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동 오피스텔 단지 안. 한창 진행되고 있는 고층 빌딩 건설 현장이 추운 겨울 거리를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곳 만큼은 맛있는 냄새가 솔솔, 주방장의 뜨거운 열정이 풍겨나는 따뜻한 곳이었다. 프랑스어로 작은 오이피클을 뜻하는 카페 ‘꼬니숑’. 그 곳에서 흰 접시를 그만의 스타일로 채워 나가며 행복을 찾는 이재철 셰프를 만났다.
낭만의 숨 쉬는 곳, 파리에 사로잡혀
이재철 셰프는 전공이 요리가 아닌 요리사다. 그의 본 전공은 디자인. 대학에서 산업디자인 특히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미술학도였다. 하지만 그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지냈다고 한다. 과연 디자이너로서의 자질이 있는가 하고. 고민과 방황은 그를 여행으로 이끌었다. 배낭하나 싸들고 무작정 떠났다. 철학적이고 낭만이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프랑스를 접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여행, 두 번째는 어학 공부와 대학 입학. 이 셰프는 처음부터 프랑스에 정착할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인연은 점점 깊어져갔다. 98년 대학에 입학해 프랑스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인턴십을 거치며 그는 파리 구성원으로 지내게 된다. 이후 그는 사업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일을 하며 회사를 한번 만들어보자 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죠. 어린이를 위한 포털 사이트 구축에 들어갔죠. 정보검색, 플래쉬 게임 등 한국에서 쥬니버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실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캐릭터 디자인부터 기획, 광고 등 손발이 닳도록 준비하고 현지 동료들과 성공적으로 론칭도 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그의 기획력과 디자인 실력을 높이 사 높은 연봉을 제시하며 유혹하기도 했지만 그는 뚝심으로 자신의 일에 수년간 매달렸다. 하지만 사업은 그리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지사 형태로 회사를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결국 접고야 말았다. 이 셰프는 젊고 패기있던 시절에 겪은 경험을 밑거름 삼아 다시 한국에서 ‘스타트’를 외쳤다. 그리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준 ‘요리’세계와 마주했다.
디자인 전공 요리사. 한국식 베이스+파리식 양념
이 셰프는 요리가 디자인과 흡사하다고 이야기한다.
“2005년 경 요리를 취미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모니터가 접시라면 그 안에 음식으로 색칠을 하고, 인쇄를 하면 완성이 되는 음식. 최종결과물이 뚜렷이 보이는 게 디자인과 흡사했어요.”
취미는 직업이 됐다. 그는 요리를 위해 다시 한번 파리행을 서둘렀다. 2008년 꼬르동 블루에 입학에 공부를 하고, 파리에서 그만의 레스토랑도 오픈했다. ‘춤추는 프라이팬’이라는 한국음식을 선보인 파리의 그의 작은 식당은 입소문 나 인근에서는 꽤 유명해졌다. 하지만 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가족이었다. 파리에서의 연이 깊어질수록 가족들의 한국에 대한 향수도 깊어졌다. 그는 과감히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제 2의 춤추는 프라이팬이 되어줄 백석동 ‘꼬니숑’을 열게 됐다.
꼬니숑은 그래서인지 파리에서의 시간을 담은 것처럼 고스란히 꾸며졌다. 파리에서 직접 찍은 거리풍경들이 눈길을 끌고, 마치 노천카페를 연상시키는 테라스는 차가운 오피스텔 단지 안에서 따스함을 발산한다.
“장식장, 의자, 테이블 모두 손으로 만들고 꾸몄어요. 그만큼 애착이 크죠”
하지만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것은 음식이다. 보조 요리사 없이 혼자 모든 주문을 소화해야 하기에 벅차기도 하지만 재료 손질부터 요리, 마지막 점검까지 제 손을 거쳐야 직성이 풀린다. 가끔 ‘빨리빨리’를 외치는 손님들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지만, 음식은 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정성을 다한다. 그는 한국식 베이스를 깐 프랑스 요리들을 선보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프랑스 가정에서 즐겨먹는다는 계란 파이 ‘키슈’부터 고등어 튀김이 들어간 파스타 등 다양한 메뉴를 꼬니숑에서 맛볼 수 있다. 늘 파리 요리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꼼꼼히 체크해 트렌드를 확인하고 레시피도 공부하며, 그만의 접시를 장식할 요리를 구상하는 그다.
이제부터가 시작, 내가 만든 음식에 즐겁고 행복해지길...
그의 꿈은 소박하다. 그가 내준 접시가 싹싹 깨끗이 비워지고, 손님들이 웃어주는 것.
“내가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손님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흐믓해요. 힘들지만 그 맛으로 요리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 카페의 경영자이자 요리사 역할 두 가지를 해야 하기에 조금은 머리가 아프다고 웃는 이재철 셰프. 그 웃음만큼 따뜻한 요리들이 선보여지길 고대해본다.
남지연리포터 lamanu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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