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탄핵무효 촛불집회’

민심거스른 국회, 국민이 심판하다

지역내일 2004-03-22
20일 서울도심을 가득메운 시민들의 손에는 분노를 쏟아낼 화염병이나 쇠파이프도 없었다. 다만 종이컵으로 바람막이를 한 촛불 하나가 들려있을 뿐이었다. 시민들은 투쟁이니 분쇄니 하는 격한 정치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무대 위 정태춘·신해철의 노래를 따라 부를 뿐이었다. 분노의 머리띠를 두른 조직대오도 아니었다. 유치원·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놀러오듯 모인 평범한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12일 야당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비롯된 촛불집회는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정치시위로 평가받고 있다.
순식간에 여야 지지율을 뒤집고 민의를 거스른 국회에 일대타격을 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주권재민 원칙 재확인=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 전국 41개도시, 온·오프라인에 걸쳐 열린 탄핵규탄 촛불집회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입증했다.
국민을 거역한 국회의원, 국민을 배반한 국회,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국민의 대표가 될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0일 전국서 40여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촛불집회는 탄핵찬반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고 평가했다.
홍덕률 대구대(사회학) 교수는 “12일 탄핵안 가결사태를 지켜보면서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손으로 민주주의가 짓밟힌 것이란 생각에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면서 “이후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아래 확산된 촛불시위는 스스로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범국민적 저항권 발동”이라고 규정했다.
홍 교수는 또 “촛불집회는 민심에 정면으로 도전한 국회와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하는 과정”이라며 “우리 국민의 높은 민주의식을 과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불과 열흘여만에 전국에 들불처럼 번진 탄핵규탄 촛불집회가 6월항쟁 이후 최대 정치시위라는 평가도 제기됐다.
홍 교수는 “참여규모나 정치적 파장 등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이번 촛불집회가 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규모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6월항쟁이 대통령직선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했다면 2004년 탄핵규탄 촛불집회는 민주와 상식을 거스른 국회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내용을 확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성숙한 시민의식 과시= 촛불집회는 87년 6월항쟁과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이은 미군궤도차에 의해 희생된 여중생 추모집회를 거치며 한 차원 높아진 시민의식·역량을 과시했다. 또 이같은 범국민적 대형집회의 경험은 한결 성숙해진 시위문화를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12일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는 우려와 달리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온라인을 통해 하룻만에 2000여명이 모집된 ‘촛불시위 자원봉사자’들은 대열정돈은 물론 집회 뒤 주변의 쓰레기까지 치웠다.
또 촛불집회는 다수의 일치된 노래 한 소절이 소수의 결단을 통한 시위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물리력에 의한 탄핵안 가결을 지켜보며 치를 떨었던 국민들은 오히려 분노를 노래와 풍자로 승화시켰다. 87년 이후 싹을 키워온 민주주의의 흐름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음을 국민 스스로 온몸으로 보여줬다.
소설가 정도상(통일맞이 사무국장)씨는 “80년대만 하더라도 투쟁은 목숨을 걸고 하는 엄중한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축제형식이 됐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성숙했다는 징표”라고 분석했다.
정씨는 “‘붉은악마·효순이 미선이’의 경험은 우리 시위문화의 미학적 완성을 이뤄가는 과정”이라며 “사람들이 그 미학적 형식에 동의하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가볍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또 “사회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성숙한 정치권을 대신해 지금은 국민들이 그 인간적 성숙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열 아닌 통합으로= 그러나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탄핵찬반 공방이 국민들간 분열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탄핵안 가결 사태는)탄핵을 소추한 쪽이나 반대한 쪽 누구에게나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며 “다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가지 입장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국론 분열로 치달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이어 “이 위기를 잘 넘기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함을 세계가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탄핵 여부를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하는 만큼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보자”고 당부했다.
홍덕률 교수는 “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국회와 의원들을 규탄하고 민주주의와 상식을 수호하자는 것이 촛불집회의 진면목”이라며 “자칫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과 반대하는 국민으로 나뉘어 서로 헐뜯고 싸워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성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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