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을 위해 교실로 찾아가 책을 읽어주는 학부모 명예 사서들의 모임이 많다. 해솔중학교(교장 김종래)는 독특하게 중학교인데도 학교에서 책을 읽어주는 학부모들이 있다. 책 읽어주는 동아리 ‘연탄재’에는 학부모로 시작해 학생, 교사들까지 참여하고 있다.
흔치 않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 동아리 ‘연탄재’를 소개한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개교 이래 3년째 금요일 아침 책 읽기
연탄재 회원들은 벌써 3년 째 금요일 아침마다 교실로 찾아가 책을 읽어주고 있다. 첫 해에는 13명의 학부모들이 신청 학급에 가서 책 읽어주기를 했다. 이른바 ‘책엄마’다. 이듬해 신청 학급이 늘어나 학부모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져 교사들이 참여한 데 이어 3학년 학생들도 모집하게 됐다. 그렇게 ‘책교사’와 ‘책 선배’가 탄생했다. 책 선배들은 1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1학기에는 3학년이, 2학기에는 2학년들이 주로 책을 읽어준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책선배들의 모습에 봉사 시간을 인정하자는 결정이 내려지자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해솔중학교는 이렇게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어주는 학교가 되었다.
책 읽어주기 주축은 그래도 ‘책엄마’ 학부모들이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30분부터 책을 읽어주던 이들은, 9시 등교 정책이 시작되면서 매일 아침 9시에 10분 동안 책 읽기로 활동을 바꿨다.
중학생도 귀 쫑긋 세우는 이야기의 힘
지난 20일 1학년 4반 교실에서는 학부모 박유경씨가 그림책 <밥 안 먹는 색시>를 읽어주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읽은 그림책이라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중학생들도 뜻밖에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관심 없어 보이던 학생들도 이야기 속 색시가 머리를 풀어 헤쳐 주먹밥을 마구 먹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고개 들어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정태군은 “어머니들이 책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읽어 준다. 어릴 때 읽은 책도 있었지만 한 번 더 들을 수 있는 것도 좋다”고 소감을 말했다.
교사 안남희씨는 “아이들이 아침을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시작할 수 있고 책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험기간에 책 엄마들이 안 오면 기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책 읽으며 함께 성장해온 교사·학생·학부모
10분간 책 읽어주기를 마친 연탄재 회원들은 공부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발제자는 <밥 안 먹는 색시>를 읽어 준 박유경씨다. 옛 이야기의 소중함을 짚어본 다음 서로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야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논란이 됐던 초등학생의 잔혹 동시 이야기, 가수 아이유의 제제 논란, 중학생들의 욕설과 분노까지. 학부모로서 갖고 있던 고민을 풀어냈다.
이날은 옛이야기가 주제였지만 책 선택은 읽어주는 사람이 자유롭게 결정한다.
학부모 윤정현씨는 자신이 대학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좀머 씨 이야기>를 읽어주고 있다. 삽화를 크게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줄거리를 말해준 다음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한번은 마윈의 연설을 읽어주기도 했다. 소설, 시, 유명 인사의 강연까지 틀이 없다.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아침 시간 10분은 그렇게 귀한 시간으로 변한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고 연탄재 회원들은 다음 주를 기약했다. 금요일이 되면 다시 해솔중학교에 책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책 선배 2학년 김지원양
책 읽어주는 선배라고 인사하면 기뻐요
작가나 방송 쪽으로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어요. 2학년 때 배울 시를 읽어주는데 처음에는 손 떨리고 마음도 쿵쾅쿵쾅 거렸는데 애들도 저도 편하게 대하다보니 같은 반처럼 느껴져요. 책 읽어주는 선배라고 후배들이 알아봤을 때 기뻤어요.
책 선배 2학년 김찬영군
후배들이 잘 들어줄 때 흐뭇해요
봉사활동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참여했어요. 책 엄마들이 읽어준 시집이나 학급문고에 비치된 <어린왕자>를 읽어줬어요. 처음에는 떨리고 말도 헛 나왔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애들이 잘 들어주고 집중할 때 흐뭇해요.
연탄재 회장 김나경씨
아이 입학 때 시작해 졸업을 앞두고 있네요.
3년째 해오면서 만족감이 커요. 아침에 짧은 시간 참여하는 거지만 참여하는 것이 부담 없고 늘 학교에서 조용히 활동해 온 동아리예요. 처음에는 엄마들이 시작해 아빠들도 참여하고 선생님들과 아이들까지 참여해 다 같이 하게 됐어요. 올해는 자살예방 캠페인 단체와 협약을 맺어 캘리그라피를 배워서 아이들과 다시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내년에는 1학년도 모집해서 선배들에게 읽어주는 ‘책 후배’도 만들어보자는 의견도 있어요.
책 엄마 안명애씨
아이는 졸업했지만 명예회원으로 쭉 함께 할 거예요
연탄재 초창기 회원으로 아이는 졸업했지만 명예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9시 등교가 시작되면서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잘 넘기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네요. 제가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셨거든요. 지금도 그때 모습이 생각나요. 집중하는 반도 어수선한 반도 있지만 그 중에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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