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런던에서 워크솝, 뉴캐슬까지
Open Space!(공공의 공간을 대중에게!)
왕실 사냥터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소유의 개방공간으로 … 클럼버파크
9월 13일 한국 시간 오전 10시 30분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홍콩을 거쳐 영국 히드로(Heathrow)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8시간 시차를 계산하면 장장 18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렌터카를 빌려 우리가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말이라 7인승 승합차가 없단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못한 것도 7인승이 없어서였는데, 큰일이었다.
할 수 없이 1400cc 푸조 승용차를 빌려 5명이 탔다. 트렁크는 물론 좌석에까지 짐을 싣고 안고 … 다음날 7인승 승합차로 바꾸지 못했다면 1주일 내내 차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최초의 자동차전용도로인 M1을 타고 000
첫날밤은 런던 인근의 레딩(READING)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고 다음날 다시 히드로공항으로 가서 렌터카를 교체했다.
포드사에서 나온 7인승 갤럭시 디젤엔진 자동차였는데, 트렁크와 뒷좌석에 짐을 싣고 5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번 영국 방문의 제일 북쪽 목적지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가는 길 중간중간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를 방문하기로 하고 1박 2일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런던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M1 고속도로를 타고 하염없이 북쪽으로 달렸다. 영국 최초의 자동차전용도로인 M1은 중간중간 국도 A1과 길을 공유하며 잉글랜드 북쪽 도시 뉴캐슬까지 연결된다.
영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선도 우리와는 반대다. 그래서 영국 유학파인 단국대 조명래 교수가 첫 번째로 운전대를 잡았다.
1시간 정도 달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 뒤 운전자를 바꿔 직접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자꾸 차가 차선 왼쪽으로 붙기도 하고 영 어색하더니 곧 적응이 되었다. 80~90마일(1마일은 1.6km) 정도의 속도로 쭉 달려 오후 1시 30분 경 미들랜드 북쪽의 작은 도시 워크솝(WORKSOP)에 도착했다.
로빈훗의 숲에서 내셔널트러스트로 000
워크솝에는 18세기 앤(Anne) 여왕(1665-1714)의 사냥터였던 클럼버파크(Clumber Park)가 있다.
일요일인 데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클럼버파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숲속을 거니는 사람들, 호수 양안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영국 전통 구기종목인 크리켓 경기를 하는 이들 … 공원 전체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하늘나라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클럼버파크의 정형화되지 않은 수령 200년 이상의 숲은 평온한 호수와 곳곳에 펼쳐진 구릉지대 경작지, 방문객들이 거닐게 되는 꼬불꼬불한 오솔길, 늘씬한 조지안 시대 첨탑을 가진 클래식한 건축물들과 함께 완벽한 인공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450만평에 이르는 클럼버파크는 전체가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소유이다. 이 사이트는 그 규모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넓은 주차시설과 잔디밭, 자전거로 일주할 수 있는 코스, 밭과 식물원, 전통 건축물 내부에 마련된 티룸(Tea Room), 관상식물을 판매하는 식물원, 다달이 계획되어 있는 많은 행사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원래 이 일대 숲은 의적 로빈훗의 무대 가운데 하나였다. 쉐우드숲(Sherwood Forest)의 일부분으로 형성된 클럼버파크는 1707년 스튜어트가의 마지막 왕 앤 여왕의 사냥터로 이용하기 위해 뉴캐슬의 공작(the Duke of Newcastle)에게 하사되었다.
1760년 경부터 현재와 같은 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1928년 7번째 공작이 사망하고 1946년 내셔널트러스트가 이곳을 취득할 때까지 여러 가지 부침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경매에 들어가 전쟁부(War Department) 건물, 병기창고, 훈련장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46년 내셔널트러스트가 공공기부금과 지역 당국의 후원금 등으로 구매한 뒤 현재에 이른다.
산업혁명의 그늘에서 시작된 운동 000
클럼버파크는 19세기 중반 ‘공간 개방(open space) 운동’의 흐름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공원, 런던의 하이드파크나 리젠트파크도 일찍이 왕이 사냥을 즐기던 숲이었다. 왕실 레저용으로 관리돼오던 광대한 숲이 오늘날처럼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공간 개방 운동의 결과이다.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인구는 크게 늘어났다. 19세기 초에 이미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2배로 팽창했고 도시에서는 인구과밀과 함께 빈곤계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빈민들은 공장 근처에 몰려 살았다. 오염된 대기 속에 휴일에 어디 나갈 곳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콜레라가 번졌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방 공간(open space)을 대중들에게 되돌리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어둠을 틈타 울타리를 부수는 등 강력한 운동을 펼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운동의 중심세력 가운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창설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헌터(1844~1913)가 있었다. 그는 공유지보존협회(Common Preservation Society)의 변호사로 채용된 후 윔블던 공유지, 워즈워스 공유지, 파드니 황야를 일반인에게 개방시키는 일에 깊이 관여했다.
1884년, 헌터는 또 다른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옥타비아 힐(1838~1912)에게 보내는 편지 여백에 ‘National Trus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메모가 내셔널트러스트로 발전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5000년 이상 유지돼 온 영국의 자연경관 000
오후 4시 클럼버파크를 출발,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따라 뉴캐슬 서쪽의 구릉지대에 차를 세웠다.
오랜 기간 빙하에 깎인 완만한 구릉이 끝없이 이어지고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는 영국 특유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이었다. 비록 ‘인공의(handmade)’ 자연이라지만 청동기시대 이후 5000년 이상 이런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B&B를 찾아봅시다”라는 조 교수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B&B는 ‘Bed & Breakfast’의 약어로 침대와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민박을 말한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토우로우(Tow Law) 언덕의‘꿀벌 민박(The Bee B&B)’은 농부의 거친 손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집주인도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이어서 한층 편안한 느낌이었다.
Open Space!(공공의 공간을 대중에게!)
왕실 사냥터에서 내셔널트러스트 소유의 개방공간으로 … 클럼버파크
9월 13일 한국 시간 오전 10시 30분에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홍콩을 거쳐 영국 히드로(Heathrow)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8시간 시차를 계산하면 장장 18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렌터카를 빌려 우리가 직접 운전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주말이라 7인승 승합차가 없단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못한 것도 7인승이 없어서였는데, 큰일이었다.
할 수 없이 1400cc 푸조 승용차를 빌려 5명이 탔다. 트렁크는 물론 좌석에까지 짐을 싣고 안고 … 다음날 7인승 승합차로 바꾸지 못했다면 1주일 내내 차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최초의 자동차전용도로인 M1을 타고 000
첫날밤은 런던 인근의 레딩(READING)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자고 다음날 다시 히드로공항으로 가서 렌터카를 교체했다.
포드사에서 나온 7인승 갤럭시 디젤엔진 자동차였는데, 트렁크와 뒷좌석에 짐을 싣고 5명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이번 영국 방문의 제일 북쪽 목적지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가는 길 중간중간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를 방문하기로 하고 1박 2일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런던 외곽순환고속도로에서 M1 고속도로를 타고 하염없이 북쪽으로 달렸다. 영국 최초의 자동차전용도로인 M1은 중간중간 국도 A1과 길을 공유하며 잉글랜드 북쪽 도시 뉴캐슬까지 연결된다.
영국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선도 우리와는 반대다. 그래서 영국 유학파인 단국대 조명래 교수가 첫 번째로 운전대를 잡았다.
1시간 정도 달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쉰 뒤 운전자를 바꿔 직접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자꾸 차가 차선 왼쪽으로 붙기도 하고 영 어색하더니 곧 적응이 되었다. 80~90마일(1마일은 1.6km) 정도의 속도로 쭉 달려 오후 1시 30분 경 미들랜드 북쪽의 작은 도시 워크솝(WORKSOP)에 도착했다.
로빈훗의 숲에서 내셔널트러스트로 000
워크솝에는 18세기 앤(Anne) 여왕(1665-1714)의 사냥터였던 클럼버파크(Clumber Park)가 있다.
일요일인 데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클럼버파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숲속을 거니는 사람들, 호수 양안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 영국 전통 구기종목인 크리켓 경기를 하는 이들 … 공원 전체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하늘나라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클럼버파크의 정형화되지 않은 수령 200년 이상의 숲은 평온한 호수와 곳곳에 펼쳐진 구릉지대 경작지, 방문객들이 거닐게 되는 꼬불꼬불한 오솔길, 늘씬한 조지안 시대 첨탑을 가진 클래식한 건축물들과 함께 완벽한 인공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450만평에 이르는 클럼버파크는 전체가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소유이다. 이 사이트는 그 규모만큼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넓은 주차시설과 잔디밭, 자전거로 일주할 수 있는 코스, 밭과 식물원, 전통 건축물 내부에 마련된 티룸(Tea Room), 관상식물을 판매하는 식물원, 다달이 계획되어 있는 많은 행사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원래 이 일대 숲은 의적 로빈훗의 무대 가운데 하나였다. 쉐우드숲(Sherwood Forest)의 일부분으로 형성된 클럼버파크는 1707년 스튜어트가의 마지막 왕 앤 여왕의 사냥터로 이용하기 위해 뉴캐슬의 공작(the Duke of Newcastle)에게 하사되었다.
1760년 경부터 현재와 같은 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1928년 7번째 공작이 사망하고 1946년 내셔널트러스트가 이곳을 취득할 때까지 여러 가지 부침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경매에 들어가 전쟁부(War Department) 건물, 병기창고, 훈련장 등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46년 내셔널트러스트가 공공기부금과 지역 당국의 후원금 등으로 구매한 뒤 현재에 이른다.
산업혁명의 그늘에서 시작된 운동 000
클럼버파크는 19세기 중반 ‘공간 개방(open space) 운동’의 흐름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공원, 런던의 하이드파크나 리젠트파크도 일찍이 왕이 사냥을 즐기던 숲이었다. 왕실 레저용으로 관리돼오던 광대한 숲이 오늘날처럼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공간 개방 운동의 결과이다.
18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영국의 인구는 크게 늘어났다. 19세기 초에 이미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인구는 2배로 팽창했고 도시에서는 인구과밀과 함께 빈곤계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빈민들은 공장 근처에 몰려 살았다. 오염된 대기 속에 휴일에 어디 나갈 곳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콜레라가 번졌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방 공간(open space)을 대중들에게 되돌리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어둠을 틈타 울타리를 부수는 등 강력한 운동을 펼쳐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운동의 중심세력 가운데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창설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헌터(1844~1913)가 있었다. 그는 공유지보존협회(Common Preservation Society)의 변호사로 채용된 후 윔블던 공유지, 워즈워스 공유지, 파드니 황야를 일반인에게 개방시키는 일에 깊이 관여했다.
1884년, 헌터는 또 다른 창설자 가운데 한 사람인 옥타비아 힐(1838~1912)에게 보내는 편지 여백에 ‘National Trus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메모가 내셔널트러스트로 발전하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다.
5000년 이상 유지돼 온 영국의 자연경관 000
오후 4시 클럼버파크를 출발,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지방도를 따라 뉴캐슬 서쪽의 구릉지대에 차를 세웠다.
오랜 기간 빙하에 깎인 완만한 구릉이 끝없이 이어지고 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는 영국 특유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곳이었다. 비록 ‘인공의(handmade)’ 자연이라지만 청동기시대 이후 5000년 이상 이런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B&B를 찾아봅시다”라는 조 교수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B&B는 ‘Bed & Breakfast’의 약어로 침대와 아침식사가 제공되는 민박을 말한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토우로우(Tow Law) 언덕의‘꿀벌 민박(The Bee B&B)’은 농부의 거친 손으로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집주인도 내셔널트러스트 회원이어서 한층 편안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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