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사람들 트럼펫동호회 ‘트럼펫터 고양지부’
트럼펫 하나로 명랑한 인생
군대 기상나팔로 부는 트럼펫으로 결혼식 축가를 연주한다면 어떨까? 지난 10일 밤 9시, 성사동의 어울림마을 상가 지하 연습실에 모인 트럼펫동호회 ‘트럼펫터’ 회원들이 부는 ‘사랑의 찬가’를 들어 보았다. 밝고 경쾌한 음색이 결혼식 잔치 분위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어색할 거라는 상상과 전혀 달랐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중년에 잡은 악기
트럼펫터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5곳, 지방 4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 전국적인 트럼펫동호회다. 트럼펫터 고양지부(지부장 안국환)의 문은 4년 전 김해원 씨가 처음 열었다. 그가 트럼펫을 배우게 된 것은 자녀들을 결혼시킨 뒤 느낀 허망함 때문이었다.
“56살 나이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어요. 무얼 할까 고민하다 처음으로 악기를 시작한 게 트럼펫이에요.”
혼자 배우다 연습실이 필요해 수소문 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트럼펫터 고양지부를 만들게 된 계기다.
김해원 단장이 공간을 마련해 꾸민 연습실은 방음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담한 무대가 있어 자체 행사를 열 수도 있다. 연습실 한 쪽에는 골프 연습할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안정적인 공간이 생기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초등학교 밴드부서 트럼펫을 불던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온 한경준 씨도 그 중 하나다.
“5학년 1학기 때 트럼펫을 배웠어요. 잘 분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12살 때 배운 트럼펫은 30년도 넘게 한경준 씨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꿈을 이룬 그는 다음 달 직원의 결혼식에서 연주할 축가를 연습중이다.
소리내기 어렵지만 매력있어
트럼펫터 회원들은 월요일 저녁에 정기 모임을 한다. 공연과 행사 등 합주 연습을 위해서다. 나머지 요일에는 연습실에서 각자 연습한다. 월요일 합주 지도는 군악대 출신의 이창진 씨가 맡는다. 그는 8살에 처음 트럼펫을 접했다.
트럼펫터에는 이처럼 밴드부, 군악대 출신의 회원들이 많다. 경기 북부 지역에는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의정부, 남양주에서도 찾아오기도 한다. 트럼펫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이 악기를 놓지 않는 걸까.
회원들이 꼽은 트럼펫의 매력은 ‘소리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트럼펫에는 색소폰 등 다른 관악기와 달리 소리를 내는 데 도움을 줄 장치가 없다. 오롯이 입술의 떨림에 의존해 소리를 내야 한다. 입술이 부르트고 굳은살이 생기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득음’을 하는 만만치 않은 악기다. 음악 소리를 듣고 쉽게 생각해 시작했다가 지레 떨어져 나간 사람도 적지 않다. 이창진 씨는 “만족하는 소리를 내려면 평생 연습해야 하는 악기”라고 했다.
진혼곡에서 팡파르까지
트럼펫은 연주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다. 기원전 2천년 경 이집트의 그림에도 나타날 만큼 역사가 오랜 트럼펫은 나무로 만들어져 단순했으나 밸브를 부착하면서 활용도가 높아졌다. 진혼곡부터 팡파르까지, 가장 날카로운 소리부터 달콤한 음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만큼 많은 연습을 해야 하는 악기다.
김병현 씨는 요즘 한창 트럼펫 연습에 몰두해 있다. 4년 전에 사 놓았지만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다. 김 씨의 목표는 올 연말까지 징글벨을 연주하는 것이다. 더디게 늘어가는 연주 실력에 마음이 조급할 만도 하건만 김 씨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하다.
“트럼펫은 소리가 너무 좋아요. 뒷동산에서 황금 들판을 향해 울리는 소리, 그런 느낌이 좋은 거죠.”
트럼펫터 회원들은 지난 8월에 파주 UB파크에서 열린 공연을 가졌다. 틈틈이 요양원 자선공연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연말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호수공원에서 정기 공연을 벌일 계획도 갖고 있다니 앞으로는 고양시에서 트럼펫 소리를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트럼펫터의 문은 입문자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지난해 트럼펫터 전국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안명훈 씨 등 실력자들이 많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안 씨는 “트럼펫은 악기 값도 저렴한 편이라 취미로 삼기에도 적당하다. 남자라면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악기”라고 추천했다.
문의 지부장 안국환 010-3329-1097 www.trumpe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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