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친환경 살림꾼 박복열 씨
“알뜰하게 멋스럽게 당당하게 살아요”
파주 동패동에 사는 박복열 씨는 자기만의 멋이 있는 친환경 살림꾼이다. 쓸모없어 버려진 물건들이 그의 손에 가면 새로운 모양과 쓰임새를 얻는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보다 내가 좋아하는 대로 사물을 재배치하는 사람. 재활용 천으로 옷을 지어도 고급 부띠끄 양장보다 멋스럽게 꾸밀 수 있는 사람. 아이 같은 순수함과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한 보기 드문 50대 여인, 박복열 씨를 소개한다.
버리는 대신 멋스럽게 다시 만든다
버려진 대리석을 서랍장 위에 올리니 둘도 없는 작업용 책상이 됐다. 식탁 다리로 재봉틀을 붙이고 볼링가방에 휴지를 수납한다. 짝 잃은 양말을 콘센트 위에 덮으니 먼지도 안 타면서 알록달록 귀엽다. 천정에 뚫린 구멍은 레이스 장식으로 막고, 버려진 코트 단추는 브로치로 다시 만들어 꽂는다. 아들 바지로 재봉질 작업 가방을 만들고, 방수되는 잠바를 잘라 보온도시락 가방을 만들어 쓴다. 벼룩시장에서 천 원에 산 한복 천을 잘라 비닐봉지 수납 주머니를 만든다.
박복열 씨는 안 쓰는 물건을 재사용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디자인을 입혀 멋스럽게 만든다. 헌 물건으로 만들지만 신기하게 궁상스럽지 않다. 원단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서랍장과 재봉틀이 있는 작업실은 마치 마법처럼, 허름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을 원피스로, 조끼로, 가방으로 변신 시킨다.
아이디어의 결정판은 우산 천의 재활용이다. 그는 버려진 우산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예쁜 우산 천을 손질해 산에 갈 때는 간식 먹는 식탁으로, 비가 오면 뒤집어쓰고, 치마가 너무 짧을 땐 무릎 덮개로, 친구랑 밖에 앉아 얘기할 때는 돗자리로 쓴다. 자루로 꿰매서 곡식을 담고 끈을 달아 앞치마로 쓴다. 우산대로는 커튼 봉을 만든다.
없어서가 아니라 좋아서 아낀다
그에게는 외출용 세트가 있다. 보온병과 우산 천 두 장, 그리고 컵이다. 집에서 차를 끓여 공원에 앉아 우산 돗자리를 깔고 또 하나를 편다. 그 위에 보온병과 컵을 올려놓으면 움직이는 카페가 된다.
겨울에는 보온용 세트가 있다. 난방을 하지 않아도 몸을 따뜻하게 지켜 줄 버선과 조끼다.
서울에서 파주로 들어오는 버스 안, 자리가 없어 서서 오는 날이 있다. 다리가 아프다 싶으면 그는 화려한 우산 천을 버스 바닥에 펼친다.
“저 앉아 가겠습니다. 큰 소리로 말하고 앉아서 편하게 와요. 왜 남을 의식하나요? 내가 좋고 옳다고 하면 하는 거지.”
인터뷰를 위해 식탁에 앉았다. 식구 수대로 놓인 석판이 독특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작업하는 도예가에게 주문 제작한 석판이다. 과일을 먹을 땐 접시로, 식사할 때는 그릇 올리는 테이블 매트처럼 쓴다. 수년 전에 만든 거지만 당시에도 꽤 돈을 지불한 작품이란다.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꼭 갖고 싶은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없어서 아끼는 게 아니라 좋아서 아끼는 거”라고 그는 말 하지만, 없어서 아낀다고 해도 박복열 씨처럼 하다 보면 신이 날 것 같다. 그의 일상은 그만큼 즐거워 보였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안 입는 한복과 그릇을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다. 돈 들이지 않아도 풍성하고 넉넉해지는 삶.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한테 투자해야 한이 안 남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한다. 부모, 남편,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몸을 움직여서 능력껏 한다.
인견으로 만든 옷이 너무나 입고 싶은데 비싸서 엄두가 안 나서 인견 파는 옷가게에 취직한 적도 있다.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에 가겠다는 생각에 3년 꼬박 백화점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남 부러워하지 않고 어디가든 당당하지만 딱 하나, 박식한 사람 앞에서는 기가 죽는다. 어려웠던 집안, 대학을 보내지 않은 부모님. 원망은 하지 않는다. 박복열 씨 4남매는 어려운 집안에서 자란 덕에 검소하게 아끼고 자립하는 삶이 몸에 배었다.
그의 어머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불 하나에 의지해 집안일을 하셨다. 지금도 서너 정거장은 걸어 다니고 옷도 사지 않고 주워 입는다. 아들 둘을 교사로 기르고 수입은 딸보다 많지만 여전히 알뜰하게 산다. “남들 앞에 설 때는 구질구질하면 안 돼. 예뻐야 한다”고 가르친 어머니.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많이 배우지 못해 속상하지. 나는 이 지구가 너무 너무 궁금한 사람이거든. 나중에 집 팔아 세계여행 하고 싶어요.”
아는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뭐든 배울 기회가 생기면 대충대충 하지 않고 기본부터 충실하게 배운다. 볼링, 골프도 그렇게 배웠고, 지금 배우고 있는 암벽등반도 그렇다.
“본인한테 투자 안하면요 늙어서 한만 남아요. 나도 나를 사랑해야 만족스러운 거야. 그럼 내가 너무 기뻐요. 그 기쁜 마음으로 식구들한테도 봉사를 하는 거지.”
내 멋대로 산다
밖에서도 집에서도 그의 손발은 한가할 틈이 없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기는커녕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다. 머리에서 퐁퐁 솟아나는 창작의 에너지를 따라가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기 일쑤다.
그의 창작은 옷과 생활용품에 그치지 않는다. 봄에는 냉이로 효소를 담고, 엉겅퀴 민들레 목련꽃으로 차를 만든다. 아이들 키울 때도 외식 보다는 집 밥을 먹였다. 커다란 천을 터널처럼 만들어 실내 놀이터로 만들어 주었던 남다른 엄마였다.
박복열 씨는 자신의 이름을 찍은 천연비누를 만든다. 비누에는 영문 이니셜로 만든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겨 넣는다.
요즘에는 장애인 활동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연말에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로 떠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잔소리 대신 “우리 박복열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격려한다. “내가 즐거워야지 즐겁지 않으면 안 해요. 나는 단순해요. 재미없으면 안 해요. 내가 좋으면 하는 거야. 그러니까 병이 안 생겨요. 걱정은 안 해요. 걱정을 왜 해요?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멋대로 산다. 하지만 세상을 즐거운 에너지로 물들인다. 이것이 박복열 씨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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