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총선 이후 대투·한투 문제 털고 가야
②정치 그만두면 그만뒀지 아들 유학 막을 수 없었다
③지역구 문제 일주일 내에 매듭지을 것
④선대위원장은 ‘2(남자)+2(여자)’ 체제로 갈 것
⑤지역구 100석 얻어 1당되는 것이 총선 목표
⑥DJ 정부 때도 청와대서 공천 다했다
⑦이광재 경선 포함은 일종의 ‘씻김굿’ --- 표현 다시 고려...
⑧경선자금 공개는 정략 불씨 제공 불과
⑨강금실 장관 직접 만나 설득해 보고 싶다
⑩민주당은 호민련(호남 자민련)도 못할 것
4일 여당 대표에 오른지 2개월이 채 안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을 만났다. 당 의장실에서 만난 정 의장은 2달여간의 휘몰아친 ‘몽골기병’ 속도의 민생 투어 때문인지 약간은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지역구 100석 목표를 이야기하며 열린우리당 선전에 열을 올렸다.
정 의장이 밝힌 열린우리당의 총선 목표는 지역구 100석을 얻어 1당이 되는 것으로 개헌저지선 확보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의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선대위의 대체적 구상도 밝혔다. 정 의장은 “선대위원장은 ‘2+2 체제’로 할 것”이라면서 “김근태 원내대표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본인의 지역구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전주에 내려가 의견을 수렴한 후 일주일 내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 선관위에서 노무현 대통령 발언을 두고 위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치적 의사표시를 계속 할 거라고 했고, 한나라 민주는 탄핵까지 할 태세다. 차제에 노 대통령에게 발언 자제를 권유할 생각은 없나.
야3당 특히 두 야당이 선관위를 정략에 이용했다. 숫자 가지고 선관위원장 탄핵한다고 했다. 내가 선관위원장이어도 위축됐을 것이다. 물론 선관위 해석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선관위를 압박한 행위도 적시돼야 한다. 그리고 17대에는 법을 고쳐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나 정치적 의사표현을 못하도록 강제규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대통령은 첫 번째 공무원이면서 선출된 정치지도자로 유일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청와대에서 공작정치하고 안기부 국세청 검찰 그리고 실제 통반장 조직까지 다 움직였다. YS(김영삼 전대통령)는 돈 대줬고 DJ(김대중 전대통령) 정권시절에도 청와대에서 구체적으로 공천 다 했지 않았나.
지금은 노 대통령이 쪽지 한 장 보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당 의장이지만 대통령에게 물어본 적도 궁금해 한 적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변하는 것조차도 봉쇄하려는 것은 과하다. 또 그것이 탄핵 요건이 되나. 탄핵을 하려면 내란외환죄를 저질러야 하는데 ‘열린우리당이 1당이 돼야 된다’는 것이 그것이 내란이고 외환이냐.
-노 대통령의 입당시기는 조율하고 있나.
앞으로 상의를 할 것이다. 판단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일단은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 된 후라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과 만나거나 전화통화 등의 접촉은 자주 하나.
그 질문에는 어쩔 수 없이 NCND(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할 수밖에 없다. 만났다고 시인할 수도 안 만났다고 부인할 수도 없다.
-정 의장의 지역구 이전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최근엔 전국구로 가야 된다는 내부 건의도 있었는데.
일주일 내로 결정할 생각이다. 조만간 전주에 간다. 저의 오늘을 있게 해준 것이 전주시민이다.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내주신 그분들에게 보답하는 것은 1당 만드는 것이다. 정권교체는 두 번 했지만 의회 주도세력은 바꾸지 못했다. 정동영이 깃발을 들고 미니여당을 1당으로 만들면 그것이 전주시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이자 헌신이다. 그 하위개념으로 내 지역구가 있는 것이다. 지역에 나를 걱정해주는 그룹들이 있다. 그들의 의견도 본격적으로 들을 생각이다.
- 총선 목표를 최소 100석이라고 했는데 변함없나.
본래 목표는 1당이다. 299석이 됐기 때문에 1당이 되려면 최소한 지역구서 100석이 돼야 1당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100석은 쉬운데 지역구 100석은 사실 좀 어렵다. 결국 수도권 압승 전략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4일) 아침 심재덕 전수원시장 입당은 길조다. 30년 동안 못 넘은 곳이 수원이다. 심 전 수원시장은 어느 지역에서건 더블 스코어로 이긴다. 삼고초려 끝에 모셨다. 심 전시장은 불출마 기자회견을 예정하고 있었는데 전날 간곡하게 호소했다. 자기 마음을 움직였다고 하더라. 내가 최근에 한 일중에서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한다. 심재덕 김진표 그리고 박공우 이기우 이렇게 2+2 전략으로 가면 네 석도 가능하다.
- 그런 측면에서 강금실 장관 등의 영입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인가.
법률적으로 문제없는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는 구체적 제안을 한 적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한나라·민주 공조에 의해 선거법 처리가 무산됐는데 어떻게 보나.
민주당이 굉장한 무리수를 두고 있구나 생각했다. 패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오는 무리수다. (민주당은) 정책으로 경쟁했어야 한다. 그걸 포기하고 한나라 민주당이 공조한 것은 아주 불행한 일이다. 개혁경쟁을 해서 우리와 공조했으면 한나라당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공조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잘못된 선택이고 정체성의 상실이자 훼손이다.
전북 민심도 뒤바꿔졌다. 민주당 사람들이 형편없는 사람들이구나. 도덕수준의 바닥이 이 정도구나 이렇게 느끼고 있다. 정세균 이강래 의원이 급히 내려가서 기자회견하고 규탄을 했는데 전북부터 호남민심이 뒤바뀌어지고 있다.
전남도 바뀌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개혁정신을 나는 의심해 본적이 없다. 송기숙 선생 왈 동학, 구한말 의병운동, 광주학생운동, 소작쟁의, 광주 민주화 운동 등 근대 5대 사건이 모두 호남에서 일어났고 이는 호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었다 하더라. (민주당은) 지금 호민련(호남 자민련)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다.
- 깨끗한 정당을 내세운 열린우리당도 공천잡음 등 소란이 있는 것 같다.
소란은 있지만 질이 다르다. 육두문자 합기도 태권도가 난무하는 구정당과 엄연히 다르다. 우리당 사람들 잘 봐라. 이 분들은 항의하러 와도 서류봉투를 들고 온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스템이 불비한 점이 있다. 100% 국민참여경선에 대해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느니 우려가 있다. 비판 겸허히 받아들이지만 현재로서 강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 남궁 석 의원의 사례 등 열린우리당의 선거법 위반 건수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경선과 관련이 있다. 경선은 사생결단하기 마련이므로 그 과정에서 무리한 후보들이 있으니까 건수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도 위기의식을 갖는다. 당에 클린선거위원회를 만들고 선거법 위반 혐의자 등에 대해 감찰반 보내고 사실 확인되면 자르겠다고 공표했다. 즉각 시스템 만들어서 신속하고 과단성있게 처리할 것이다.
- 노 대통령 측근이자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이광재씨가 이번에 경선 참여하는 걸로 결정됐는데 적절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나.
이광재씨는 3월 초, 내일 모레 재판에서 유무죄가 나올 것이다. 강원 태백·정선·영월·평창의 김택기 후보는 낙천 대상이다. 듣기로는 김 의원도 하자가 있고 이광재씨도 그렇고 하니 경선이라는 씻김굿을 해보자는 취지로 했다고 한다.
- 여택수 행정관 수뢰 혐의 등으로 노무현 정권은 대통령 측근 비리 집단으로 비춰지고 있다. 깨끗한 정당 표방하는 우리당이나 정 의장이 당연히 선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검찰이 여당이건 야당이건 대통령주변이건 성역이 없지 않느냐. 신뢰하고 지켜보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로 이재정 이상수 정대철 의원이 영어의 몸이 돼있고 우리도 떳떳한 입장은 아니지만 이분들은 개인적으로 도덕적 흠결은 없다. 사적인 유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다. 죄질의 경중도 다르다. 이쪽은 합법자금의 한도를 다 못 채웠다. 중앙선관위가 정한 대선에서 쓸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있다. 그걸 다 못 채웠다. 어떻게 하든지 100% 합법화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은 합법한도를 다 채우고 그 다음에 700억원 더 받았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상대방이 영수증 주지 말라고 해서 못 준 것이고, 발급 못한 죄다.
-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자금 관련 한화갑 전대표가 사법처리될 상황이다. 정 의장도 당시 경선 참여자로서 이번 기회에 당시 경선자금 전모를 고백할 생각은 없는가.
정동영은 단신 선거운동이었다. 나 홀로 돌아다녔다. 합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장 공개는 의미 없다. 정략적으로 제기하는 것인데 정략의 불씨를 제공할 생각이 없다.
-선대위 구상은 구체화했나.
공동선대위로 할 것이다. 선대위원장은 2+2(여성 2, 남성 2)가 될 것이다. 여성 선대위원장은 지역구에 나가는 여성 후보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의장 외의 남성 선대위원장으로는 김근태 원내대표를 고려한 것인가.
그렇다. 아직 중앙상임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된 것은 아니다.
- 친일진상규명법 개악 처리 됐다는 지적이 있다. 다수당이 되면 개정할 용의가 있는가
개악됐다고 하는데 본질 자체를 흐린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중좌이상 뺀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을 넣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개혁정당이냐 뭐냐. 친일문제에서조차도 한민공조를 하는 것은 자기 뿌리 부정이다. 17대 때 개정은 해야 할 것으로 본다.
- 얼마 전 공약발표 때 대통령 4년 중임 등이 포함됐다가 빠졌는데.
대통령제는 정상적인 대통령제로 해야 된다. 지금은 변칙적 대통령제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 총선은 아니라고 본다. 17대 내에 정상적인 대통령제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 대통령제는 남미형이다. 좀 창피하지 않은가. 그걸 벗어나야 선진국이 된다.
- 정 의장은 장차 대권후보로도 거론되지만 이미지는 좋은 반면 ‘내용’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치인 정동영의 내용은 살아온 것이 내용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내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대단한 인간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철들고 20살 기준으로 30년을 살아오면서 대학시절 군대시절 기자시절 정치인시절로 나뉘어 진다. 어느 때라도 내가 이것이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추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의식이다. 물론 부끄러운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나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훼절한 적은 없다. 역풍이 불면 서 있긴 했지만 행동할 공간이 주어지면 뚫고 나갔다. 96년 1월 11일 입당해서 당 의장이 됐는데 2004년 1월 11일 당의장이 됐다. 8년 동안의 궤적이 날 만들어준 것이다. 내가 행동한 걸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꿈틀거리지 않은 적은 없다. 다만 8년 동안 행복했던 순간은 짧았던 것 같다.
- 의장 당선후 민생투어를 열심히 했는데 정치권이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 할 경제 민생과제가 뭐라고 보는가.
핵심은 2001년도에 카드 남발이다. 카드사의 대규모 부실은 수백만 신용불량자를 만들었다. 나는 정책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무책임성을 지적한다. 자기 임기 때만 모면하면 된다는 식이다. 카드 정책의 입안자 과장 국장 사무관들 다 책임이 있다. 정책 실명제가 꼭 필요하다. 한국투자신탁증권·대한투자신탁증권 문제도 그렇다. 연말에 털자고 했는데 연말 넘은지가 언제냐. 우리 당에 왔으니 비판을 할 수 없고…. 선거가 코앞이라 좀 그렇지만 선거 끝나고 나면 대투 한투 문제 털어야 된다.
- 두 달간의 민생투어 실적은 있나
전당대회에서 내가 얘기한 게 일자리 창출이 이 시대의 화두이자 이 시대의 최고의 인권이라는 것이었다. 이걸 가로막고 있는 게 있다. 첫째가 구정치, 둘째가 노사 불안정, 셋째가 규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분위기 형성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경제지도자 회의를 제안했다. 그리고 대통령께 전화했고 얼마전 첫 회의가 개최됐다. 이는 정동영이 만든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닭번개도 있다. 닭번개가 불을 붙여서 닭소비 정상화에 기여했다고 본다. 재래시장은 또 어떤가. 의장되자말자 남대문 시장에 갔고 여러 재래시장을 방문한 후 2월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전국재래시장 대표자회의를 만들었다. 어떤 정당이 어떤 당의 대표가 재래시장을 가서 이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 있나.
- 자녀들이 초호화 유학중이라고 구설에 올랐다.
지금도 시달린다. 언론중재위 제소할 것이다. 호화유학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립학교다. 학비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다해 1년에 3만불 들었다. 물론 큰 돈이다. 아들 이길 아버지 없는 법이다. 아들은 미국에서 초등학교 3년을 지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고등학교 유학 자율화가 됐다. 2000년도에 입학허가를 받아가지고 왔더라. 자문받아서 고등학교 유학을 보냈고 거기서 최우수로 졸업해 스탠포드 공대를 갔다. 졸업식 때는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솔직히 자랑스럽더라고. 글쎄 정치인 자제라 갈 때 고민이 있었는데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치를 안 하면 안 하지 아들이 뜻을 막을 순 없다. 그것은 내 책임이다.
/인터뷰 정세용 편집국장 정재철 김형선 기자
/정리 정재철 김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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