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우리 국민에게 상처주는 말하지 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발언은 지난 대선의 ‘사진 찍으러 미국가지는 않겠다’는 호언장담을 상기시킨다. 지난번엔 반미더니 이번엔 반일인가 라는 정치권의 비아냥도 나온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적극 비난하고 나서 정치쟁점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총선을 의식한 대중영합적 발언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민족주의 자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사정은 80년대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의 왜곡과 재생산부터 최근의 2002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로 나타났고 이는 선거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쳐왔다.
◆ 간첩 사건부터 촛불시위까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진 민족주의는 대선 때마다 불거진 간첩 사건 등으로 생명력이 충전돼 왔다. 87년 대선 직전 터진 ‘KAL기 폭파사건’, 92년 대선 전의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97년 대선 때의 월북 오익제 편지 사건 등은 유권자들의 안보 심리를 자극했고 이는 집권당의 집권 연장 수단으로 이용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총선 때도 마찬가지다. 96년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판문점 총격사건은 일순 한반도를 긴장시켰다. 그 이전에는 여소야대 정국 때 이를 반전하기 위한 카드로 반공 카드가 쓰이기도 했다. 85년 2·12 총선 이후 강력한 야당이 등장하자 전두환 정부는 그해 9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88년에도 4·26 총선 때도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자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등을 계기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정국 반전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도 같은 선상에 있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은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총선을 앞둔 ‘역북풍’ 시도라는 평을 받았다.
그래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공포에 기반한 애국주의는 사라져갔다. 대신에 20대를 주축으로 한 신애국주의 또는 신민족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 전국적으로 표출됐던 것이 2002년 대선 때의 촛불시위다.
물론 반공 애국주의와 현재의 신민족주의와 신애국주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이념적 문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한길 리서치 홍형식 소장도 민족주의 또는 반공과 선거의 관련성에 대해 “형태와 타깃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집권당의 집권 연장 도구로 쓰였던 반공 이데올로기나 지금의 애매한 ‘감성적 민족주의’나 결국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박세일 교수도 “포퓰리즘이라는 면에서는 하나로 통한다”고 말했다.
◆ 20대형 ‘감성적 민족주의’의 탄생
예전의 반공 애국주의와 현재의 신애국주의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영향받는 세대부터 다르다. 기존에는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40, 50대를 자극하는 거였다면 지금의 신애국주의는 20, 30대를 타깃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히트 영화의 문화 코드를 봐도 읽을 수 있다. 관객동원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는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정치적으로 평하자면 80년대에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반공을 강조하는 영화가 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개인에게 행해진 폭력을 또는 반공의 이름이 아닌 가족의 이름으로 6·25 전쟁을 바라본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이런 문화 코드에서 읽을 수 있듯이 20, 30대의 신애국주의는 지극히 감성적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자발성이다. 예전의 반공주의는 정부에서 사건을 발표하고 그것이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바닥부터 동요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도로 정치권에 영향을 주는 식이다. 젊은 세대의 민족주의적 자발성을 보여준 사례로 ‘이승연 파문’을 들 수 있다. 연예인 한 사람이 사회에서 매장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젊은 사람들의 감성적인 애국주의를 엿볼 수 있는 한 사건이면서도 자발성이 얼마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 잘못 긁으면 부스럼, 그러나 잘 긁으면 ‘대박’
그렇다면 이러한 애국주의의 선거에 대한 실제 영향력은 어떨까.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홍형식 소장은 “20대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는 감성적으로 느끼는 세대라서 이들은 자존심을 건드려지면 쉽게 움직이는 계층”이라면서 “이것을 교묘하게 자극하면 선거에서 표 결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여론조사 전문가인 안부근씨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는 폭발력을 가질 수 있지만 단독으로는 큰 영향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예전처럼 실향민과 그 자식들이 유권자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냉전기류가 득세하던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영향력은 인정하면서도 포퓰리즘의 우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는 의견도 있다. 박세일 교수는 “포퓰리즘을 잘 극복해 대중성과 전문성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서 “또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국민도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민족주의 자극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특히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사정은 80년대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의 왜곡과 재생산부터 최근의 2002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민족주의로 나타났고 이는 선거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쳐왔다.
◆ 간첩 사건부터 촛불시위까지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진 민족주의는 대선 때마다 불거진 간첩 사건 등으로 생명력이 충전돼 왔다. 87년 대선 직전 터진 ‘KAL기 폭파사건’, 92년 대선 전의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97년 대선 때의 월북 오익제 편지 사건 등은 유권자들의 안보 심리를 자극했고 이는 집권당의 집권 연장 수단으로 이용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총선 때도 마찬가지다. 96년 총선을 앞두고 일어난 판문점 총격사건은 일순 한반도를 긴장시켰다. 그 이전에는 여소야대 정국 때 이를 반전하기 위한 카드로 반공 카드가 쓰이기도 했다. 85년 2·12 총선 이후 강력한 야당이 등장하자 전두환 정부는 그해 9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88년에도 4·26 총선 때도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자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등을 계기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는 등 정국 반전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도 같은 선상에 있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발표된 남북정상회담은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총선을 앞둔 ‘역북풍’ 시도라는 평을 받았다.
그래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공포에 기반한 애국주의는 사라져갔다. 대신에 20대를 주축으로 한 신애국주의 또는 신민족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흐름이 전국적으로 표출됐던 것이 2002년 대선 때의 촛불시위다.
물론 반공 애국주의와 현재의 신민족주의와 신애국주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이념적 문제’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한길 리서치 홍형식 소장도 민족주의 또는 반공과 선거의 관련성에 대해 “형태와 타깃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집권당의 집권 연장 도구로 쓰였던 반공 이데올로기나 지금의 애매한 ‘감성적 민족주의’나 결국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대 박세일 교수도 “포퓰리즘이라는 면에서는 하나로 통한다”고 말했다.
◆ 20대형 ‘감성적 민족주의’의 탄생
예전의 반공 애국주의와 현재의 신애국주의의 차이점은 명백하다. 영향받는 세대부터 다르다. 기존에는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40, 50대를 자극하는 거였다면 지금의 신애국주의는 20, 30대를 타깃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히트 영화의 문화 코드를 봐도 읽을 수 있다. 관객동원 기록 경신을 거듭하고 있는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정치적으로 평하자면 80년대에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반공을 강조하는 영화가 됐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개인에게 행해진 폭력을 또는 반공의 이름이 아닌 가족의 이름으로 6·25 전쟁을 바라본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이런 문화 코드에서 읽을 수 있듯이 20, 30대의 신애국주의는 지극히 감성적이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자발성이다. 예전의 반공주의는 정부에서 사건을 발표하고 그것이 유권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바닥부터 동요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도로 정치권에 영향을 주는 식이다. 젊은 세대의 민족주의적 자발성을 보여준 사례로 ‘이승연 파문’을 들 수 있다. 연예인 한 사람이 사회에서 매장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젊은 사람들의 감성적인 애국주의를 엿볼 수 있는 한 사건이면서도 자발성이 얼마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 잘못 긁으면 부스럼, 그러나 잘 긁으면 ‘대박’
그렇다면 이러한 애국주의의 선거에 대한 실제 영향력은 어떨까.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홍형식 소장은 “20대는 신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는 감성적으로 느끼는 세대라서 이들은 자존심을 건드려지면 쉽게 움직이는 계층”이라면서 “이것을 교묘하게 자극하면 선거에서 표 결집을 가져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여론조사 전문가인 안부근씨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때는 폭발력을 가질 수 있지만 단독으로는 큰 영향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예전처럼 실향민과 그 자식들이 유권자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세계적인 냉전기류가 득세하던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영향력은 인정하면서도 포퓰리즘의 우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는 의견도 있다. 박세일 교수는 “포퓰리즘을 잘 극복해 대중성과 전문성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서 “또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국민도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