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중심축이 없다
유승삼 언론인 전 대한매일 사장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쪽은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찍은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그의 상대적 개혁성 때문에 그를 선택한 사람은 목소리 커진 보수층의 비난에 에워싸여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외교, 경제정책, 노동문제 등 주요 국정 추진에서 이 정부는 뜻밖에도 명확한 슬로건이나 색깔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입에서 즉흥적이고 절도가 없는 발언까지 불쑥불쑥 나오고 있어 그런 인상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대학생이 한 30명 모인 자리에서 김두관 행자부 장관에 대한 한나라 당의 해임건의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40-50대의 기성층에게 기회 있는 대로 물어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한나라 당을 되치기는커녕 정치공세에 밀려 그 해임안을 받아 들여야 할 처지에 놓였으니 딱한 일이다. 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지지 기반이 그만큼 약해 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해임건의안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해임 건의안은 받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의 비논리적인 이중잣대도 문제는 문제이다. 그러나 한나라 당이나 보수 언론의 공세가 큰 영향을 준 결과이건 아니건간에 그동안의 지속적인 인기 추락이 이번과 같은 정부 곤경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노대통령, 아리송한 개혁의 목표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등장한 정부인만큼 ‘변화와 개혁’의 강도는 어느 정권 때보다 높으리라고 국민들은 각오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변화시키고 개혁하려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일반 국민은 물론 대선 때의 적극적 지지층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개혁’이란 구호는 어느 정권이나 부르짖었다. 심지어 전두환, 노태우 정권도 개혁을 외쳤다. 구호만으로, 또는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식의 막연한 백화점식 나열만으로는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혁의 분명한 대상과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개혁의 성격을 한마디로 대변해줄 수 있는 간판 격의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가 가는 방향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옳다고 여기면 정부를 따라 갈 수 있다. 진정한 권력, 정부의 진정한 파워도 그때 생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하면 우리는 얼른 ‘남북관계’를 떠올린다. 그 평가야 어떻든 김대중 정부가 그것에 정권의 운명을 건 결과, 온 국민이 남북관계를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뚜렷이 인식했던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실로 남북관계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상징이자 정책의 간판이었고 정권의 색깔이었으며 권력의 원천이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출마를 결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왜 출마를 했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쉽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슬로건의 설정이었다. 감세 등을 통한 ‘중산층 살리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중산층 이하 계층은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한 고용불안정과 자녀 교육 걱정, 노후불안 등의 문제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는데 클린턴 진영의 슬로건은 바로 이를 겨냥한 것이었다.
클린턴은 “지도자가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가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결코 따라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선한 후에도 그는 간판 공약인 ‘중산층 살리기’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해 국민들이 그의 목표를 분명히 알게 했다.
희망주는 슬로건을 제시하라
최근 케이블TV 홈쇼핑의 이민 상품에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희망자들은 주로 노대통령의 지지표가 많이 나왔던 30대와 40대 초반 연령층이었다고 한다. 이민 희망 이유는 힘겨운 자녀 교육비와 고용불안, 아파트값의 상승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우연히도 클린턴이 출마할 당시 미국 중산층 이하 계층이 가졌던 불만과 거의 일치한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불만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사회의 정치가 그들에게 장차는 그들의 불안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뿐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의 문제는 ‘개혁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적이지 않은 데 있다. 어수선하기만 할뿐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뚜렷한 개혁과제의 제시가 없는 것이다.
개혁의 중심축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개혁의 간판을 높이 걸어 국민 모두가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명확히 알게 하고 그것에 정권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의 희망도 살아나고 정권의 지지기반도 굳건해진다.
유승삼 언론인 전 대한매일 사장
지난 6개월 동안,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쪽은 지난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찍은 사람들일 것이다. 특히 그의 상대적 개혁성 때문에 그를 선택한 사람은 목소리 커진 보수층의 비난에 에워싸여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외교, 경제정책, 노동문제 등 주요 국정 추진에서 이 정부는 뜻밖에도 명확한 슬로건이나 색깔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입에서 즉흥적이고 절도가 없는 발언까지 불쑥불쑥 나오고 있어 그런 인상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대학생이 한 30명 모인 자리에서 김두관 행자부 장관에 대한 한나라 당의 해임건의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40-50대의 기성층에게 기회 있는 대로 물어본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한나라 당을 되치기는커녕 정치공세에 밀려 그 해임안을 받아 들여야 할 처지에 놓였으니 딱한 일이다. 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정부의 지지 기반이 그만큼 약해 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해임건의안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해임 건의안은 받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론의 비논리적인 이중잣대도 문제는 문제이다. 그러나 한나라 당이나 보수 언론의 공세가 큰 영향을 준 결과이건 아니건간에 그동안의 지속적인 인기 추락이 이번과 같은 정부 곤경을 가져온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노대통령, 아리송한 개혁의 목표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등장한 정부인만큼 ‘변화와 개혁’의 강도는 어느 정권 때보다 높으리라고 국민들은 각오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변화시키고 개혁하려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일반 국민은 물론 대선 때의 적극적 지지층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개혁’이란 구호는 어느 정권이나 부르짖었다. 심지어 전두환, 노태우 정권도 개혁을 외쳤다. 구호만으로, 또는 모든 것을 다 바꾸겠다는 식의 막연한 백화점식 나열만으로는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혁의 분명한 대상과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한다. 아울러 개혁의 성격을 한마디로 대변해줄 수 있는 간판 격의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정부가 가는 방향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옳다고 여기면 정부를 따라 갈 수 있다. 진정한 권력, 정부의 진정한 파워도 그때 생긴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 하면 우리는 얼른 ‘남북관계’를 떠올린다. 그 평가야 어떻든 김대중 정부가 그것에 정권의 운명을 건 결과, 온 국민이 남북관계를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뚜렷이 인식했던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실로 남북관계는 김대중 정권의 정치적 상징이자 정책의 간판이었고 정권의 색깔이었으며 권력의 원천이었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출마를 결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왜 출마를 했나’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쉽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슬로건의 설정이었다. 감세 등을 통한 ‘중산층 살리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중산층 이하 계층은 계속되는 불경기로 인한 고용불안정과 자녀 교육 걱정, 노후불안 등의 문제 때문에 불만이 가득했는데 클린턴 진영의 슬로건은 바로 이를 겨냥한 것이었다.
클린턴은 “지도자가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가는 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은 결코 따라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선한 후에도 그는 간판 공약인 ‘중산층 살리기’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해 국민들이 그의 목표를 분명히 알게 했다.
희망주는 슬로건을 제시하라
최근 케이블TV 홈쇼핑의 이민 상품에 젊은층이 대거 몰렸다. 희망자들은 주로 노대통령의 지지표가 많이 나왔던 30대와 40대 초반 연령층이었다고 한다. 이민 희망 이유는 힘겨운 자녀 교육비와 고용불안, 아파트값의 상승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우연히도 클린턴이 출마할 당시 미국 중산층 이하 계층이 가졌던 불만과 거의 일치한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불만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 사회의 정치가 그들에게 장차는 그들의 불안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을 뿐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 노무현정부의 문제는 ‘개혁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적이지 않은 데 있다. 어수선하기만 할뿐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뚜렷한 개혁과제의 제시가 없는 것이다.
개혁의 중심축을 빨리 구축해야 한다. 개혁의 간판을 높이 걸어 국민 모두가 개혁의 방향과 과제를 명확히 알게 하고 그것에 정권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자의 희망도 살아나고 정권의 지지기반도 굳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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