파트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

지역내일 2003-02-18 (수정 2003-02-19 오후 5:37:29)
“돈 몇 푼 벌었다고 여기서 쫓겨나면, 결국 다시 수급권자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90년대 초반 서울 노원구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김재희(66)씨는 정들었던 제2의 고향을 떠날 수 없는 심정을 토로했다.
“수입이 최저생계비를 넘겼다고 바로 임대아파트에서 나가면, 누가 집을 만들어 주나. 결국 다시 수급권자가 되는 악순환만 있을 뿐이야.”
김씨 할아버지는 “경우에 따라 윤택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같은 병들고 늙은 사람들은 이 곳을 떠나면 죽어...”라고 말끝을 흐렸다.
노원구 중계3동 시영3단지에만 2700여세대의 임대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 중 1900여 세대는 수급권자에서 탈락됐다. 모두 2004년말이면 이삿짐을 꾸려야 한다.
중계3동 시영아파트에 사는 박치준(65)씨는 “주민들이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여기서 나가면, 시골 쪽방에 가야한다”며 “여기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6∼7년전에 800만원짜리 전세 살다가 임대아파트 얻어서 들어왔어. 800만원은 장롱이네, 냉장고네 샀지. 지금은 한 푼도 없어. 그런데 요즘 집 값이 한두푼이야. 어디로 나가란 말이야.” 쉴새없이 말을 내뱉는 박씨는 “그동안 정부 정책만 따라 이리저리 옮기다 여기까지 쫓겨왔는데, 인생 막판에 또 내쫓겨?”라며 흥분하고 있다.
서울시내에서 가장 임대아파트가 많은 노원구에는 1만8300여명의 기초생활수급권자가 거주하고 있다. 임대아파트만 20개 단지 115개동 2만2838세대다. 이는 노원구 전체 세대의 10%에 해당한다.
이들 수급권자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2004년말이면, 노원구는 다름아닌 이사철을 맞게된다. 전체 임대아파트 세대의 60% 이상이 수급권 탈락으로 인해 이 곳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 “이웃과 떨어져선 못살아” = 아침만 되면 중계3동 시영아파트 간이 사무실에는 삼삼오오 모여든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장기를 두기도 하지만, 10년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담배 연기만 자욱하다.
오는 6월 군대가는 아들을 둔 장애2급인 김창용(68) 할아버지. 아들이 제대하면 곧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이 곳에서 나가면, 실제 갈 곳이 없어요. 설령 갈 곳이 있다고 해도, 가족처럼 지낸 동료들을 떠나서는 살기 힘들지요.”
김 할아버지가 걱정하는 것은 갈 곳만이 아니다. 장애인에 노인. 주변과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처지이기에, 10년 이상 동질감을 가지고 살아온 이웃을 떠나야 한다는게 못내 걱정스럽다.
“서울시에서는 우리에게 임대아파트 분양권을 준다고 하지만, 분양받을 돈이 있으면 수급권자가 됐겠나. 우리는 분양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여기도 동료들과 살게 해 달라.” 김 할아버지는 호소했다. ‘이런 처지에 딴 곳에서 쌀 떨어졌을 때 이웃에게 얻어먹을 수 있겠냐’는 김씨의 말에는 절박감이 묻어나 있었다.

◇ ‘수급권 탈락, 진료비 감당 못해’ = ‘노원구의회 임대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특위’ 박남규 위원장은 “가구별 최저 생계비가 2인 기준 58만9219원이다. 자녀 1명만 있어도, 사실상 임대아파트 거주가 불가능한 실정이다”며 “2004년이면 임대아파트 이주 문제가 사회문제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서울시내 임대아파트 입주 대기자가 1만8000여명으로, 2004년말 이들 대기자가 입주할 경우 현 거주자인 수급권 탈락자의 강제 이주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이러한 거주의 문제보다 진료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수급권에서 탈락하면 의료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급권자 중 환자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의료비 문제가 가장 시급한 해결점”이라고 밝혔다.
중계3동 김 할아버지도 “얼마전 수급권자 기준에 장애인을 포함시킨다는 발표를 들었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환자가 많은 노인층이 수급권자에 탈락되면, 의료복지 정책에 구멍이 뚫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원구의회 특위는 서울시내에서 임대아파트가 가장 많은 노원구의 수급권 탈락자 의료비 실태 등을 파악한 뒤,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계3동 평화복지관 박춘식 관장은 “수급권자들이 임대아파트에 너무 기대는 점은 있지만, 수급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의료비 문제 등은 사회문제화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관장은 “이들이 집단으로 쫓겨날 경우도 문제지만, 영세민들을 너무 한 지역에 집중시키는 정책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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