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단독주택에 거주하던 시절에는 새로 이사하면 가장 의미있게 행하던 것이 문패를 다는 것이었다. 특히,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은 문패를 달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사 떡을 주변에 돌리면서 이사 온 것에 대한 축하를 받고, 주변사람들은 문패를 보면서 이사 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문패에 걸리는 이름이 그 집을 대표하는 가장인 점에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후 가장의 이름으로 상징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따라서 자녀들의 행동이 다소 상식을 벗어나면 당장 욕을 먹는 것이 가장이었으며, 자녀들이 예의를 아는 경우라면 그 칭찬도 전부 가장의 것이 되었다. 따라서 가장은 자녀에게 자신의 이름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게 되고, 자녀 역시 그러한 가장의 요구가 당연한 것으로 아는 사회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공동주택이 많이 보급되면서 문패를 다는 모습이 사라졌음은 물론 누가 거주하는지를 모르게 되어 갔다. 혹시 누군가를 칭할 일이 있으며 몇 호로 부르게 되었다. 몇 호라는 이름은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회적 구속을 부여하는 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익명성을 기회로 사람들의 행동은 예의와 염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단지 안에 자동차를 절대로 세워서는 안 될 곳에 세워도 그 차는 누구누구의 차가 아니라 몇 동 몇 호의 차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된다. 야간에 주변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내도 몇 동 몇 호가 그러는 것으로 인식이 된다. 익명성은 사람들에게 종전과는 다른 자유를 주었지만, 자유를 얻은 만큼 공동체 의식과 규율은 가져간 것이다.
일본의 공동주택단지에는 우편함에 몇 호 대신에 가장의 이름이 붙어져 있다. 아파트라도 여전히 누가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사회적 구속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아파트 단지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오르내림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입주자 안내 설명서가 붙어 있다.
아파트에 문패를 달수는 없을까. 문패를 통해 가장의 권위를 살리고, 사회적 구속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또한 몇 호가 아닌 누구누구로 이웃을 알 수 없을까. 많은 사람이 거주할수록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은 곳이 아파트 단지이다.
그러나 공동주택이 많이 보급되면서 문패를 다는 모습이 사라졌음은 물론 누가 거주하는지를 모르게 되어 갔다. 혹시 누군가를 칭할 일이 있으며 몇 호로 부르게 되었다. 몇 호라는 이름은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회적 구속을 부여하는 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익명성을 기회로 사람들의 행동은 예의와 염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단지 안에 자동차를 절대로 세워서는 안 될 곳에 세워도 그 차는 누구누구의 차가 아니라 몇 동 몇 호의 차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된다. 야간에 주변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내도 몇 동 몇 호가 그러는 것으로 인식이 된다. 익명성은 사람들에게 종전과는 다른 자유를 주었지만, 자유를 얻은 만큼 공동체 의식과 규율은 가져간 것이다.
일본의 공동주택단지에는 우편함에 몇 호 대신에 가장의 이름이 붙어져 있다. 아파트라도 여전히 누가 그 집에 거주하고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사회적 구속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아파트 단지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오르내림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입주자 안내 설명서가 붙어 있다.
아파트에 문패를 달수는 없을까. 문패를 통해 가장의 권위를 살리고, 사회적 구속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또한 몇 호가 아닌 누구누구로 이웃을 알 수 없을까. 많은 사람이 거주할수록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은 곳이 아파트 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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