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한국군 작전지휘권 이양, 또 이른바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라는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문제와 관련된 군사적 제반 협정·조약의 족쇄에 묶여 있습니다. 그밖에 정치 정보 경제 등 갖가지 협정에 의해서 역시 우리의 주권은 미국의 보호국 이상이 아닙니다.
이번에 이라크 전쟁에 우리 정부가 파병할 수밖에 없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주권독립국가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데도 우선 우리나라가 사실상 주권독립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과히 유쾌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와 미국관계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인 1910년 후의 식민지 주인과 노예관계보다는 조금 낫고, 1905년과 1910년 사이의 주인과 머슴관계와 유사한 수준과 위상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철저하고 냉혹하게 비판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답은 뻔합니다. 머슴이 주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애당초 국가가 평등하지 않고 주종관계가 엄연한데.
노 대통령에게 주인다운 자세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자신을 포함한 한국민이 대미관계에서 머슴의 위상밖에 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서 주장해야 합니다. 또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미관계가 주인과 머슴관계라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대미 현실주의 외교라는 것을 외치는 기득권자들은 주인이 밥만 먹여주면 주권이건 정부건 국민이건 인격적인 독립의 중요성은 전혀 생각지 않는 부류입이다. 미국이 한국에 들어온 반세기동안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영원한 미국숭배사상과 미국에 대한 철저한 열등의식 이런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추악했던 긴 세월의 독재정권하에서 물질적 혜택만 있으면 정신적 인격적 인간적인 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도외시하는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구 반공주의·극우 반평화통일적인 전쟁애호적 냉전 사고와 성향의 집단과 개인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국의 무조건적 복종의 대가로 미국이 경제적 보복을 한국에 하지 않거나 약간의 물질적 혜택을 약속하면 무조건 ‘현실 감각있는 외교, 만족스런 외교’라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두 입장 모두 문제는 자기 자신들이 발딛고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미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머슴 수준이라는 냉철한 인식이 없다는 데 있어요.
▲그러면 우리 정부나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과 정부, 대통령이 국가적 인격체로서 미국이라는 상전 격인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적극적으로 추진할 굳은 결의입니다. 군사적인 협정과 조약, 구체적 조건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내부적으로 해야 합니다.
총체적으로 예속된 상태를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가, 자주국민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일정한 고난과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대통령의 방미가 굴욕외교다 아니면 부시가 어깨 한 번 두드려 주었으니 현실외교다 하는 것은 모두 본질을 잘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이 세돌 조금 지났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무르익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분위기가 지난해 미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긴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은 전쟁 직전 위기상황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 클린턴 정권은 94년 5월과 6월 사이에 북한에 대해 핵굴복협정을 강요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준비했지요. 6월 16일이라는 전쟁 개시일까지 정해 놨습니다.
그때 카터 전대통령이 급해서 미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으로 날아가서 김일성 주석과 협의해 전쟁을 막았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그때보다 훨씬 위기의 강도가 높습니다. 나는 2000년 6월 15일의 남북정상회담을 ‘남북평화체제’ 구축의 시발이라고 봅니다. 이는 정말 반세기동안의 민족내 ‘전쟁위기체제’를 상당한 정도까지 평화체제로 돌린 일대 거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부시정권은 한반도에서 이 평화체제가 정착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위기 구조’를 지속시켜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촉진할 수 있고 또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필요하지 않는 막대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일 두 나라의 그런 막강한 군사력을 한미일 군사동맹관계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미국이 미일군사동맹· 한미군사동맹을 물리적 법적 정치적으로 한 정삼각형의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일체화하려는 목적입니다.
부시정권은 94년 10월 클린턴 정부가 체결한 협정으로 미국과 북한사이에 정착되려했던 안정적 구조를 뒤집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이런 목적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평화협정체제를 원했던 북한으로 하여금 결국 미사일이라든가 그밖에 군사적인 자기 생존보호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었단 말입니다. 미국의 다음 수순은 북한에 대한 전쟁을 함께 수행할 한미일 군사블럭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최근 주한미군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최신예 무기를 들여오겠다고 하고 우리 정부도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뒤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군사증강정책은 내년 늦가을에 있을 부시 대통령 재선을 위한 예비상황 조성이라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미국을 ‘평화애호국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미국의 정권은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하고 막대한 양의 무기와 군수품을 파괴하고 폐기해야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재선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전쟁을 해야 미국 군부와 군수과학과 군수산업이 막강한 힘을 유지합니다. 이 정점에 서있는 것이 미국의 정치인 국회의원들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주(州)에 전쟁목적의 군수자본과 산업시설을 많이 끌어와서 경제가 잘 돌아가야 표를 얻는 것입니다.
미국이 며칠 전에 발표한 것을 보세요. 미국은 앞으로 몇 달 안에 한국에 100억불이 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샘 요격미사일, 아파치 헬리콥터, 유도폭탄 따위의 온갖 무기를 들여오도록 했어요. 한국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군사무기를 사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이게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요. 내년에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전쟁을 위한 것입니다. 위험 천만한 일입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미국은 세계 여러나라 가운데 평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나라로 인식돼 있는데요.
50여년 동안 미국의 전쟁과 군사행태를 연구한 나로서 미국은 인권이나 평화를 내세울 자격이 없는 국가라고 단언합니다. 미국이 지원한 약소국가 가운데 민주적 평화적이고 자주적이고 부패타락하지 않은 정권이나 국가는 없습니다. 미국이 지난 기간 지원한 국가는 예외없이 독재자와 독재정권이거나 부패하고 부정하고 국민을 착취하고 억압한 포악한 정권이었습니다.
미국이 지원한 라틴아메리카 15개국은 파나마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독재자들의 정권이었습니다. 아시아 4개 나라인 한국(주저되기는 하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종결 이후 미국의 세계 약 40개국에 대한 군사지원정책은 썩으면 썩을수록 지원하고 깨끗해지면 쓰러뜨리는 정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74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가장 깨끗한 민주적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정부였습니다. 이를 미국이 군부와 정보부와 비밀공작대를 시켜서 쓰러뜨린 것 아닙니까.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김대중 전대통령의 내치의 개혁여부를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 기틀을 마련한 것은 굉장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2004년 예산을 보면 국방비 증가율이 35%나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군사비로 사들여야 할 F-15기나 조기경보기 한 대가 2억 달러 안팎입니다. 2억 달러면 2500억원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북한 송금액이 4억 달러인 모양인데 전투기 2대 값입니다.
앞으로 북한과 우리가 싸울 필요없는 ‘미국의 전쟁’을 위해서 몇십억 몇백억 달러를 미국무기 구매에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 무기를 사서 군사력을 강화할수록 남북관계는 경색됩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비행기 한두대 값으로 남북민족은 최소한 지난 4년 동안 전쟁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거나 남한의 안전보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위기의식을 높여 한미일 군사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20∼30년 후의 중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우리를 이용할 뿐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나는 가끔 물어봅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한국 군대냐. 난 대한민국 군대는 미합중국의 군대라고 봅니다. 우리 군은 전쟁을 하게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전시작전권 이양 등에 의해 원하건 원치 않건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 군사력의 일부로 ‘자동적으로 편입’됩니다.
흔히들 우리 국민들은 전투기를 사오고 구축함 만들고 인공위성 쏘아 올리고 탱크가 늘어나면 대한민국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착각입니다. 자기 군대가 자기 국민의 통제하에서(of) 자국을 위해서(for) 자국인에 의해서(by) 쓰여져야 대한민국 군대입니다. 혈세로 사들여온 막강한 군사력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면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군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미국을 위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신세대를 중심으로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국익을 해칠 것이란 우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 문제도 좀 전 이야기와 일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국민의 감정 표현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슴과 주인관계에서는 절대로 머슴이 주인을 욕하거나 미워하거나 반대할 수 없지요. 바로 이 관계가 여중생이 죽고 가해자가 처벌도 안받는 상황에서 “반미다, 국익을 해친다”는 어리석은 논리를 내세우는 것에 반영돼 있습니다.
국익이란 뭡니까. 일부는 미국이 경제적 부스러기나 주는 것을 국익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것을 ‘반미’니 뭐니 해서 안된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국익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어요. 국민이 원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 아닙니까.
적어도 자주성 있고 인권을 인정하는 국가라면 어떤 국가에 대한 태도와 감정 표현은 다양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싫어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몇십년을 산 부부 사이에서도 그럴 수 있어요.
상대방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때 비판하는 것은 ‘반미’이고, 짓밟히면서도 벌레보다도 못하게 굴욕을 참는 것이 이익이라는 등식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결국 한미관계가 주인과 머슴과의 관계임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미관계를 개선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중생 추모대회에서 촛불시위하는 것 등을 반미라고 매도하는 발상을 그만둬야 하고 국민이 미국에 대해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보장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길들여진 ‘미국 숭배적 신앙’과 ‘자기 멸시 의식’을 고쳐나가도록 적극적인 국민정신 운동과 교육활동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 내가 사는 군포역 근처에 가니까 한 베트남참전단체에서 ‘반미를 외치는 자들… 어쩌고’ 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베트남에 우리가 참전한 것이 어떻게 해서 인류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가요. 또 우리는 흔히 6·25 전쟁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동양적 ‘보은론’을 내세웁니다. 물론 6·25 사변에 미국이 참전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6·25 전쟁 처음부터 7년간 군에 근무했고 그중 3년 반을 최전방 전선의 포탄 속에서 살았습니다.
감사하는 한편으로 냉정하게 또 미국이 참전한 동기와 목적도 가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남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수립자들이 공공연히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참전은 “남한이 공산화되면 일본이 위태로워진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남한에 파병해야 한다” 이렇게 순서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요도가 일본이 90%, 한국이 10%정도 될 겁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야 물론 보은을 해야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은 가려서 봐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몇 백년 후손들까지도 미국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보은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미국이 50년 이상 남한을 지배함으로서 얻은 이득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을만큼 막대합니다. 사고의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좀 전에 미일군사동맹도 말씀하셨는데 일본 유사법안 통과 이후 국제사회의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화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한국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나누어 생각해보죠. 일본인들의 전통적 사무라이 기질과 문화, 그리고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맛본 그들의 군국주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국민들의 국민성이랄까 감성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현상입니다. 요즘 일본의 그와 같은 현상을 군사대국 부활을 희망하는 노스탈지아(회고적 경향)가 일본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일본이 저렇게 비약적으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어온 것은 일본 국민들의 적극적인 요구나 희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장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고 필요하다면 전쟁까지도 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1950년대부터 일본의 군비증강을 요구하며 미일군사동맹을 강화해 간 미국 동북아전략의 결과지요.
일본은 이미 군사예산이 세계 2위입니다. 미국 바로 다음입니다. 무려 연간 500억 달러 수준입니다. 러시아 프랑스 영국 모두 한참 밑입니다. 만약 그동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미국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벌써 막았을 것입니다. 일본도 정치외교적으로는 미국과 머슴과 상전 정도의 관계에 있어요. 미국의 요청과 강압과 군사대국화의 압력이 없었다면 일본이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북핵’이니 뭐니 하면서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격화시키고 있는 것도 일본 국민들에게 위기의식을 주입해 일본의 군사대국화정책에 이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북한이 최근에 일본인 납치문제 등으로 일본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몇가지 섣부른 과오를 저질렀어요. 당연히 이건 비판받아야 하고 일본 국민들의 군사대국화 경향을 촉진하는 명분을 줬어요.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실수가 있기 이전에 일본은 이미 63년 미국 군대와 함께 한반도에 참전하는 ‘미쯔야(三矢) 계획’이라는 군사연습을 했어요. 유사법안이니 이런 법률들, 그리고 전쟁총동원법과 미국이 북한을 향해서 구축하려하는 소위 미사일방어망(MD시스템) 이것을 일본과 공동계획으로 추진 중입니다.
이것은 북한의 장난감과 같은 미사일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미국의 미사일망과 비교한다면 북한은 장난감에 불과하지요. 이 사실을 북한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미국과 일본, 남한이 목을 조이는데 그냥 가만히는 못죽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거지요. 밟으니까 찔끔한 것이 미사일로 나타났죠.
▲핵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북한에 탄으로 보유한 핵은 없는 것 같아요. 북한의 핵개발은 70년대부터 일관된 미국의 핵선제공격 정책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미국은 80년대 중반에 이스라엘을 지원해서 핵탄두 약 100개와 그것을 탑재한 2000Km 사거리 미사일 200기 정도를 보유하게 한 것으로 세계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근현대사상 아니 인류사상 히틀러 다음가는 최악의 흉악한 반인륜적 정권이자 체제였던 남아연방(남아공화국)을 도와서 6개 반의 핵탄두를 완성시켰어요. 6개는 완성됐고 1개는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91년 6월에는 미국 핵과학자들이 남아공으로 가서 해체작업을 했어요.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핵무기 개발을 도와주고 또 비밀리에 해체했을까요. 이를 보면 미국이 핵과 관련한 범죄자적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93년에 흑인지도자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기로 계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나 다름없는 남아공 백인정권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원해 핵무기를 만들게 해놓고서는 흑인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그것을 해체한 것입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처럼 인종주의 정권을 도와서 핵 국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핵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중국 현대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셔 국민들의 그릇된 중국관을 수정시킨 장본인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장쩌민 이후 후진타오의 중국이 어떤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바람직한 한중관계는 무엇인지요.
지금 중국 지도부를 제4세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중국도 절반 이상이 자본주의화되고 개방됐습니다. 현 중국의 지도부는 이공계 출신이 다수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도 합리적인 측면이 많아 합리적이고 법칙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현 지도부는 최소한 20∼30년을 두고 실용주의 정책을 이어갈 것입니다.
최근 중국이 양자강을 인력의 힘으로 막는 엄청난 공사를 이루었잖아요. 이러한 원대한 현대화 작업을 앞으로 20∼30년은 해야 낙후한 오지까지 현재 발전한 해안평야지역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중국 공산당의 실용적 내치와 단결된 지도력이 계속 유지될 것 같습니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90년 이후 지금까지 저렇게 난맥상을 보인 것은 국가의 지도부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도 중국처럼 공산당의 능력있는 인재들이 정치개혁보다 경제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대안도 없이 정치지도부를 먼저 해체하는 바람에 국가가 난맥상태가 됐어요. 현명하게도 중국은 국가위기를 타개할 당을 유지했다는 것이 소련과 대비되는 점입니다.
중국은 그 기간 동안에는 외부세계와 큰 갈등관계에 개입되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동북아에서 안정적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구상에서 오늘날 국가간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는 미국밖에 없어요. 중국 입장에선 부시가 말하는 ‘악의 축’과 같은 깡패국가가 오히려 미국 부시정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중국으로선 그런 미국에 대해서도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처할 것으로 봅니다. 최근 대북 문제 공조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대만 문제입니다. 미국은 대만의 독립노선을 은근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에 대만독립을 지원하지 않도록 요구하기 위해 상당한 다른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75년 이미 미국은 닉슨-주은래 회담에서 ‘대만은 중국 영토이며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서약했거든요. 그러나 실제는 미국이 대만에 판매하고 있는 무기는 엄청난 정도입니다. 당연히 대만인들에게 “중국도 두렵지 않다, 독립하자”는 정치적 운동을 돕고 있어요.
미국은 대만에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중국에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후원 철회를 교환하기 위한 요구를 하고 있거든요.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위험한 한반도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력입니다. 지금 러시아는 그런 힘이 없어요. 그래서 한국은 중국관계를 끈질기게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일본에 쏟는 소위 ‘대미·대일 공조’ 역량의 30%를 털고 그만큼 힘을 중국과 러시아에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관계가 평화체제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또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동북아 중심화’도 가능해지고 미국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예방할 수도 있겠죠. 지금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당장에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큰 부분이 중국과의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색다른 시각에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국제관계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원로의 한 분으로써 국내문제에도 한마디 해주시죠.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 기대에 비해 국민을 많이 실망시켰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나는 정치평론가는 아닙니다. 큰 관심없이 살았어요. 예전부터 정치인 중에 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민주적 방법으로의 개혁이 혁명적 방법보다 몇십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한예로 지금도 여론조사하면 박정희 전대통령이 1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어떤 지도자가 국회도 해산하고 언론도 탄압하고 국민과 사회 전반에 자갈을 물리고, 오로지 한 사람의 기분과 계획만으로 국가의 정치경제를 18년간이나 혼자서 결정한다면 박정희 보다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입체적이고 변증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단순히 경부고속도를 놓았다’ 이런 식으로 평가기준을 삼아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선 나는 3개월이나 4개월을 가지고 한 정부나 지도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악담에 가까운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어떻든 이 분은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미숙한 점이 많아 좀 고쳐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어요. 특히 국제·외교의 대미국 분야지요.
그러나 일체의 개혁이나 개선을 사대주의나 특권층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비판하거나 정책을 난도질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지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좀더 두고봐야 합니다.
최소한 5년 중에 1년은 여유를 줘야 하지 않나요.
한 예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모양이예요. 그러면 아마추어가 아니면 과거의 야만적인 군사정권 시대부터 부패타락한 권력구조에서 뭔가 해먹은 전문가를 써야 합니까.
특권층이 주장하는 대로 소위 아마추어가 아닌 경험자가 정부를 다 움직여야 한다면 전부 과거 경력자를 불러야 한다는 논리 아닙니까. 결국 해방 이후에도 친일민족반역자를 유경험자라는 구실과 명분으로 다시 불러 썼던 것과 똑같은 논리지요. 전문성과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새부대에 새술을 담지 못한 해방직후 남한의 가장 수치스러운 과거가 노 대통령 비판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역사가 무엇 때문에 중요합니까.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관련해서 특검이 진행 중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의회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국가간 비밀외교 또는 비밀협약에 관련한 예외적인 관례가 있어요. 미국의 경우 상원에서 그런 문제를 논할 때 두 가지의 예외규칙이랄까 정치적·불문률적 관례가 있어요.
하나는 상대방의 신분, 직분, 기구, 합의 진행상황 같은 것을 노출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 국가와 비밀 이야기를 다시는 할 수가 없어지고 향후 큰 장애가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원수의 경우에는 비밀외교 행위에 반국가적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한 법적 책임추궁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이를 전제 하에 청문회나 특별조사를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4억 달러인가 하는 돈이 미국의 강압으로 사게 될 몇백억 달러의 엄청난 무기들 가운데 아파트헬기나 전투기 2대 값에 지나지 않은 가격이기는 하나, 주고받은 과정에 연루된 불법성 여부는 밝혀야 겠죠.
그러나 순전히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뇌물 성격의 대가로 줬느냐 아니면 그밖에 전반적 남북한 평화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필요한 여건조성을 위해서 준 것이냐에 따라 법적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전자라면 대통령도 일정한 법적인 비판이랄까 책임을 져야겠죠. 그러나 남북평화체제의 전반적 구축을 위해 필요했거나 요구된 비용이라면 처벌이나 조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내 삶의 모토는 검소한 생활에 고매한 정신입니다. 심플 라이프 하이 씽킹(Simple life High Thinking)이죠.
물론 경제가 개인 행복의 일정한 바탕이 되는 것은 별 수 없는 것이고 인간도 동물인 이상 어느 수준의 물질적 충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이제 대체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를 보면서 늘 걱정하는 것은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졌을까, 좀 더 검소하게 살면서 인격적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카드빚이니 뭐니 너무도 물질화된 사치와 낭비 그런 생활이 아무런 사회적·도덕적 억제도 없이 생명파괴의 방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국사회가 두려워지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물질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며 한단계 발전하려면 사회주의 정당·철학·사상·생활화·이론·정부 이런 것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같은 눈높이에서 수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이나 동독의 사례를 보면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사회적 범죄와 인간적 타락 이런 것이 금방 뿌리를 내리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잖아요. 돈이 인간의 존재 이유가 되고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이거든요. 예전에 내가 동독에 갔을 때 주민들이 한결같이 “과거 동독에서는 범죄나 타락이 예외적으로 존재했을 뿐 거의 없었다. 서독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사회와 인간의 순결함과 아름다움, 나눔과 평화로움 미덕이 있었다. 그런데 통합되고 자본주의가 홍수처럼 밀려오면서 그 미덕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적인 범죄와 타락이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 물질(돈) 숭배의 생활풍토가 빚어내는 새로운 불행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두 개의 제도가 서서히 융합됐더라면 좌우의 정당 사상 이론 정서 생활양식이 공존해 나갈 수 있는 아주 균형적인 삶 즉, 정신적 존엄과 물질적 충족이 균형을 이룰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유없이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보존할 미덕마저 무너진 거지요.
나는 실제 북한사회가 남한사회의 자본주의적 물질적 혜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남한도 사회주의적 인간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타락과 비인간화, 생명경시 풍토를 고쳐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물질적으로 검소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10대 여성들이 수천만원어치를 백화점에서 마구 쓰는데 어떻게 정신이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어떤 때는 우리 사회가 미국식 소비주의적 자본주의보다 더 피폐화된 것 같아 우려가 많습니다. 난 몇해 안 남았지만 다음 세대는 얼마나 야수적이고 악마적인 사회가 될까 그게 늘 걱정이에요.
자본주의도 이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습니다.
정세용 : 긴 시간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대담 정세용 편집국장 csy@naeil.com
정리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이번에 이라크 전쟁에 우리 정부가 파병할 수밖에 없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우리나라를 주권독립국가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한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데도 우선 우리나라가 사실상 주권독립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과히 유쾌한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와 미국관계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인 1910년 후의 식민지 주인과 노예관계보다는 조금 낫고, 1905년과 1910년 사이의 주인과 머슴관계와 유사한 수준과 위상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철저하고 냉혹하게 비판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답은 뻔합니다. 머슴이 주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애당초 국가가 평등하지 않고 주종관계가 엄연한데.
노 대통령에게 주인다운 자세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자신을 포함한 한국민이 대미관계에서 머슴의 위상밖에 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고서 주장해야 합니다. 또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미관계가 주인과 머슴관계라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소위 대미 현실주의 외교라는 것을 외치는 기득권자들은 주인이 밥만 먹여주면 주권이건 정부건 국민이건 인격적인 독립의 중요성은 전혀 생각지 않는 부류입이다. 미국이 한국에 들어온 반세기동안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게 된 영원한 미국숭배사상과 미국에 대한 철저한 열등의식 이런 것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추악했던 긴 세월의 독재정권하에서 물질적 혜택만 있으면 정신적 인격적 인간적인 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도외시하는 세력들입니다.
그들은 대체로 수구 반공주의·극우 반평화통일적인 전쟁애호적 냉전 사고와 성향의 집단과 개인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한국의 무조건적 복종의 대가로 미국이 경제적 보복을 한국에 하지 않거나 약간의 물질적 혜택을 약속하면 무조건 ‘현실 감각있는 외교, 만족스런 외교’라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입니다.
두 입장 모두 문제는 자기 자신들이 발딛고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미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머슴 수준이라는 냉철한 인식이 없다는 데 있어요.
▲그러면 우리 정부나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과 정부, 대통령이 국가적 인격체로서 미국이라는 상전 격인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려는 적극적으로 추진할 굳은 결의입니다. 군사적인 협정과 조약, 구체적 조건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내부적으로 해야 합니다.
총체적으로 예속된 상태를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가, 자주국민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일정한 고난과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겁니다. 대통령의 방미가 굴욕외교다 아니면 부시가 어깨 한 번 두드려 주었으니 현실외교다 하는 것은 모두 본질을 잘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6·15 남북정상회담이 세돌 조금 지났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무르익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분위기가 지난해 미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긴장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은 전쟁 직전 위기상황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 클린턴 정권은 94년 5월과 6월 사이에 북한에 대해 핵굴복협정을 강요하면서 북한에 대한 전쟁을 준비했지요. 6월 16일이라는 전쟁 개시일까지 정해 놨습니다.
그때 카터 전대통령이 급해서 미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으로 날아가서 김일성 주석과 협의해 전쟁을 막았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그때보다 훨씬 위기의 강도가 높습니다. 나는 2000년 6월 15일의 남북정상회담을 ‘남북평화체제’ 구축의 시발이라고 봅니다. 이는 정말 반세기동안의 민족내 ‘전쟁위기체제’를 상당한 정도까지 평화체제로 돌린 일대 거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국과 부시정권은 한반도에서 이 평화체제가 정착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반도에서 ‘위기 구조’를 지속시켜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촉진할 수 있고 또 남한으로 하여금 북한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필요하지 않는 막대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일 두 나라의 그런 막강한 군사력을 한미일 군사동맹관계로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미국이 미일군사동맹· 한미군사동맹을 물리적 법적 정치적으로 한 정삼각형의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일체화하려는 목적입니다.
부시정권은 94년 10월 클린턴 정부가 체결한 협정으로 미국과 북한사이에 정착되려했던 안정적 구조를 뒤집어버렸습니다.
미국의 이런 목적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 대해서 우호적인 평화협정체제를 원했던 북한으로 하여금 결국 미사일이라든가 그밖에 군사적인 자기 생존보호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었단 말입니다. 미국의 다음 수순은 북한에 대한 전쟁을 함께 수행할 한미일 군사블럭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최근 주한미군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 최신예 무기를 들여오겠다고 하고 우리 정부도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뒤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군사증강정책은 내년 늦가을에 있을 부시 대통령 재선을 위한 예비상황 조성이라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미국을 ‘평화애호국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미국의 정권은 ‘평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하고 막대한 양의 무기와 군수품을 파괴하고 폐기해야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재선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전쟁을 해야 미국 군부와 군수과학과 군수산업이 막강한 힘을 유지합니다. 이 정점에 서있는 것이 미국의 정치인 국회의원들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주(州)에 전쟁목적의 군수자본과 산업시설을 많이 끌어와서 경제가 잘 돌아가야 표를 얻는 것입니다.
미국이 며칠 전에 발표한 것을 보세요. 미국은 앞으로 몇 달 안에 한국에 100억불이 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샘 요격미사일, 아파치 헬리콥터, 유도폭탄 따위의 온갖 무기를 들여오도록 했어요. 한국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군사무기를 사라고 강요하고 있어요.
이게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요. 내년에 예상되는 북한에 대한 전쟁을 위한 것입니다. 위험 천만한 일입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미국은 세계 여러나라 가운데 평화와 인권을 대표하는 나라로 인식돼 있는데요.
50여년 동안 미국의 전쟁과 군사행태를 연구한 나로서 미국은 인권이나 평화를 내세울 자격이 없는 국가라고 단언합니다. 미국이 지원한 약소국가 가운데 민주적 평화적이고 자주적이고 부패타락하지 않은 정권이나 국가는 없습니다. 미국이 지난 기간 지원한 국가는 예외없이 독재자와 독재정권이거나 부패하고 부정하고 국민을 착취하고 억압한 포악한 정권이었습니다.
미국이 지원한 라틴아메리카 15개국은 파나마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독재자들의 정권이었습니다. 아시아 4개 나라인 한국(주저되기는 하지만)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종결 이후 미국의 세계 약 40개국에 대한 군사지원정책은 썩으면 썩을수록 지원하고 깨끗해지면 쓰러뜨리는 정책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74년 칠레의 아옌데 정권은 가장 깨끗한 민주적 선거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선출된 정부였습니다. 이를 미국이 군부와 정보부와 비밀공작대를 시켜서 쓰러뜨린 것 아닙니까.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난 김대중 전대통령의 내치의 개혁여부를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체제 기틀을 마련한 것은 굉장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한국의 2004년 예산을 보면 국방비 증가율이 35%나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군사비로 사들여야 할 F-15기나 조기경보기 한 대가 2억 달러 안팎입니다. 2억 달러면 2500억원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고 있는 대북한 송금액이 4억 달러인 모양인데 전투기 2대 값입니다.
앞으로 북한과 우리가 싸울 필요없는 ‘미국의 전쟁’을 위해서 몇십억 몇백억 달러를 미국무기 구매에 계속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 무기를 사서 군사력을 강화할수록 남북관계는 경색됩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비행기 한두대 값으로 남북민족은 최소한 지난 4년 동안 전쟁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거나 남한의 안전보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위기의식을 높여 한미일 군사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20∼30년 후의 중국에 대한 포위전략으로 우리를 이용할 뿐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나는 가끔 물어봅니다. 대한민국 군대가 한국 군대냐. 난 대한민국 군대는 미합중국의 군대라고 봅니다. 우리 군은 전쟁을 하게되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전시작전권 이양 등에 의해 원하건 원치 않건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 군사력의 일부로 ‘자동적으로 편입’됩니다.
흔히들 우리 국민들은 전투기를 사오고 구축함 만들고 인공위성 쏘아 올리고 탱크가 늘어나면 대한민국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착각입니다. 자기 군대가 자기 국민의 통제하에서(of) 자국을 위해서(for) 자국인에 의해서(by) 쓰여져야 대한민국 군대입니다. 혈세로 사들여온 막강한 군사력은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니면 쓸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군은 미국의· 미국에 의한·미국을 위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지난해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신세대를 중심으로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국익을 해칠 것이란 우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 문제도 좀 전 이야기와 일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국민의 감정 표현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슴과 주인관계에서는 절대로 머슴이 주인을 욕하거나 미워하거나 반대할 수 없지요. 바로 이 관계가 여중생이 죽고 가해자가 처벌도 안받는 상황에서 “반미다, 국익을 해친다”는 어리석은 논리를 내세우는 것에 반영돼 있습니다.
국익이란 뭡니까. 일부는 미국이 경제적 부스러기나 주는 것을 국익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분출하는 것을 ‘반미’니 뭐니 해서 안된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국익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반문을 할 수 있어요. 국민이 원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국익 아닙니까.
적어도 자주성 있고 인권을 인정하는 국가라면 어떤 국가에 대한 태도와 감정 표현은 다양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싫어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그렇고 몇십년을 산 부부 사이에서도 그럴 수 있어요.
상대방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때 비판하는 것은 ‘반미’이고, 짓밟히면서도 벌레보다도 못하게 굴욕을 참는 것이 이익이라는 등식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결국 한미관계가 주인과 머슴과의 관계임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미관계를 개선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중생 추모대회에서 촛불시위하는 것 등을 반미라고 매도하는 발상을 그만둬야 하고 국민이 미국에 대해 표현할 자유와 권리가 보장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또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서 길들여진 ‘미국 숭배적 신앙’과 ‘자기 멸시 의식’을 고쳐나가도록 적극적인 국민정신 운동과 교육활동을 해야 합니다.
얼마 전 내가 사는 군포역 근처에 가니까 한 베트남참전단체에서 ‘반미를 외치는 자들… 어쩌고’ 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더군요.
베트남에 우리가 참전한 것이 어떻게 해서 인류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가요. 또 우리는 흔히 6·25 전쟁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동양적 ‘보은론’을 내세웁니다. 물론 6·25 사변에 미국이 참전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6·25 전쟁 처음부터 7년간 군에 근무했고 그중 3년 반을 최전방 전선의 포탄 속에서 살았습니다.
감사하는 한편으로 냉정하게 또 미국이 참전한 동기와 목적도 가늠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은 남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수립자들이 공공연히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참전은 “남한이 공산화되면 일본이 위태로워진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남한에 파병해야 한다” 이렇게 순서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요도가 일본이 90%, 한국이 10%정도 될 겁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야 물론 보은을 해야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것과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은 가려서 봐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의 몇 백년 후손들까지도 미국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보은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미국이 50년 이상 남한을 지배함으로서 얻은 이득의 크기는 측량할 수 없을만큼 막대합니다. 사고의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좀 전에 미일군사동맹도 말씀하셨는데 일본 유사법안 통과 이후 국제사회의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국주의화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한국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나누어 생각해보죠. 일본인들의 전통적 사무라이 기질과 문화, 그리고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맛본 그들의 군국주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국민들의 국민성이랄까 감성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현상입니다. 요즘 일본의 그와 같은 현상을 군사대국 부활을 희망하는 노스탈지아(회고적 경향)가 일본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일본이 저렇게 비약적으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어온 것은 일본 국민들의 적극적인 요구나 희망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장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위하고 필요하다면 전쟁까지도 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1950년대부터 일본의 군비증강을 요구하며 미일군사동맹을 강화해 간 미국 동북아전략의 결과지요.
일본은 이미 군사예산이 세계 2위입니다. 미국 바로 다음입니다. 무려 연간 500억 달러 수준입니다. 러시아 프랑스 영국 모두 한참 밑입니다. 만약 그동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미국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벌써 막았을 것입니다. 일본도 정치외교적으로는 미국과 머슴과 상전 정도의 관계에 있어요. 미국의 요청과 강압과 군사대국화의 압력이 없었다면 일본이 이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북핵’이니 뭐니 하면서 한반도 위기상황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격화시키고 있는 것도 일본 국민들에게 위기의식을 주입해 일본의 군사대국화정책에 이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북한이 최근에 일본인 납치문제 등으로 일본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몇가지 섣부른 과오를 저질렀어요. 당연히 이건 비판받아야 하고 일본 국민들의 군사대국화 경향을 촉진하는 명분을 줬어요.
그러나 지난해 북한의 실수가 있기 이전에 일본은 이미 63년 미국 군대와 함께 한반도에 참전하는 ‘미쯔야(三矢) 계획’이라는 군사연습을 했어요. 유사법안이니 이런 법률들, 그리고 전쟁총동원법과 미국이 북한을 향해서 구축하려하는 소위 미사일방어망(MD시스템) 이것을 일본과 공동계획으로 추진 중입니다.
이것은 북한의 장난감과 같은 미사일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미국의 미사일망과 비교한다면 북한은 장난감에 불과하지요. 이 사실을 북한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미국과 일본, 남한이 목을 조이는데 그냥 가만히는 못죽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거지요. 밟으니까 찔끔한 것이 미사일로 나타났죠.
▲핵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합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북한에 탄으로 보유한 핵은 없는 것 같아요. 북한의 핵개발은 70년대부터 일관된 미국의 핵선제공격 정책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미국은 80년대 중반에 이스라엘을 지원해서 핵탄두 약 100개와 그것을 탑재한 2000Km 사거리 미사일 200기 정도를 보유하게 한 것으로 세계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은 근현대사상 아니 인류사상 히틀러 다음가는 최악의 흉악한 반인륜적 정권이자 체제였던 남아연방(남아공화국)을 도와서 6개 반의 핵탄두를 완성시켰어요. 6개는 완성됐고 1개는 공정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91년 6월에는 미국 핵과학자들이 남아공으로 가서 해체작업을 했어요.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핵무기 개발을 도와주고 또 비밀리에 해체했을까요. 이를 보면 미국이 핵과 관련한 범죄자적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93년에 흑인지도자 만델라 정권이 들어서기로 계획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나 다름없는 남아공 백인정권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원해 핵무기를 만들게 해놓고서는 흑인정권이 들어서게 되자 그것을 해체한 것입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처럼 인종주의 정권을 도와서 핵 국가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핵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중국 현대사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셔 국민들의 그릇된 중국관을 수정시킨 장본인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장쩌민 이후 후진타오의 중국이 어떤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바람직한 한중관계는 무엇인지요.
지금 중국 지도부를 제4세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는 중국도 절반 이상이 자본주의화되고 개방됐습니다. 현 중국의 지도부는 이공계 출신이 다수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도 합리적인 측면이 많아 합리적이고 법칙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중국의 현 지도부는 최소한 20∼30년을 두고 실용주의 정책을 이어갈 것입니다.
최근 중국이 양자강을 인력의 힘으로 막는 엄청난 공사를 이루었잖아요. 이러한 원대한 현대화 작업을 앞으로 20∼30년은 해야 낙후한 오지까지 현재 발전한 해안평야지역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중국 공산당의 실용적 내치와 단결된 지도력이 계속 유지될 것 같습니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90년 이후 지금까지 저렇게 난맥상을 보인 것은 국가의 지도부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도 중국처럼 공산당의 능력있는 인재들이 정치개혁보다 경제개혁을 했어야 하는데 대안도 없이 정치지도부를 먼저 해체하는 바람에 국가가 난맥상태가 됐어요. 현명하게도 중국은 국가위기를 타개할 당을 유지했다는 것이 소련과 대비되는 점입니다.
중국은 그 기간 동안에는 외부세계와 큰 갈등관계에 개입되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동북아에서 안정적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구상에서 오늘날 국가간 전쟁을 일으키는 주체는 미국밖에 없어요. 중국 입장에선 부시가 말하는 ‘악의 축’과 같은 깡패국가가 오히려 미국 부시정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중국으로선 그런 미국에 대해서도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처할 것으로 봅니다. 최근 대북 문제 공조를 보면 알 수 있어요.
또 하나는 대만 문제입니다. 미국은 대만의 독립노선을 은근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에 대만독립을 지원하지 않도록 요구하기 위해 상당한 다른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지요.
75년 이미 미국은 닉슨-주은래 회담에서 ‘대만은 중국 영토이며 대만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서약했거든요. 그러나 실제는 미국이 대만에 판매하고 있는 무기는 엄청난 정도입니다. 당연히 대만인들에게 “중국도 두렵지 않다, 독립하자”는 정치적 운동을 돕고 있어요.
미국은 대만에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중국에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후원 철회를 교환하기 위한 요구를 하고 있거든요.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위험한 한반도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력입니다. 지금 러시아는 그런 힘이 없어요. 그래서 한국은 중국관계를 끈질기게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일본에 쏟는 소위 ‘대미·대일 공조’ 역량의 30%를 털고 그만큼 힘을 중국과 러시아에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한반도의 안정과 남북관계가 평화체제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또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동북아 중심화’도 가능해지고 미국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예방할 수도 있겠죠. 지금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전쟁을 당장에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큰 부분이 중국과의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합니다.
▲색다른 시각에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국제관계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원로의 한 분으로써 국내문제에도 한마디 해주시죠. 참여정부가 출범 초기 기대에 비해 국민을 많이 실망시켰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나는 정치평론가는 아닙니다. 큰 관심없이 살았어요. 예전부터 정치인 중에 잘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민주적 방법으로의 개혁이 혁명적 방법보다 몇십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한예로 지금도 여론조사하면 박정희 전대통령이 1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어떤 지도자가 국회도 해산하고 언론도 탄압하고 국민과 사회 전반에 자갈을 물리고, 오로지 한 사람의 기분과 계획만으로 국가의 정치경제를 18년간이나 혼자서 결정한다면 박정희 보다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입체적이고 변증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단순히 경부고속도를 놓았다’ 이런 식으로 평가기준을 삼아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우선 나는 3개월이나 4개월을 가지고 한 정부나 지도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악담에 가까운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어떻든 이 분은 내가 보기에도 굉장히 미숙한 점이 많아 좀 고쳐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어요. 특히 국제·외교의 대미국 분야지요.
그러나 일체의 개혁이나 개선을 사대주의나 특권층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비판하거나 정책을 난도질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지극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좀더 두고봐야 합니다.
최소한 5년 중에 1년은 여유를 줘야 하지 않나요.
한 예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모양이예요. 그러면 아마추어가 아니면 과거의 야만적인 군사정권 시대부터 부패타락한 권력구조에서 뭔가 해먹은 전문가를 써야 합니까.
특권층이 주장하는 대로 소위 아마추어가 아닌 경험자가 정부를 다 움직여야 한다면 전부 과거 경력자를 불러야 한다는 논리 아닙니까. 결국 해방 이후에도 친일민족반역자를 유경험자라는 구실과 명분으로 다시 불러 썼던 것과 똑같은 논리지요. 전문성과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새부대에 새술을 담지 못한 해방직후 남한의 가장 수치스러운 과거가 노 대통령 비판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역사가 무엇 때문에 중요합니까.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세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관련해서 특검이 진행 중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의회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국가간 비밀외교 또는 비밀협약에 관련한 예외적인 관례가 있어요. 미국의 경우 상원에서 그런 문제를 논할 때 두 가지의 예외규칙이랄까 정치적·불문률적 관례가 있어요.
하나는 상대방의 신분, 직분, 기구, 합의 진행상황 같은 것을 노출시키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 국가와 비밀 이야기를 다시는 할 수가 없어지고 향후 큰 장애가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원수의 경우에는 비밀외교 행위에 반국가적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한 법적 책임추궁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이를 전제 하에 청문회나 특별조사를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4억 달러인가 하는 돈이 미국의 강압으로 사게 될 몇백억 달러의 엄청난 무기들 가운데 아파트헬기나 전투기 2대 값에 지나지 않은 가격이기는 하나, 주고받은 과정에 연루된 불법성 여부는 밝혀야 겠죠.
그러나 순전히 정상회담을 하기 위한 뇌물 성격의 대가로 줬느냐 아니면 그밖에 전반적 남북한 평화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여러 가지 필요한 여건조성을 위해서 준 것이냐에 따라 법적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전자라면 대통령도 일정한 법적인 비판이랄까 책임을 져야겠죠. 그러나 남북평화체제의 전반적 구축을 위해 필요했거나 요구된 비용이라면 처벌이나 조사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한 말씀하신다면.
내 삶의 모토는 검소한 생활에 고매한 정신입니다. 심플 라이프 하이 씽킹(Simple life High Thinking)이죠.
물론 경제가 개인 행복의 일정한 바탕이 되는 것은 별 수 없는 것이고 인간도 동물인 이상 어느 수준의 물질적 충족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수준은 이제 대체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를 보면서 늘 걱정하는 것은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졌을까, 좀 더 검소하게 살면서 인격적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카드빚이니 뭐니 너무도 물질화된 사치와 낭비 그런 생활이 아무런 사회적·도덕적 억제도 없이 생명파괴의 방향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한국사회가 두려워지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물질적 가치와 인간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며 한단계 발전하려면 사회주의 정당·철학·사상·생활화·이론·정부 이런 것을 자본주의의 그것과 같은 눈높이에서 수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련이나 동독의 사례를 보면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사회적 범죄와 인간적 타락 이런 것이 금방 뿌리를 내리더라고요. 자본주의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잖아요. 돈이 인간의 존재 이유가 되고 행복의 척도가 되는 것이거든요. 예전에 내가 동독에 갔을 때 주민들이 한결같이 “과거 동독에서는 범죄나 타락이 예외적으로 존재했을 뿐 거의 없었다. 서독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사회와 인간의 순결함과 아름다움, 나눔과 평화로움 미덕이 있었다. 그런데 통합되고 자본주의가 홍수처럼 밀려오면서 그 미덕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주의적인 범죄와 타락이 사회를 지배하게 됐다. 물질(돈) 숭배의 생활풍토가 빚어내는 새로운 불행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두 개의 제도가 서서히 융합됐더라면 좌우의 정당 사상 이론 정서 생활양식이 공존해 나갈 수 있는 아주 균형적인 삶 즉, 정신적 존엄과 물질적 충족이 균형을 이룰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여유없이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보존할 미덕마저 무너진 거지요.
나는 실제 북한사회가 남한사회의 자본주의적 물질적 혜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남한도 사회주의적 인간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타락과 비인간화, 생명경시 풍토를 고쳐나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물질적으로 검소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10대 여성들이 수천만원어치를 백화점에서 마구 쓰는데 어떻게 정신이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어떤 때는 우리 사회가 미국식 소비주의적 자본주의보다 더 피폐화된 것 같아 우려가 많습니다. 난 몇해 안 남았지만 다음 세대는 얼마나 야수적이고 악마적인 사회가 될까 그게 늘 걱정이에요.
자본주의도 이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위태롭습니다.
정세용 : 긴 시간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대담 정세용 편집국장 csy@naeil.com
정리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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