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사람들

파주 오래된 서점 독립출판제작 워크숍

“내 이야기가 한 권의 책이 되는 기쁨”

태정은 리포터 2020-12-31

많은 이들이 삶의 버킷리스트에 꼭 넣는 아이템이 하나 있다. 나만의 책을 쓰는 것. 나의 감성을 담아 정성스레 시를 쓰거나, 지난 인생을 반추하며 에세이를 쓰거나, 잠자리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지어낸 이야기로 그림책을 쓰거나. 이렇듯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고 그것은 텍스트의 형태로 보존돼 인류의 자산이 된다. 파주 오래된 서점에서 주최하는 독립출판제작 워크숍에 참가해 자신만의 책을 한 권씩 수확해가는 우리동네 사람들을 만나 책을 만드는 과정과 결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독립출판을 향한 여정
독립출판이란 책의 집필부터 편집디자인과 제작, 유통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해내는 출판과정이다.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삶의 이야기를 책에 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독립출판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토대로 책으로 엮어내는 1인 출판이 점차 늘고 있다. 파주 상지석동에 위치한 오래된 서점은 파주에서 유일하게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라고 한다.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갖고 직접 만들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래된 서점에서는 독립출판제작 워크숍을 열기에 이르렀다. 오래된 서점을 운영하는 안현주 작가는 “서울 등지에는 독립출판 수업이 많이 열리는 편이지만 파주에는 관련 수업이 없었다”며 “예비 독립출판작가들의 통로가 되고자 이번 워크숍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책 만들기 5단계로 배우며 성과물이 영글어
오래된 서점에서 진행된 독립출판 워크숍은 공출판사 대표 공가희 작가가 지역의 동네책방을 거점으로 진행하는 책 만들기 수업이다. ‘어떤, 독립출판’이라는 타이틀로 올해 3월 군산의 ‘조용한 흥분색 책방’에서 1기 워크숍을 시작해 현재 파주 오래된 서점에서 4기 워크숍을 마무리지었다. ‘어떤, 독립출판’ 워크숍은 총 5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첫 만남에서 앞으로의 독립출판을 향한 여정을 소개한 뒤 2주차에는 인디자인으로 본문 디자인을 배운다. 3주차에는 표지, 4주차에는 한권의 책이 되기 위한 여타의 기능들을 배운다. 매수업이 끝나면 책 구상, 원고 쓰기, 본문 디자인, 표지 디자인 등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단계별 과제를 수행하는데 4주차의 과제는 가제본을 인쇄하기 위한 최종 원고 제출이다. 마지막 5주차에는 직접 만든 책을 소개하며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연다.



한권의 책 완성 후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져
독립출판제작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책들은 작가 개인의 책꽂이에만 꽂히진 않는다. 5주간의 커리큘럼을 통해 나온 가제본에 수정과 마무리 작업을 거쳐 작게는 100부에서 많게는 500부 가량 인쇄한 뒤 전국의 동네책방에 입고한다. 1인 출판사 등록을 마친 경우에는 ISBN을 만들어 알라딘이나 예스24 등 인터넷 서점 입고에도 도전한다. 책에 맞는 굿즈(Goods)를 만들고 전국의 독립출판 작가들이 모이는 북페어나 마켓에도 참가해보는 기회를 갖는다. 오래된 서점에서 북토크도 진행할 수 있다. 한권의 책이 나오면 그와 관련해 할 수 있는 재미있고 다양한 활동이 이어진다. 안 작가는 “내년에는 기존에 개최해오던 글쓰기 강좌와 독립출판제작 워크숍을 엮어서 좀더 심화된 커리큘럼으로 이어갈 예정”이라며 “초등학생을 위한 독립출판물 수업도 계획중”이라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서현정(파주 미래로) -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
매주 독립출판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동시에 글도 써야 했기 때문에 조금은 힘들었지만, 이 과정 하나하나가 정말 행복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수업이 단조로운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정말 의미있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있는 이야기]라는 책을 썼어요. 30대의 마음은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처럼 평화가 잘 찾아오진 않아요. 다만 글을 쓰는 동안에는 마음 속에 부는 온갖 눈보라와 비바람이 잠시 그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박희옥(금촌3동) - [버리는 건 힘든 일이야]
네 번의 수업 이후 다섯 번째 수업에서는 내 책 한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매력에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어요. 코로나 시국에 묻혀 순삭되어버린 듯한 나의 2020년이 책으로 인해 또렷하게 남게 된 느낌입니다. 저는 [버리는 건 힘든 일이야]라는 책을 썼어요. 마음이 불안하고 심란하던 어느날 미니멀라이프라는 개념을 접하고 조금씩 실천해나간 미니멀라이프 실천기입니다.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과정이었기에 “너 참 잘했어. 꽤 괜찮은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어서 책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독립출판물 1권씩 꼭 만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미선(동패동) - [난 돌맹이야]
‘나의 책을 내 손으로 만드는 일’은 인생의 수많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멋진 일이었어요. 글도 쓰고 편집프로그램도 익히고 게다가 본업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5주라는 짧은 워크숍 기간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저는 [난 돌맹이야]라는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애초 계획은 [귀욤열매의 아이들]이었는데 삽화를 완성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제 책은 잠시 미뤄두고 작년에 그림책 만들기 워크숍에서 작업했던 제 동료의 그림책을 한번 더 손봐서 완성된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동료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화진(금촌2동) - [슬기로운 그림생활]
오래된 서점 덕분에 파주에서 열리는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하게 됐어요. 제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서 이런 수업이 열리기를 고대해 왔거든요. 처음에 인디자인 사용법을 익히는 게 너무 어려웠지만 동영상과 블로그를 찾아 복습하면서 허리 아픈 줄도 몰랐네요. 저는 [슬기로운 그림생활]이라는 책을 썼어요. 그림을 그리며 일기처럼 적어 놓은 글을 모아 책으로 묶자는, 참으로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게중에는 먼길 떠나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이제는 부치지 못할 편지도 있고 그림이 있어서 덜 외롭고 쓸쓸한 나의 요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김선화, 정유건(일산 삼송동) - [11살 엄마를 속여라!]
처음에는 제 책을 만들고 싶어 신청했는데 결국 아들이 책을 만들게 됐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가 지금까지 엄마를 속인 일을 쓰고 싶다고 해서 제가 양보했죠. 독립출판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전혀 몰랐는데 글쓰기부터 인쇄까지 책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셔서 다음엔 혼자서도 제 책을 만들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루하루 글을 쓰고 마지막 날 가제본을 받는 순간 그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어요. 저희는 [11살 엄마를 속여라!]라는 책을 썼습니다. 저희 모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현주(동패동) - [하다하다 책방이라니]
남편의 책방 운영기를 아내의 시선으로 바라본 관찰기를 책으로 내보고 싶었습니다. 원고는 채웠지만 혼자 엮으려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책방에 자주 오시는 공가희 작가님께 노하우를 배우기로 했는데, 혼자 배우기보다 책방 손님들 중 독립출판물에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어요. 여섯 명이 함께여서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큰 산을 넘은 듯 보람있는 과정이었고, 글의 완성도를 떠나 내 안의 말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 자체가 가치있고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공가희 작가(공출판사 대표)
<어떤, 독립출판> 1기부터 4기까지 모두 25종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였는데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4기까지 마무리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책이 책방과 저를 계속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독립출판 워크숍 5기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고 싶고 행복을 전하는 책을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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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은 리포터 hoanhoa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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