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비아 모델’이 북핵 사태에 던지는 교훈

‘힘’ 아닌 ‘외교’가 변화 불렀다

지역내일 2004-01-27 (수정 2004-01-27 오후 2:32:40)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계획 포기를 전격 선언,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수순을 밟고 있는 리비아의 사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의 새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리비아는 무하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지난해 말 WMD 완전 포기를 밝힌 직후 미국과 영국,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문가들에 의한 핵무기 프로그램 사찰을 받아들였다. 이달 26일에는 리비아를 방문한 미 의회대표단을 카다피 원수가 면담했고, 다음달 초부터는 영국 런던에서 미국과 관계정상화 회담에 돌입할 예정이다.
리비아 사례가 북핵 해결의 모델로 떠오른 것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힘의 외교’가 카다피의 노선전환을 끌어냈다는 평가 때문이다. WMD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 후세인 정권을 제거한 미국의 힘을 확인한 카다피가 위기감을 느껴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WMD 완전 포기와 국제사찰을 수용한 ‘리비아 모델’을 북한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성급한 단견이란 반론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미 코넬대 서재정 교수는 “힘과 경제봉쇄가 아닌 외교와 봉쇄해제가 리비아의 WMD 포기를 부른 요인이란 게 리비아 모델이 던져주는 교훈”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0여년간 미국과 리비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강력한 정책이 적대국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근시안적 분석이라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미국과 리비아의 적대관계는 1981년 미국이 리비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본격화했다. 미국은 이로부터 20년간 각종 테러사건 연루 혐의로 리비아에 제재를 가했고 양측은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했다. 1981년 들어선 레이건 정부는 카다피를 타도대상으로 삼아 전투기 두 대를 격추시켰다. 이에 맞서 리비아의 지원을 받는 테러리스트들이 1985년 로마와 빈 공항을 공격, 미국 어린이 한명이 희생됐다. 한해 뒤인 1986년 미국은 리비아 해군 함정과 군용기 등에 맹폭을 가해 보복했고, 이로부터 몇주후 독일 서베를린의 한 디스코텍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에 리비아가 개입했다고 판단한 미국이 보복공습, 카다피 원수의 양녀 등 3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리비아의 보복테러는 더 격렬해졌다.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미 팬암사 소속 103여객기가 공중폭발, 270명이 사망하는 대형테러가 터졌다. 이른바 ‘로커비’ 사건이다. 다음 해 1989년에는 아프리카 상공에서 프랑스 민항기가 폭발, 171명이 희생됐다.
미국은 로커비 사건에 리비아인 2명이 연구됐다는 의혹을 리비아가 부인하자 1992년 유엔을 통해 ‘무기금수 및 항공기 운항 금지’ 등의 경제제재를 가했다. 4년 뒤인 1996년에는 ‘이란·리비아 경제제재령(ILSA)’으로 미국 정부차원의 처벌도 보태졌다.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던 양국간 폭력의 악순환은 99년부터 네덜란드에서 열린 ‘로커비 재판’으로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미국과 영국은 테러용의자로 리비아인 두명을 기소하면서 국제법 질서에 따른 해결책을 모색했다. 당초 자국인의 연루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리비아도 2001년 전직 정보요원 2명의 신병을 인도하며 협상의 단초를 열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경제재재 해제를 위해 실리외교를 택한 것이다. 이후 재판에서 정보요원 한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다음해 2월 리비아는 유족에게 피해보상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곧이어 리비아는 미·영 양국과 협상에 돌입했고 2003년 3월 11일 협상이 타결됐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고려하기도 전에 협상이 시작됐고, 전쟁 시작전에 사실상 타결이 된 것이다.
리비아는 팬암기 피해자 유족에게 총 27억달러를 보상키로 했고, 89년 프랑스 민항기 폭파사건의 피해자 보상금도 추가지급에 합의, 그해 9월 유엔의 경제제재 해제 결의안을 끌어냈다.
리비아와 미·영간 합의는 유엔의 제재 해제뿐 아니라 미국의 대 리비아 경제제재 해제도 포함돼 있다. 희생자 한사람당 1000만달러인 배상금도 유가족들에게 단계적으로 지급된다. 유엔의 제재 해제 뒤 400만달러, 미국의 제재 해제 뒤 400만달러가 지급되고 나머지 200만달러는 미국의 테러주도국 명단에서 리비아가 삭제된 후 지급된다는 데 협상안의 내용이다. 유엔의 제재 해제는 이같은 ‘단계별 동시이행’ 타결안에 따른 것이다.
리비아의 외교행보는 이후 더욱 힘을 받았다. 지난해 8월초 카다피는 미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사찰단 허용의사를 밝혔고, “모든 극단주의자들과 과격 이슬람 운동에 반대한다”는 유화적 태도를 드러냈다. 지난 연말 WMD 포기 선언은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특히 WMD 포기 선언이 나온 작년 12월은 이라크 내 강력한 저항으로 부시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던 시기다.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 지정을 풀기 위한 리비아의 노력과 팬암기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제재 해제 등의 반대급부를 제공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약속이 맞아 떨어진 ‘외교의 성공’인 셈이다.
서재정 교수는 “리비아의 노선전환 결정 뒤에는 미국의 군사력이란 ‘채찍’보다도 경제제재 해제라는 ‘당근’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리비아 모델에는 북핵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선제공격이나 경제봉쇄보다는 협상과 타협이 절실하다는 교훈이 담겨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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