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각지대의 장애아들 3. 희망은 있다

눈높이 교육으로 ‘나 홀로’ 출근까지

지역내일 2003-11-25 (수정 2003-11-25 오후 4:41:49)
국내 특수교육 전 과정을 마치고도 사회생활이 어려웠던 장애인들이 스스로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릴 정도로 호전된 사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들을 교육시킨 곳이 공교육기관이 아니라 현직 특수교사 등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대안교육 기관이라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제의 주인공은 성남시 분당구에 설치된 ‘성남 발달장애아전환센터’(전환센터).
최근 전환센터는 지난 3년여 교육을 시킨 1기 학생들이 내년 봄부터 정착할 농지를 구입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느라 한창 바쁘다.

◆ 자립기반 마련 = 전환센터는 성남시 수진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김관양씨가 2000년 7월 사재를 털어 성남시에서 임대한 부지에 비닐하우스 등 시설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뜻을 같이 했던 교사들은 특수학교 교사 2명, 일반학교 특수학급 교사 2명 그리고 특수학교에서 기사로 근무하던 1명 등 총 5 명이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총 12명의 장애인이 근무 겸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곳 800여평 비닐하우스에서 상추, 배추, 토마토 등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전환센터는 유기농을 통해 장애인 사회적응훈련과 직업교육을 하고 있다. 또 전환센터는 장애인 12명에게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월급을 지급하는 직장이기도 하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오전 9시 출근부를 찍으면서 시작된다. 오전에는 그날 판매할 채소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비장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판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솜씨는 숙련된 농군이다.
이들이 전환센터에 처음 왔을 때부터 숙련된 농군의 모습은 아니었다. 초등 6년, 중·고등 6년 그리고 전문과정 2년 등 많게는 14년의 교육과정을 마쳤지만 이들의 초기 상태는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발달센터 작업지도원(교사)인 김대거씨는 “처음에는 돌과 흙 그리고 풀과 채소를 구분하지 못했다”며 “돌을 골라내라면 덩어리 흙을, 잡초를 뽑으라면 모종까지 온통 뽑아 놓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전환센터의 재배작물로 고추와 토마토가 선택됐다.
이에 대해 김대거씨는 “고추와 토마토는 익기 전에는 녹색이고 익은 뒤에는 빨강색이다”며 “장애아들은 어려서부터 신호등을 구분할 수 있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녹색과 빨강색은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래도 초기에는 불량률이 18%에 달했다”며 “그러나 끊임없는 반복학습으로 지금은 7% 정도 수준이다”고 말했다.

◆ 유통경험도 스스로 = 이렇게 생산된 재활센터 상품들의 주요 유통경로는 분당구 효자촌에 설치된 좌판. 재활센터 사정을 알고 난 효자촌 주민들이 단지 내 좌판설치를 허락해줬다.
오후 두시쯤에 시작된 장사는 오후 다섯 시 정도면 끝이 난다. 유기농 상품인데다 가격경쟁력도 갖추고 있어 단골도 많이 생겼다.
처음 좌판을 열었을 때도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도 ‘상추사세요’라고 외치지 못했다.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들이 이들의 마음뿐 아니라 입도 얼어붙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효자촌 마을에 가면 “상추는 2000원이고, 얼갈이배추는 1000원입니다”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복학습으로 전환센터 식구들이 ‘장사’라는 새로운 분야를 익히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이 지긋한 손님이 오면 “들고 가기 힘드시죠”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한다.

◆ 왜 농업인가 = 재활센터가 농업을 선택한데도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해 김관양 교사는 “임가공을 선택할 경우, 원청에서 계약을 해지하면 아이들은 당장 실업자가 된다”며 “일반인들에 비해 직업전환이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인 산업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또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장애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환경호르몬과 공해다”며 “유기농을 선택함으로써 장애요인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환센터는 공교육기관의 직업교육을 벤치마킹,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농업을 선택했다.
현재 국내 특수교육기관들이 실시하고 있는 직업교육의 대부분이 공예 수예 등 ‘공과’ 중심 과목들이다. 그러나 공예품, 수예품의 경우 가격이 싼 중국산 상품 등으로 이미 판로를 잃어 버렸다. 물론 과거에도 장애인들이 생산하는 제품들이 판로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12년간의 특수교육을 마친 장애인, 특히 일반직장에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김 교사가 사재를 털어 전환센터를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언젠가 길거리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교사로서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이는 특수교육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직업교육이 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며 “특수교육 과정도 유연성을 갖고 다시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특수교육의 범위를 취업 이후까지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김 교사의 주장이다.
김 교사는 “어렵게 직장을 구한 장애인들도 작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에 그만 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우리 교육은 학교를 졸업하면 단절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존 특수학교에서 졸업 이후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도와주거나 평생교육기관이 이를 담당해야 한다”며 “일본의 경우 22세까지는 교육기관이 책임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환센터는 경기도 광주에 농지를 마련했다. 1기생 12명 전원이 들어가 생산 활동을 하며 살아갈 농장부지다.
이곳이 정상화되면 한 대형할인점에서 매장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도 물량이 부족해 포기했던 경험을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전환센터 식구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다. 특히 이 농장을 통해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장애인들이 오히려 가족을 부양하는 날이 올 것이란 것이 교사들의 소망이다.

◆ 일반인 가까이서 교육해야 = 전환센터는 센터생들의 가장 큰 변화를 초보적 수준이지만 사회생활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꼽고 있다.
현재 이들 12명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혼자서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아침 아홉시면 어김없이 전환센터에 출근하고 있다.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운 발전이다. 물론 나 홀로 출근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약 3개월의 교육이 필요했다.
이에 대해 김대거씨는 “아이들끼리 야구·농구도 하고 주말에는 영화 보러간다”며 “장애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던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가정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장애인이 있는 집은 누군가 한 사람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전환센터 식구들의 가정은 이같은 짐으로부터 해방됐다.
이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 하나로 전환센터는 입지조건을 들고 있다.
전환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성남시 분당의 율동공원 내. 이곳은 인근 아파트단지는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공원이다. 이곳에 전환센터가 설치된 덕분에 센터 식구들은 자연스럽게 일반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처음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할 때는 일반인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공원을 자주 찾는 이들에게 전환센터 식구들은 자주 만나는 이웃일 뿐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일반인을 만나도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회복했다”며 “광주에 농장부지가 확보되더라도 전환센터는 도심에서 계속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환센터는 ‘팀’을 구성해 아이들에게 접근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고 있다.
전환센터 운영진은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전환센터를 처음 시작한 김 교사는 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농업을 공부했다. 여기에 작업지도원 2명은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다. 예산상의 이유로 지금은 전환센터를 떠났지만 초창기에는 사회체육사도 한명 근무하면서 역할을 분담해 아이들의 교육과 치료를 담당했다.
그러나 많은 성공 요인 중 재활센터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주말 등에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 특히 재활센터가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공원 내에 설치된 덕분에 많이 알려져 자원봉사자가 많다는 것이다.
김관양 교사는 “전환센터를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는 100여명에 달한다”며 “주말이면 가족을 공원에 두고 센터에 올라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우리 교사들의 감시자이며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밝게 비추는 사람들”이라며 “적당한 예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국가가 어려우면 의병들이 일어나 구하곤 했다”고 말했다.

◆ 공교육에 새바람 넣는다 = 최근 김관양 교사는 곳곳으로 강의를 하러 다닌다. 물론 특수교육과 관련된 단체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다. 전환센터의 성공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사례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김 교사는 전환센터라는 새로운 모델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장기적으로는 공교육시스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은 게 김 교사의 소망이다.
최근에는 일본 특수교육협회에서도 전환센터를 찾아왔다. 그러나 김 교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것은 인근 특수학교들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들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사는 “특수교육이 발전하려면 교사, 특히 관리자들이 변해야 한다”며 “공교육에도 재량활동 등 아이들 눈높이에 적합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특수교육이 성공하려면 장애아들의 입장에서 사고해야 한다”며 “현장에 들어오는 예산 대부분이 시설유지비로 쓰이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접목시킬 시스템 개발 등을 위해 집행되는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공교육기관도 안주하면 교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다행히 많은 젊은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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