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점검 - 겨울철 맞는 노숙자들

희망 없는 내일, 개선 없는 대책

지역내일 2003-10-28 (수정 2003-10-28 오후 3:32:22)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사람들이 옷깃을 여미고 귀가를 서두르는 저녁, 어느덧 너무도 익숙하게 우리사회 ‘이방인’으로 자리잡은 노숙자들은 찬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전철역이나 지하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1997년 IMF 이후 우리 사회 전면에 등장한 거리 노숙자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노숙자 통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한 1999년 1월부터 9월까지 서울지역의 월평균 거리 노숙자는 34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 376명, 2001년 396명에 이어 지난해는 404명으로 400명선을 넘었다. 올 1월부터 9월까지 월평균 거리 노숙자는 무려 468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60명 이상이 실직 등의 이유로 거리에 나섰다(표 참조).
시 사회과 노숙자 대책 관계자는 “쉼터 입소 노숙자의 숫자는 감소하는 반면 거리로 나온 노숙자는 통계치를 낸 이후 지속적으로 늘더니 올해는 경기불황 등의 이유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IMF 이후 당국의 노숙자 대책이 무료급식과 잠자리 제공 등 현상 유지에만 치우쳐 노숙자들의 근로의욕이나 자활의지를 북돋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올 겨울도 한병 술로 넘기겠지” = 서울역에서 서부역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위에는 군데군데 몇 명의 노숙자들이 쓰러져 잠을 자고 있었다. 깨진 병조각과 라면 봉지, 신문지와 박스 등이 뒹구는 사이에서 만난 김병길(62)씨의 입에서는 찌든 술냄새가 진동했다.
5년 전 리어카 행상을 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노숙자가 됐다는 김씨는 “올 겨울도 소주 기운으로 넘겨야지”라며 “정 (추위를) 못견딜 정도면 박스 모아서 지하철역에 가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나마 내 명줄은 길다”고 귀띔했다. 옆자리에 누워있는 박명수(42)씨의 경우 거리에 나선 지 1년밖에 안됐는데 자신보다 몸이 더 망가졌다고 한다.
몇 채의 가게를 가지는 등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던 박씨는 빚 보증을 잘못 서 이곳에 나온 이후 밥도 안먹고 술로 지새다 얼마 전엔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갱생원 신세를 한참 지다 나왔다고 했다.
김병길씨는 “사회에서 잘 나가다 노숙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대개 홧병을 이기지 못해 술로 지새다 하룻밤 새 송장으로 실려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일주일 전에도 예전에 중소기업 사장 했던 사람이 하두 오래 자는 것 같아 깨우려는 데 일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역 뒷편 청파공원에서 만난 전모(40)씨는 “요즘같이 날이 쌀쌀해지면 쉼터 등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텐데 회현역이나 서울역 지하도에 가보면 여전히 그대로더라”며 “예전엔 나보다 나이가 어린 노숙자는 보기 힘들었는데 종종 눈에 띄는 걸 보니 경제가 나쁘긴 나쁜 모양”이라고 전했다.
남대문경찰서 뒤 쪽방에서 일세를 놓는 장모(62)씨는 “다 죽어 가는 소리 했어도 IMF 때는 나도 입에 풀칠하고 얼마간 모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방을 놀리는 때가 허다하다”며 “조만간 이곳도 재개발된다니 이주비나 빨리 받아 이사갈 날만 손꼽고 기다릴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 거리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이들의 희망 없는 삶이 계속되지만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거리지원팀 김해수씨는 “5년 전부터 노숙자 단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 정책은 무료 숙식 제공 등 최소한의 지원에 그치는 등 변화가 거의 없었다”며 “쉼터 정원이 노숙자 숫자보다 웃돈다는 통계수치 보다 노숙자들이 다시 사회로 나가 일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뒤늦게 나마 올 6월 노숙자보호법이 국회를 통과, 내년 7월까지 세부시행규칙이 마련돼 시행될 예정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시급히 노숙자 자활프로그램을 통한 사회복귀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현재 3000명 정도를 유지하는 노숙자 수는 이대로 고착화되고나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대문 쪽방 인근 한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종교단체 등에서 무료급식을 받은 노숙자들이 밥은 고스란히 쓰레기 통에 버리고 반찬만 따로 모아 술안주로 삼는 경우를 종종 봤다”며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 해도 건설 일용직 수요는 꾸준히 있는데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아예 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하지 않아도 밥 주고 옷 주고 재워주는 현재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노숙자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력사무소를 찾은 한 일용직 노동자는 “막노동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술에 절어 헤매는 노숙자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으로 돈을 쓰느니 악착같이 제 손으로 버는 사람들에게 은행 대출문이나 넓혀 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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