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탄현동 홀트보호작업장 내 ‘카와커피’에서는 왁자지껄 즐거운 싸인회가 열렸습니다. 자신들이 펴낸 동화책을 펴들고 웃고 즐거워하는 그들은 김현군, 김신화, 박순열, 양준혁, 하인섭, 전복남, 최행주, 박지혜, 송혜숙 씨. 이들은 지난 2009년부터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 재활프로그램에 선정돼 진행해온 홀트일산복지타운 장애인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에 함께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최근 즐거운 사건(?) 하나를 터트렸습니다. 지적장애, 뇌성마비, 간질, 언어장애, 다운증후군 등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그림동화「달콤한 목욕」「행복한 우산 마을」을 만들어 낸 것이죠. 지난 4월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에서 펴낸 이 두 권의 그림동화는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의 하나인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왼쪽부터 김현군, 김신화, 하인섭, 양준혁, 박순열, 전복남 씨
글쓰기, 사진, 그림 등 각자의 소질과 재능을 담은 그림책
이들이 만든 이야기는 기발하고, 따뜻하고 웃음기가 가득하다. ‘달콤한 목욕’에서는 가장 더운 여름의 어느 날 물이 끊기면서 시작된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양동이를 들고 나와 필요한 만큼 물을 받아 갔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세 아이들은 신나게 공을 차다가 목욕탕을 찾았다. 하지만 탕은 텅 비었고 수돗물은 감감무소식. 이 그림동화는 수돗물 대신 냉장고 가득한 사이다로 목욕을 즐기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보글보글 톡톡 튀는, 짜릿한 사이다 목욕.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달콤한 목욕은 생각 만해도 유쾌하다. ‘달콤한 목욕’을 만든 이들은 김신화, 김영애, 김현군, 박경덕, 박순열, 양준혁 씨.
이들을 지도해온 이창신 교사는 “2009년부터 장애인들의 재활프로그램으로 사진, 영상, 동화책, 홀트 라디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교육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펴낸 그림동화는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e-book 만들기 프로젝트로 탄생한 책이죠”라고 한다. 각자의 경험을 글쓰기와 그림으로 담아낸 것들이 기발하고 재미있어서 여러 출판사에 보냈었다는 이 교사. 하지만 답장을 보내온 곳은 한 군데도 없어서 접어두고 있던 차에 출판사 ‘바람의아이들’에서 관심을 갖고 출판을 맡아 주었다고 한다. 책이 나온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 밖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는 이들. ‘달콤한 목욕’에 이어 ‘행복한 우산마을’도 기대 이상의 칭찬을 듣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창신 교사(가운데)와 함께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 발휘
‘행복한 우산마을’은 강아지 복실이가 나눠준 우산이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었는지 그려냈다. 우산마을에서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행주 씨에게 우산은 두 발로 설 수 있게 하는 지팡이 같은 존재고, 장애인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인 혜숙 씨에게도 우산은 배드민턴 라켓이라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런데 우산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매일 우산을 가져다주던 복실이가 몸살이 난다. 우산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행주는 계속 의자에 앉아 있는 처지가 된다. 우산으로 마술을 부리는 인섭이는 무대에서 야유를 받는다. 우산으로 배드민턴을 치는 혜숙이는 대회에 나가지 못한다.
이 기발한 상상력의 주인공은 김동현, 박지혜, 송혜숙, 전복남, 최행주, 하인섭 씨. ‘행복한 우산마을’의 책장을 넘기다보면 프로작가의 그림이나 글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삐뚤빼뚤한 글씨와 조금은 어설픈 그림들의 오히려 더 정감 있게 다가온다.
“장애인들이 몸은 불편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림이나 글에 그대로 담겨 있지요. 일어나 걷고 싶은 행주 씨, 몸은 불편하지만 그림의 색상이 누구보다 과감하고 자유로운 인섭 씨, 실제 복실이란 강아지를 너무나 사랑하는 복실이 엄마 지혜 씨, 씩씩한 운동선수 혜숙 씨. 비장애인들 보다 작업은 느리고 서툴러도 순수하고 따뜻한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주는 것 아닐까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각자의 사연들을 듣고 나니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전해져온다. “올해 미디어교육은 우리 주변 동네를 다니면서 지도 제작(Mapping)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동네 곳곳을 다니면서 그림이나 사진작업도 하고 지도에 갔던 곳을 표시하는데 모두들 재미있어합니다. 그동안 배운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작업을 지도에 재미있게 표현해 볼 겁니다. 아마 그림책 이상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넓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거침없이 뿜어내는 그들의 유쾌한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일지 이 교사는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고 한다.
>>> 미니인터뷰
“내 이름은 ‘행주’예요. 친구들은 장난으로 ‘걸레’라고 불러요. 사진을 배울 때 ‘계단’을 찍었는데 그 이유는 계단을 한 번 발로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거든요. 행복한 우산마을의 우산을 짚고 서면 휠체어에서 일어나 두 발로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최행주 씨
“전 강아지 복실이 엄마예요.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복실이가 많이 등장해요. 또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이번에 ‘행복한 우산마을’의 이야기도 제가 많이 생각해 냈어요. 책을 낸 소감은 좋기도 하고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아요.” -박지혜 씨
“사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찍을 수 있어 좋아요. 저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선생님 차도 찍을 수 있고요. 전 배드민턴 선수예요. 행복한 우산마을에서는 복실이가 병이 나서 우산을 안 가져다줘 대회에 못나갔어요. 기분이 우울해 그림도 회색이에요.” -송혜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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