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파주와동초등학교(교장 안신웅)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6학년 아이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작하기 전 아침이나 수업 끝난 후, 심지어는 주말까지도 학교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로 붐볐는데요.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라고요? 파주와동초등학교는 조금 달랐습니다. 경기 규칙에 인성 교육을 접목했기 때문이죠. 바로 6학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파주와동월드컵’ 프로그램입니다. 축구경기와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병행 운영해 6학년 교실에서 한 해 동안 왕따 없는 교실, 폭력 없는 학교를 일구어 냈답니다. 1학기 남자부 리그에 이어 2학기 여자부 리그 결승전이 열리던 지난 27일, 파주와동초등학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와동월드컵 여자부 결승전에 진출한 6학년 1반(빨간조끼)와 3반 여학생들
치열했던 와동월드컵 여자 결승전
“끝까지 뛰어! 끝까지!”
“안 돼 넘어가면 안 돼! 달려 나와 공을 봐!”
남학생들은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여학생들은 주먹을 꽉 쥐고 달렸다. 결승전에 오른 6학년 1반과 3반은 서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3반에는 실력파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1반에는 든든한 응원군이 있었다. 1반 남학생들은 1학기 결승전에서 패배한 경험을 여학생들이 씻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았고 경기는 그만큼 치열했다. 헤딩하는 아이들, 아예 반팔을 입고 뛰는 아이들까지, 13살 소녀들의 경기라고 하기에는 박진감이 넘쳤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두 팀은 후반 종료를 코앞에 두고 3반의 골로 동점이 됐다. 그리고 이어진 한 번의 기회에서 1반이 골을 넣어 우승컵을 차지했다. 우승한 팀에게는 과자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 트로피와 피자 쿠폰이 주어졌다.
축구 실력에 배려하는 마음까지 쑥쑥
우승자가 가려지는 순간, 아이들은 뜻밖에 침착했다. 패자는 서로를 도닥였고 승자는 의젓하게 시상대에 올랐다. 교장 선생님에게 트로피를 누가 받을지 의논하던 아이들이 한 여학생을 앞으로 밀었다. 다음날 전학 가는 아이였다. 결승전을 함께 치르고 전학을 가서 기쁘다고 말하는 아이들. 파주와동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한 해 동안 함께 공을 차면서 축구 실력에 배려하는 마음까지 키운 듯 했다.
파주와동월드컵을 처음 제안한 문종성 교사는 “교사들은 판을 벌여줬을 뿐인데 아이들이 너무나 잘 해냈다. 반 대항 축구 경기를 하니 내부 결속력이 높아지면서 학교 폭력이 사라지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안신웅 교장도 “6학년 지도가 쉽지 않았는데 올해는 지도하기 한결 쉬웠다”고 말했다.
내가 경고 받으면 반이 피해를 본다고?
독특한 규칙도 한 몫 했다.
“여자 아이들은 교실에서 경고를 두 번 받으면 본인이 경기에 참여를 못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남자 아이들은 경고를 두 번 받으면 그 반의 1번 여자 선수가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했어요. 경고 받은 사람이 많을수록 그 반의 출전 선수 숫자가 줄어들어요. 나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 자연히 생활을 조심하게 됐죠.”
누군가 잘못을 하면 고자질하고, 끼리끼리 갈라져 노는 것이 초등학생들의 흔한 모습이다. 하지만 경고를 받으면 축구 선수 한 명이 줄어들게 되는 와동월드컵에서 친구의 일은 곧 나의 일이 되었다. 반의 승리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사이좋은 교실로 만들어야만 했다.
축구가 만든 왕따 없는 교실
눈에 드러나는 왕따보다 ‘파벌’이 문제인 6학년 여학생들. 이 아이들도 축구를 통해 하나로 뭉쳤다.
“뚱뚱하다고 놀림 받고 다투던 아이가 있었는데 축구를 잘 하는 걸 이번에 알게 된 거죠. 친구들이 응원해주면서 관계가 좋아졌어요. 서로 서로 챙겨 주면서 남녀 사이가 허물없어 지고 단결력도 확실히 높아졌어요.” (권익준 교사)
한 해 운동장을 뜨겁게 달군 축구 덕분에 파주와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은 벌써부터 6학년 생활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교사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파주와동월드컵은 6학년 특색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 미니인터뷰
1. 지용국 교사와 6학년 3반 학생들
지용국 교사
“학교폭력, 왕따가 사라졌어요”
“운동을 싫어하는 여학생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학급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어요. 고학년 여학생들은 몇몇이 뭉쳐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 파주와동 월드컵으로 친구들 모두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학급에서 따돌림 같은 문제를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김시은 양 (앞줄 왼쪽)
김시은 양 “아침 축구로 학교 생활이 즐거웠어요”
“축구할 때는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어요. 친구들이랑 사이가 좋아져서 좋고 학교 생활도 즐거웠어요. 아침에 축구를 하니까 다이어트도 따로 필요 없었어요.”
김도연, 유연욱, 조제연, 유성재, 안상혁 군 (왼쪽부터 차례로)
1학기에 월드컵리그를 펼친 남학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전에는 축구할 때 뒤에 빠져 있는 편이었는데 반에 도움이 돼야 하니까 점심시간 마다 연습했어요.” 김도연 군
“전에는 여자애들이랑 잘 싸웠는데 달라졌어요. 누가 옐로카드 받을 것 같으면 하지 말라고 챙겨주고 선생님한테는 안 뛴 거라고 얘기하면서 사이가 좋아졌어요.” 조제연 군
“어떤 여자애랑 싸워서 말도 안하고 지낸 때가 있었는데, 축구하면서한마디씩 해야 하니까 그때부터 화해하게 됐어요.” 안상혁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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