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나의 콜렉션
우표 콜렉터, 송일호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수집한 우표 한 장 한 장이 내 삶의 기록이자 일기장입니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요즘은 게임이나 영화보기, 스포츠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70~80년대에는 유행처럼 ‘이것’을 모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소통을 나누던 그때는 ‘우표’수집이 대중화된 취미였다.
전자우편의 발달로 사람들의 관심은 이전보다 줄어들었지만, 40여년 넘게 ‘우취(郵趣)’ 삼매경에 빠져 우리나라 우취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귀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가 있다. 동국대 경제학과 송일호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석산 진기홍 선생과의 만남, 우취의 길로 들어서게 해
송일호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인 열두 살 때부터 우표를 모았다고 한다. 당시의 학생들이 그랬듯 그의 수집도 처음엔 평범했다. 그런 그가 평생 우표수집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스무 살 무렵 한국 최고의 우표수집가인 고 석산 진기홍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석산 선생님은 당시 체신공무원으로서 우리나라 우정역사를 개척한 분이자, 단순한 우표수집가의 수준을 떠나 역사학자로서도 손색이 없었던 분이지요.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면 항상 답을 가르쳐주기보다는 답을 찾는 방향이나 방법을 제시해주셨어요. 석산 선생님은 저를 우취(郵趣)의 길로 들어서게 한 스승입니다.”
송 교수는 한 장의 우표가 구해지면 그 우표에 대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그 정보를 우표와 함께 대지에 정리해 보관해왔다. 그렇게 12살 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45년간 정리해 만든 대지가 5000장이 넘고 그 속에 붙은 우표는 10만장이 훌쩍 넘는다.
스승 진기홍 선생의 영향도 컸겠지만, 수십 년 동안 그를 매료시킨 우취의 매력이 뭘까?
“매일 주어진 일과 속에서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취미를 즐긴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 아닐까요. 저도 우표 수집을 통해 제 삶의 품격을 높이고 여유로움을 찾고 있어요. 대지 한 장 한 장이 바로 제 삶의 기록이자 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닥쳐오면 저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모아 두었던 수집품을 꺼내 보면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우취는 단순히 우표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탐구하고 수집하는 것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표에서 배운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많다”고 했다. 그렇듯 우표에는 그 시대의 인물 사회상 역사 등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또 우표는 아주 작은 공간에 도안 색채 주제를 담은 예술작품이나 다름없다. 많은 우표 수집가들이 우표의 매력을 ‘역사를 담은 예술’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 교수는 “우취(郵趣, philately)란 우표를 모으고 연구하는 취미활동을 말하는 데 단순히 우표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탐구하다보면 한 장의 우표에 담긴 역사성, 미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고 그래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것이 우취의 매력이지요”라고 한다.
송 교수는 우표 수집을 통해 이웃나라인 일본은 물론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해외 80여 개국 수집가들과 인연을 맺고 문화교류를 나누고 있다.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경찰사법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송 교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희귀우표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있으면 바로 시간을 내 해외로 날아가 우표를 입수한 뒤 바로 되돌아오기도 한단다. “취미를 즐기지만 교수로서의 직분을 소홀히 한 적은 없어요. 해외에 가도 대부분 여행보다 세계대회나 우표수집 일정만 소화하고 돌아오는 것이 다반사지요. 우표 수집이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아 오히려 학문적 깊이를 더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전공인 ‘노동경제학’과 취미생활을 연계시켜 학문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송 교수는 특히 우편사 종목 이외에도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테마틱’ 종목에도 관심이 많은데 전공인 노동경제학과 연계한 작품으로 세계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007년 대한민국우표전시회 국무총리상 수상, 2009년 서울 국제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2010년 런던 세계우표전시회 대금은상 수상, 2011년 포르투갈 세계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2011년 뉴델리 세계우표전시회 금상 수상 등 다수의 세계대회를 석권했으며 현재(사)한국우취연합 부회장 및 한국테마클럽 회장,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우표발행심의위원을 맡고 있다.
송 교수는 “세계우표전시회에 대한민국 커미셔너 자격으로 참가하는데 해당국 조직위원회에서 공항에서부터 귀빈대접을 해줍니다. 좋아서 하는 취미활동이 부수적으로 이런 호사도 누리게 하고, 여기에 삶의 여유와 행복을 덤으로 얻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지요”라고 웃는다.
-그동안 모은 수집품들을 공개해 우취의 저변 확대에 힘쓸 터
“우리나라 우표의 역사는 1884년(갑신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에 비해 60년, 일본보다 20년 뒤졌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이 1884년 11월 18일 금석 홍영식을 우정참판으로 하여 문을 엽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체국이 20일 만에 문을 닫게 되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20일밖에 사용되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짧았던 역사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세계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 가장 희귀한 우표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붙은 봉투가 지금 발견된다면 10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최고의 명품 우표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이 봉투를 찾기 위해 40여 년 동안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역사가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국내관련 자료는 오히려 외국 경매 사이트 등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는 송 교수. 오랫동안 수집을 하면서 우리나라 문화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이 절로 생긴다고 한다. 송 교수는 그동안 수집한 수집품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도 갖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은 작품집을 발간해 여러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싶다고 한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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