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이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변수라는 결과가 나왔다. 본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대간 갈등 정도가 심각한 편’이라는 응답이 67.8%로, 지역갈등이나 이념갈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을 보였다.
대선과 함께 떠오른 신세대
지난날 한국사회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는 대부분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켰다. 60년대의 4.19세대, 70년대의 유신세대, 80년대의 광주세대, 90년대의 386세대가 그러했고, 지난 대선에서 막판 역전드라마를 연출시킨 이른바 인터넷 세대가 그러했다. 대선 당시 두 후보를 둘러싸고 대결 양상까지 보였던 2030세대와 5060세대는 그로부터 1년이 채 못되는 사이, 다양한 사회 현안에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내닫는 중이다. 본지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0대 이상은 71.5%가 동의한 반면, 30대는 28.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남북대화가 한미관계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0대는 70.3%가 동의한 반면, 50대 이상은 58.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리더십의 양분 현상을 보인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중이다.
파행적·압축적 발전의 산물
세대 갈등은 한국사회의 파행적 발전이 낳은 부산물이다. 서구 선진사회가 매 과제별로 검증을 거치며 변화해온 반면, 우리 사회는 검증을 단축하거나 압축하며, 때로는 건너뛰는 방식으로 마치 롤러코스트가 달리듯 페달을 밟아 왔다.
그 결과 세대간 능력차이가 확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기획예산처 변양균 차관은 60년대 이전 세대를 농경사회의 ‘수확 체감’세대로, 30~40대 산업화 세대를 ‘수확 체증’세대로, 다시 10~20대 정보화 세대를 ‘수확 폭증’세대로 묘사한다. 수확 체감세대는 투입에 비해 산출이 부족한 세대이며, 수확 체증세대는 하나를 투입하면 두세개의 산출이 나오는 세대이고, 수확 폭증세대는 컴퓨터 칩의 처리 능력이 그러하듯 폭발적인 생산성을 과시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장에 대한 세대간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대간의 갈등은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어 왔을까. 그것은 부분적으로 부모 세대의 불행에, 부분적으로 자식 세대의 미숙함에 기인하며, 최종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것이 연세대 정과리교수의 설명이다. 정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이전의 기성세대는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성장해왔고 그 속에서 다소 권력과의 타협 속에 성장과 진보를 추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이 자식 세대에게 물려준 것은 경험이 빠진 복지였으며, 자식 세대는 이 때문에 교과서적인 진보관을 가지고 경험에 기초한 판단보다는 감각적인 판단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늘 명제가 앞선 사회였다. 선진국들은 시대의 전통 위에서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에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가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시대적 맥락을 뛰어넘어 명제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교수의 지적이다.
갈등구조의 뿌리는 보수세력
극단적으로 현재와 같은 갈등 구조가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을 지닌 보수세력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진보학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계간지 <철학과 현실=""> 가을호에서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보수세력’이라면서, 노무현정부는 ‘재벌 개혁의 후퇴나 자본시장 개혁의 유보, 일관성 없는 노동문제 대응 등으로 오히려 기득권 세력에게 희망을 안겨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노무현정부는 ‘새로운 개혁주도세력을 형성하여 안정과 성장을 달성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세대 갈등은 드러난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송호근소장은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 세대갈등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 내용과 변화의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라며 “2030의 친북·반미정서도 대북관계, 미국의 대외정책 등 상황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고 그러므로 이는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가 오랜 식민지배와 독재체제, 그리고 관료주의로 인해 공공정책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를 꺼리는 현상을 낳았다는 이른바 ‘운명주의 통치 증후군’을 반박하며 2030세대의 건강함이 오히려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용덕교수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젊은 층의 적극적이고 협동적인 참여 열기는 밑으로부터 자발적인 협동과 참여에 의해 공공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진 사례”라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함께 공동체주의도 더불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까지 말한다.
세대 통합은 확고한 성취를 담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주목받은 집단은 단연 386세대이다. 그들은 현정부의 많은 개혁에 앞장서 왔으며 적지 않은 리더십을 행사하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 그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시선이 이전처럼 곱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청와대의 386 참모들이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는 등 경험 미숙이 빚어낸 일련의 행적을 두고 이제는 오히려 386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이와 관련, 송영길(통합신당) 의원은 “중국 공산당의 경우 혁명세대가 차세대 리더십을 키워가면서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어 사회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서,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세대통합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대 갈등은 과도기사회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며, 두 세대가 서로의 단점을 상대의 장점으로부터 보완하려 하는 한 심각한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정치가 정상적인 역사의 진화과정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면 갈등은 발전의 동력으로 전화될 수도 있다. 세대통합은 또한 균형잡힌 성장을 담보하며,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만일 그 반대라면? 일찍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고란 감사하는 것(Das Denken dankt)’이라 말했다. 이 말에는 사고란 존재에 복종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세대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통합의 노력을 포기하고 갈등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시도가 생기게 된다면, 그로부터 아마도 ‘하이데거식 비극’이 잉태될 터이다.철학과>
대선과 함께 떠오른 신세대
지난날 한국사회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는 대부분 새로운 세대를 탄생시켰다. 60년대의 4.19세대, 70년대의 유신세대, 80년대의 광주세대, 90년대의 386세대가 그러했고, 지난 대선에서 막판 역전드라마를 연출시킨 이른바 인터넷 세대가 그러했다. 대선 당시 두 후보를 둘러싸고 대결 양상까지 보였던 2030세대와 5060세대는 그로부터 1년이 채 못되는 사이, 다양한 사회 현안에서 점점 다른 방향으로 내닫는 중이다. 본지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0대 이상은 71.5%가 동의한 반면, 30대는 28.3%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남북대화가 한미관계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20대는 70.3%가 동의한 반면, 50대 이상은 58.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우리 사회가 세대별로 리더십의 양분 현상을 보인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중이다.
파행적·압축적 발전의 산물
세대 갈등은 한국사회의 파행적 발전이 낳은 부산물이다. 서구 선진사회가 매 과제별로 검증을 거치며 변화해온 반면, 우리 사회는 검증을 단축하거나 압축하며, 때로는 건너뛰는 방식으로 마치 롤러코스트가 달리듯 페달을 밟아 왔다.
그 결과 세대간 능력차이가 확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기획예산처 변양균 차관은 60년대 이전 세대를 농경사회의 ‘수확 체감’세대로, 30~40대 산업화 세대를 ‘수확 체증’세대로, 다시 10~20대 정보화 세대를 ‘수확 폭증’세대로 묘사한다. 수확 체감세대는 투입에 비해 산출이 부족한 세대이며, 수확 체증세대는 하나를 투입하면 두세개의 산출이 나오는 세대이고, 수확 폭증세대는 컴퓨터 칩의 처리 능력이 그러하듯 폭발적인 생산성을 과시하는 세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장에 대한 세대간의 인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대간의 갈등은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어 왔을까. 그것은 부분적으로 부모 세대의 불행에, 부분적으로 자식 세대의 미숙함에 기인하며, 최종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것이 연세대 정과리교수의 설명이다. 정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이전의 기성세대는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성장해왔고 그 속에서 다소 권력과의 타협 속에 성장과 진보를 추구해 왔다. 그리고 그들이 자식 세대에게 물려준 것은 경험이 빠진 복지였으며, 자식 세대는 이 때문에 교과서적인 진보관을 가지고 경험에 기초한 판단보다는 감각적인 판단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늘 명제가 앞선 사회였다. 선진국들은 시대의 전통 위에서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에 사회적 통합을 이룰 수가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시대적 맥락을 뛰어넘어 명제만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경험을 축적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교수의 지적이다.
갈등구조의 뿌리는 보수세력
극단적으로 현재와 같은 갈등 구조가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을 지닌 보수세력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진보학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계간지 <철학과 현실=""> 가을호에서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득권 보수세력’이라면서, 노무현정부는 ‘재벌 개혁의 후퇴나 자본시장 개혁의 유보, 일관성 없는 노동문제 대응 등으로 오히려 기득권 세력에게 희망을 안겨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므로 노무현정부는 ‘새로운 개혁주도세력을 형성하여 안정과 성장을 달성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세대 갈등은 드러난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송호근소장은 “우리 사회에서 전면적 세대갈등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 내용과 변화의 속도에 대한 견해 차이”라며 “2030의 친북·반미정서도 대북관계, 미국의 대외정책 등 상황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고 그러므로 이는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가 오랜 식민지배와 독재체제, 그리고 관료주의로 인해 공공정책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를 꺼리는 현상을 낳았다는 이른바 ‘운명주의 통치 증후군’을 반박하며 2030세대의 건강함이 오히려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용덕교수는 “월드컵에서 보여준 젊은 층의 적극적이고 협동적인 참여 열기는 밑으로부터 자발적인 협동과 참여에 의해 공공문제의 해결이 이루어진 사례”라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주의와 함께 공동체주의도 더불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까지 말한다.
세대 통합은 확고한 성취를 담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주목받은 집단은 단연 386세대이다. 그들은 현정부의 많은 개혁에 앞장서 왔으며 적지 않은 리더십을 행사하는 중이다. 그러나 최근 그들에게 보내는 사회의 시선이 이전처럼 곱지만은 않다. 이를테면 청와대의 386 참모들이 잇따라 구설수에 오르는 등 경험 미숙이 빚어낸 일련의 행적을 두고 이제는 오히려 386세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의 반론도 만만찮다. 이와 관련, 송영길(통합신당) 의원은 “중국 공산당의 경우 혁명세대가 차세대 리더십을 키워가면서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어 사회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서,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세대통합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대 갈등은 과도기사회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며, 두 세대가 서로의 단점을 상대의 장점으로부터 보완하려 하는 한 심각한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정치가 정상적인 역사의 진화과정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면 갈등은 발전의 동력으로 전화될 수도 있다. 세대통합은 또한 균형잡힌 성장을 담보하며,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만일 그 반대라면? 일찍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고란 감사하는 것(Das Denken dankt)’이라 말했다. 이 말에는 사고란 존재에 복종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세대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통합의 노력을 포기하고 갈등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시도가 생기게 된다면, 그로부터 아마도 ‘하이데거식 비극’이 잉태될 터이다.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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