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 ‘별 헤는 밤’ 중)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인이 아니어도 시인이 되는 사색의 계절이다. 최근 장항동 호수공원 맞은편에 문을 연 북 카페 ‘책방이듬’에 가면 조금은 특별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다. 유명 시인이 이곳을 직접 운영하기 때문일까? 시인이 내려주는 커피 맛은 한 편의 시처럼 짙고 풍부하다. 지난 주말. 카페에서 시인 김이듬씨를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시인 ‘호수공원에 둥지 틀다’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등의 저자 김이듬씨는 강렬한 필체로 ‘김춘수문학상’을 수상, 일찌감치 문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미국에서 번역 출간 된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은 미 최우수 번역 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를 만큼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범위는 국경을 넘나든다. 지난해 출간된 슬로베니아 체류 경험을 담은 여행 에세이 ‘디어 슬로베니아’와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쓴 에세이 ‘모든 국적의 친구’는 그녀의 이력이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오랜 시간 깊은 사색의 숲을 건너, 세계를 여행하듯 살아 온 그녀가 지난 달 일산에 작은 카페를 개업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책방이듬’이 바로 그곳이다.
헌 책과 새책, 독자와 작가 ‘공존하다’
“대형 출판사를 통해 시집도 내고 에세이도 써보았지만 늘 마음 한 켠에 채워지지 않는 소외감, 주변인 같은 감정들이 있었어요. 문득 독자들 또는 주민들과 좀 더 가까이서 문학을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지요. 외국에 가면 조그만 책방 같은 그런 소통의 공간 말이죠.”
‘책방이듬’은 책방이면서, 카페이며, 낭독회가 열리는 문화 살롱이기도 하다. 낮에는 커피 한잔 마시며 몇 시간이고 책을 읽다 갈 수 있는 전형적인 북카페이지만, 저녁이 되면 와인 한잔으로 밤새 문학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벽 양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장에는 국내외 시집과 엣세이, 소설 등 약 2천 여 권의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는데 이중 시집의 경우 대부분 그녀가 오랜 시간 모아 온 소장본들이다. 이미 절판됐거나 초판 1쇄 희귀본 이거나 작가의 사인이 남겨진 시집들로 이 책들을 보러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문인들이 꽤나 있다.
낭독회 열러 주민 곁으로 ‘성큼’
‘책방이듬’은 헌 책과 새 책이 공존할 뿐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씨는 “시인들이 독자 곁으로 성큼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시인과 독자가 나란히 앉아 함께 호흡을 나누는 장면을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는데 지난주 이곳 시인 김민정씨의 낭독회에서 그런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앞으로도 이 둘 사이 장벽을 허물어 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김씨는 개업과 동시에 ‘일파만파’라는 이름의 정기 낭독회를 실행에 옮겼다. ‘일파만파’는 일산과 파주에 사는 작가들을 의미하는데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 희곡작가 등에게 낭독의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오래 머물고 싶은 ‘특별한 카페’
두 시간여 진행되는 인터뷰 내내 ‘책방이듬’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이제 문 연지 일주일 정도인데 사람들의 호응이 놀랍다. 손님 중에는 김씨의 팬도 있고 유명 소설가, 문화 예술인도 있다. 문학 지망생도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하러 온 동네 주민들도 보인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책방이듬’이 머지않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김씨는 오는 12월 중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글쓰기 지도를 실시할 계획이다. 김씨는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죠. 편지나 일기, 유서 쓰기 등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일산 동구 무궁화로 삼성메르헨하우스 1층 문의: 031-901-5264)
김유경리포터 morga20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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