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를 비롯한 세계 경영학계의 석학들은 20세기 세계 경제에서 가장 주목할 점이 관료주의와 계획경제에 대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승리한 것이라 요약한다. 21세기 들어 다양한 형태의 경영자들이 부침을 거듭하며 이러한 기조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는 21세기와 더불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이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조라 할 것이다. 본지는 오늘날 기업 경영의 새로운 리더십을 창조하고 있는 세계적 경영자들에게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 주="">직원 다수가 주식 보유 … 위성 등 첨단 IT 시스템 선구적 도입
상시최저가 정책이 영업의 근간 … 한국에서는 토종업체에 밀려지난 15일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검거되자 미 증권가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이틀이 못가 나스닥 지수와 다우지수가 동반하락하면서 ‘후세인 랠리’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연이은 이라크의 테러가 영향을 미쳤지만, 뉴욕 증권가에서는 백악관 발표 다음 날 이루어진 월마트의 매출 전망이 결정타를 날긴 것으로 알려졌다. 월마트가 크리스마스 시즌의 예상 매출을 하향 조정하면서 블루칩 주가가 3.4%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시골 매장에서 상시최저가 원칙 확신
1962년 미 아칸소주 로저스 마을에서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가 문을 열었다. 샘 월튼은 가게 앞에 ‘우리는 더 싸게 팝니다’라는 문구를 달고 손님을 맞이했다.
아칸소주는 미국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은 곳이고, 로저스는 인구 5000이 채 못되는 벽촌 마을. 여기서 매상이 오르자 월튼은 다음에도 한적한 지역을 골라 매장을 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업체들이 인구 5만이 넘는 대도시로 몰려가는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월튼이 한적한 지역을 택한 이유는 금새 밝혀졌다. 작은 도시다보니 월마트가 지역 공동체로 기능하기 시작, 순전히 구전만으로 주민 전체가 고정고객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은 대도시로 진출한 업체와 달리 홍보 부담을 덜게 했고, 그만큼 월마트는 싼값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초기 경험을 바탕으로 월튼은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적용해온 원칙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상시최저가(Every Day Low Price, EDLP)’ 정책이다. 이를 위해 월마트는 최저가의 원료, 인건비, 물류비를 추구한다.
브랜드전략과 저가전략의 한판 승부
1995년 3월, 대표적인 할인점의 하나인 K마트의 회장 죠셉 안토니니가 회장직을 사임했다. 이로써 30여년에 걸친 월마트와 K마트 간의 주도권 쟁탈전도 막을 내렸다.
두 회사가 본격적으로 접전을 벌이던 80년대 말에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월마트의 점포는커녕 광고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월튼은 개의치 않고 본사와 각 점포를 연결하는 컴퓨터 시스템과 트럭, 그리고 유통센터를 확보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저가를 무기로 한 월마트가 할인점을 늘려가자 K마트는 홍보와 매장 변경에 주력하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월튼은 할인점의 비중을 더 높이고 취급 분야까지 확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간의 공산품 중심이던 할인점에 식품점을 결합하여 슈퍼센터라는 새로운 매장을 연 것.
정반대를 향해 달린 경쟁의 결과, 1990년 월마트는 매출에서 K마트를 추월했다.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시어즈도 월마트에 위협을 느끼고 1989년부터 평균 25%에 달하는 할인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엄청난 수익 감소로 이를 철회했고, 이후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다음 승부처는 대도시. 이미 대부분의 중소도시에 진출해 있던 월마트가 대도시로 눈을 돌리자 K마트는 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여기서도 두 회사는 정반대를 달렸다.
먼저 K마트는 대대적인 광고를 펼치는 한편 고급 브랜드와 매장을 더욱 늘렸다. 이로써 일시 매출을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경쟁에 쐐기를 박은 IT 시스템
그 사이 월마트는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IT 시스템을 도입했다. 월튼은 7억달러를 들여 전산센터를 건설했고, 40억달러를 들여 리텔링크라는 데이터웨어하우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자체 인공위성 3대를 띄워 미 전역의 배송상태와 전세계 산지 가격동향을 체크하기에 이르렀다.
월마트가 도시에 입점했을 때, 이미 바코드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모든 매장의 거래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었다. 고객들은 가격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고, 거래처들은 납품할 제품의 수량과 시간대를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으며, 본사는 트레일러의 위치와 매장 도착시간을 앉아서 알 수 있었다.
월튼은 1992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경영수업을 전수받은 2대 회장 데이비드 글라스는 월튼의 방침을 그대로 따랐다. 위기를 느낀 K마트가 1993년 슈퍼센터를 모방한 슈퍼 K마트를 개장했지만 이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때 월마트의 몇배에 이르던 K마트의 시장점유율은 95년이 되자 22.7%로 떨어졌고 월마트는 41.6%로 올라갔다. 결국 안토니니가 사임하면서 K마트는 파산신청을 냈다.
월튼이 경쟁업체와 대결만 한 것은 아니다. 80년 들어 생활용품의 강자인 P&G가 자신들의 가격체제와 관리시스템을 주장하며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월튼은 자체 전산망의 거래 정보를 넘겨줄 것을 약속했고 P&G가 이를 받아들여 거래는 지속되었다. 이후 P&G가 자신들의 관리시스템을 변경하기에 이르러 양사 관계는 오히려 동맹체제로 발전했다.
인센티브로 주식을 보유하는 ‘동료들’
월마트의 비용관리 체계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왜 이를 모방하는 데 실패했을까? 월튼 특유의 리더십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월튼은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을 ‘어소시에이츠(동료라는 뜻)’라 호칭하면서 상하관계를 파괴했다. 어소시에이츠들은 매장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권한을 가지며, 그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목표매출을 초과달성할 경우, 또는 예상 손실량을 줄인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금전적 보상이 따랐다.
1979년 월마트는 19호 스토어 개점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 노동조합이 다른 점포의 직원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일시 긴장이 조성되었다. 그러자 월튼은 형식적인 보상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보상체계를 구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익공유제도’에 따라 월튼은 회사에 기여한 직원을 위해 기금을 조성했다. 기금액수는 1994년이 되자 20억달러를 넘어섰는데 직원들은 점차 기금으로 회사 주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에 착안하여 더욱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주식매입 할인제(Stock Purchasing Plan)이다. 이에 따라 ‘동료들’은 급여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시가보다 15% 싼 가격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월마트가 창업 이래거의 매년 매출 성장과 이익을 창출했으므로, 가령 한 직원이 주당 16.5달러로 100주를 산 다음 이후 계속 주어진 권리대로 주식을 매입하면 10년 뒤에는 51,200주를 소유, 300만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는 직원의 80%가 회사 주식을 보유, 사실상 사원주주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것이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새로운 원칙을 세우려는 리 스콧
캔자스주 주유소 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리 스콧(H. Lee Scott, Jr., 54세)은 1979년 월마트에 입사, 스토어 지점장, 스토어 최고경영자, 본사 부사장 등을 거쳐 2000년 1월 세번째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선출되었다.
스콧은 미국 경제가 침체를 거듭하는 2000년대 들어서도 해마다 15%를 웃도는 놀라운 매출 신장률과 20%를 넘는 주가수익률과 주주배당으로 이미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시장에서 만년하위에 머물고 있는 등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그는 취임 이후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해왔다.
첫번째가 공격적인 점포 확장. 취임 이후 전개해 온 빠른 확장 정책에 힘입어 구매력 파워를 유지함으로써 경쟁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주요 업체들이 모두 투자를 축소한 지난 해 월마트는 점포 확장에 100억 달러를 들였다. 규모도 키워 최근 매장은 크기가 축구장 4배 정도나 된다.
매장을 키운 이유는 공산품에서 식료품 중심으로 제품 구성을 혁신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두번째 변화이다. 스콧은 이에 대해 “이제는 고객들이 할인점보다 식료품을 더 찾는 시대”라며 변화의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 들어 슈퍼센터는 192개가 늘어난 반면 스토어는 79개나 줄었다.
세번째는 고객층 다변화로 설명된다. 기존 월마트는 서민층을 중심으로 해 중저가 할인판매에 치중해 왔지만 더이상 이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마트 신규 점포가 미 부유층 주거지에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이로써 양적인 성장에 내실이 기해질 것이라고 스콧은 기대한다. 매장 고급화는 창업 정신인 저가정책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는 중이다.
스콧 회장은 매주 한번 이상은 매장에서 지낸다. 최근 인터뷰에서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시대 변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감지했느냐에 따라 자신이 추진한 변화의 성공 여부도 판가름날 것이다.
/김선태 기자 / kst@naeil.com편집자>
상시최저가 정책이 영업의 근간 … 한국에서는 토종업체에 밀려지난 15일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검거되자 미 증권가는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을 들뜨게 했다. 하지만 이틀이 못가 나스닥 지수와 다우지수가 동반하락하면서 ‘후세인 랠리’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연이은 이라크의 테러가 영향을 미쳤지만, 뉴욕 증권가에서는 백악관 발표 다음 날 이루어진 월마트의 매출 전망이 결정타를 날긴 것으로 알려졌다. 월마트가 크리스마스 시즌의 예상 매출을 하향 조정하면서 블루칩 주가가 3.4%나 하락했기 때문이다.
시골 매장에서 상시최저가 원칙 확신
1962년 미 아칸소주 로저스 마을에서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가 문을 열었다. 샘 월튼은 가게 앞에 ‘우리는 더 싸게 팝니다’라는 문구를 달고 손님을 맞이했다.
아칸소주는 미국에서도 소득 수준이 낮은 곳이고, 로저스는 인구 5000이 채 못되는 벽촌 마을. 여기서 매상이 오르자 월튼은 다음에도 한적한 지역을 골라 매장을 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업체들이 인구 5만이 넘는 대도시로 몰려가는 것과는 양상이 달랐다.
월튼이 한적한 지역을 택한 이유는 금새 밝혀졌다. 작은 도시다보니 월마트가 지역 공동체로 기능하기 시작, 순전히 구전만으로 주민 전체가 고정고객이 된 것이다. 이 과정은 대도시로 진출한 업체와 달리 홍보 부담을 덜게 했고, 그만큼 월마트는 싼값으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이러한 초기 경험을 바탕으로 월튼은 오늘날까지 일관되게 적용해온 원칙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상시최저가(Every Day Low Price, EDLP)’ 정책이다. 이를 위해 월마트는 최저가의 원료, 인건비, 물류비를 추구한다.
브랜드전략과 저가전략의 한판 승부
1995년 3월, 대표적인 할인점의 하나인 K마트의 회장 죠셉 안토니니가 회장직을 사임했다. 이로써 30여년에 걸친 월마트와 K마트 간의 주도권 쟁탈전도 막을 내렸다.
두 회사가 본격적으로 접전을 벌이던 80년대 말에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월마트의 점포는커녕 광고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월튼은 개의치 않고 본사와 각 점포를 연결하는 컴퓨터 시스템과 트럭, 그리고 유통센터를 확보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저가를 무기로 한 월마트가 할인점을 늘려가자 K마트는 홍보와 매장 변경에 주력하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월튼은 할인점의 비중을 더 높이고 취급 분야까지 확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간의 공산품 중심이던 할인점에 식품점을 결합하여 슈퍼센터라는 새로운 매장을 연 것.
정반대를 향해 달린 경쟁의 결과, 1990년 월마트는 매출에서 K마트를 추월했다. 당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시어즈도 월마트에 위협을 느끼고 1989년부터 평균 25%에 달하는 할인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엄청난 수익 감소로 이를 철회했고, 이후 존폐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다음 승부처는 대도시. 이미 대부분의 중소도시에 진출해 있던 월마트가 대도시로 눈을 돌리자 K마트는 대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여기서도 두 회사는 정반대를 달렸다.
먼저 K마트는 대대적인 광고를 펼치는 한편 고급 브랜드와 매장을 더욱 늘렸다. 이로써 일시 매출을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었다.
경쟁에 쐐기를 박은 IT 시스템
그 사이 월마트는 당시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IT 시스템을 도입했다. 월튼은 7억달러를 들여 전산센터를 건설했고, 40억달러를 들여 리텔링크라는 데이터웨어하우스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자체 인공위성 3대를 띄워 미 전역의 배송상태와 전세계 산지 가격동향을 체크하기에 이르렀다.
월마트가 도시에 입점했을 때, 이미 바코드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모든 매장의 거래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있었다. 고객들은 가격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고, 거래처들은 납품할 제품의 수량과 시간대를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으며, 본사는 트레일러의 위치와 매장 도착시간을 앉아서 알 수 있었다.
월튼은 1992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경영수업을 전수받은 2대 회장 데이비드 글라스는 월튼의 방침을 그대로 따랐다. 위기를 느낀 K마트가 1993년 슈퍼센터를 모방한 슈퍼 K마트를 개장했지만 이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때 월마트의 몇배에 이르던 K마트의 시장점유율은 95년이 되자 22.7%로 떨어졌고 월마트는 41.6%로 올라갔다. 결국 안토니니가 사임하면서 K마트는 파산신청을 냈다.
월튼이 경쟁업체와 대결만 한 것은 아니다. 80년 들어 생활용품의 강자인 P&G가 자신들의 가격체제와 관리시스템을 주장하며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월튼은 자체 전산망의 거래 정보를 넘겨줄 것을 약속했고 P&G가 이를 받아들여 거래는 지속되었다. 이후 P&G가 자신들의 관리시스템을 변경하기에 이르러 양사 관계는 오히려 동맹체제로 발전했다.
인센티브로 주식을 보유하는 ‘동료들’
월마트의 비용관리 체계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왜 이를 모방하는 데 실패했을까? 월튼 특유의 리더십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월튼은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을 ‘어소시에이츠(동료라는 뜻)’라 호칭하면서 상하관계를 파괴했다. 어소시에이츠들은 매장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권한을 가지며, 그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목표매출을 초과달성할 경우, 또는 예상 손실량을 줄인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금전적 보상이 따랐다.
1979년 월마트는 19호 스토어 개점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 노동조합이 다른 점포의 직원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일시 긴장이 조성되었다. 그러자 월튼은 형식적인 보상을 넘어서는 실질적인 보상체계를 구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익공유제도’에 따라 월튼은 회사에 기여한 직원을 위해 기금을 조성했다. 기금액수는 1994년이 되자 20억달러를 넘어섰는데 직원들은 점차 기금으로 회사 주식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에 착안하여 더욱 발전된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주식매입 할인제(Stock Purchasing Plan)이다. 이에 따라 ‘동료들’은 급여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시가보다 15% 싼 가격으로 회사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월마트가 창업 이래거의 매년 매출 성장과 이익을 창출했으므로, 가령 한 직원이 주당 16.5달러로 100주를 산 다음 이후 계속 주어진 권리대로 주식을 매입하면 10년 뒤에는 51,200주를 소유, 300만달러의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는 직원의 80%가 회사 주식을 보유, 사실상 사원주주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것이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새로운 원칙을 세우려는 리 스콧
캔자스주 주유소 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리 스콧(H. Lee Scott, Jr., 54세)은 1979년 월마트에 입사, 스토어 지점장, 스토어 최고경영자, 본사 부사장 등을 거쳐 2000년 1월 세번째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선출되었다.
스콧은 미국 경제가 침체를 거듭하는 2000년대 들어서도 해마다 15%를 웃도는 놀라운 매출 신장률과 20%를 넘는 주가수익률과 주주배당으로 이미 경영 능력과 리더십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시장에서 만년하위에 머물고 있는 등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그는 취임 이후 몇 가지 변화를 시도해왔다.
첫번째가 공격적인 점포 확장. 취임 이후 전개해 온 빠른 확장 정책에 힘입어 구매력 파워를 유지함으로써 경쟁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주요 업체들이 모두 투자를 축소한 지난 해 월마트는 점포 확장에 100억 달러를 들였다. 규모도 키워 최근 매장은 크기가 축구장 4배 정도나 된다.
매장을 키운 이유는 공산품에서 식료품 중심으로 제품 구성을 혁신하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두번째 변화이다. 스콧은 이에 대해 “이제는 고객들이 할인점보다 식료품을 더 찾는 시대”라며 변화의 이유를 설명한다. 올해 들어 슈퍼센터는 192개가 늘어난 반면 스토어는 79개나 줄었다.
세번째는 고객층 다변화로 설명된다. 기존 월마트는 서민층을 중심으로 해 중저가 할인판매에 치중해 왔지만 더이상 이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월마트 신규 점포가 미 부유층 주거지에 속속 들어서는 중이다. 이로써 양적인 성장에 내실이 기해질 것이라고 스콧은 기대한다. 매장 고급화는 창업 정신인 저가정책과 충돌할 소지가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는 중이다.
스콧 회장은 매주 한번 이상은 매장에서 지낸다. 최근 인터뷰에서 “문제의 핵심은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시대 변화를 얼마나 정확하게 감지했느냐에 따라 자신이 추진한 변화의 성공 여부도 판가름날 것이다.
/김선태 기자 / kst@naeil.com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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