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성장과 노사관계 ①] - 일자리 창출, 노사간 신뢰가 관건

성장과 고용, 비례하지 않아 … 일자리 필요한 기업 널려있어

지역내일 2004-02-23
노사정 합의 이행, 규제 완화와 창업 지원 … 상호 협력 절실19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고용동향’은 실업의 심각성에 대한 체감지수를 더욱 높이는 보고로 가득하다. 그에 따르면 1월의 실업자수는 2001년 4월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실업자는 전월대비, 전년동월대비 모두 전 연령계층에서 증가했고, 실업률도 두 기간 모두 상승했다. 그 중에서도 15~29세를 포함하는 청년실업률은 8.8%에 달했다. 이는 전년동월대비 5.9% 증가한 수치일 뿐 아니라, 2001년 3월의 9.0%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통계기관이 올해 GDP 성장률을 지난해에 비해 적어도 2%는 높게 잡고 있어, 우리 경제가 ''고용 없는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은 당분간 수그러들기 어려울 전망이다.

취업계수, 노동생산성의 역수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이슈로 제기된 것은 지난해 12월 23일 한국은행에서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에서였다. 당시 참석자인 박승 한은총재를 비롯, 각계 전문가들은 올해 우리 경제가 ''공장의 해외 이전, 일부 대기업 주도의 성장 등으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 예견했다.
특히 ''2003년 3%의 GDP 성장에도 불구하고 4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줄었으며, 2004년에도 일자리를 추가 창출하는 것이 곤란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의 골자가 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을 기준으로 성장률이 1%일 때 취업자는 9만6000명, 피고용자는 5만9000명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지난해에는 이런 경험치를 무색케 한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같은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 산업의 고용창출 능력은 90년대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예를 들어 산출액 10억원당 소요되는 취업자수를 말하는 취업계수가 1995년 16.9에서 2000년 12.2로 무려 27.8%나 감소한 것이다.
그 근거로 한국은행은 90년대 이래 우리나라 취업구조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제조업의 취업자 비중이 산출액에 비하여 큰 폭으로 떨어지는 등, 산업구조와 취업 구조 사이의 괴리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든다. 이에 따라 한국금융연구원은 올해 성장률을 5.8%로 지난해에 비해 2.9%나 높여 잡았지만 실업률은 3.2%로 지난해의 3.4%보다 오히려 낮추어 잡았다.
성장과 고용 사이에 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것으로 보는 오해는 노동계 내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예를 들어 기업의 고용흡수력을 나타내는 고용탄성치가 외환위기 전 평균 0.33에서 지난해 0.16으로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자,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를 근거로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이나 일본 등의 기업에 비해 사람을 고용하는 비율이 크게 낮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성장이 고용을 담보하지 않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수치라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 확대를 위한 노력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서비스업의 취업자 비중이 90년 46.0%에서 2000년 59.4%로 지속적으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실제 취업자를 제외한 간접 취업유발인원은 제조업(9.5명)이 서비스업(6.1명)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취업계수가 노동생산성의 역수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취업계수가 크게 낮아졌다는 것은 역으로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아진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우리 산업의 체질이 그만큼 강해져 왔음을 의미한다.
만일 성장률이 고용 증가를 견인한다면 성장률이 낮을 경우 고용 증가 또한 어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단한 통계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급성장하던 85, 86년 성장률은 각각 6.5%, 11.0%를 기록했지만 당시 실업률은 4.0%, 3.8%로 지난해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80년대 이래 최저치인 2%대 실업률을 기록한 94~96년대에 성장률은 비록 8%대나 되었지만 곧이어 터진 외환위기로 그 빛이 바랬다. 재정을 쏟아 부어 인위적으로 부양시킨 경기가 재앙을 야기한 탓이다.
이런 이유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주장은 현실 여건과 무관하게 일자리 창출을 거부하는 논리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6일 채용 정보업체 헬로잡이 주요 기업 1백1곳의 인사 담당자와 직장인 4천7백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 인력정책 및 직장인 의식 변화 조사’는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예를 들어 중견 건설업체 S사는 본부 관리 인력을 제외한 300여 직원을 전원 계약직으로 운용하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16%에 지나지 않았고, 45세 이전에 퇴직할 것이라 답한 사람은 52.9%, 40세 이전에 떠날 것이라 답한 사람도 30%나 되었다.

주5일 근무제는 양면의 칼날
19일 정부는 청와대에서 ''경제 지도자회의''를 개최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5년 동안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계획이며, 그 근거로 5년간 5%대 성장을 통해 150만개(1%당 6만개 창출) 서비스 산업 확대와 성장동력 산업 강화를 통해 20~30만개 일자리 나누기 등 추가 일자리 발굴을 통해 20~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는 선거를 앞둔 선심성 발표라는 의혹과는 별개로, 통계치를 아전인수식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주장과 맥락이 통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향후 5년간 5%대의 GDP 성장률을 확신하는 근거가 불투명하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번복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5~7%대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결국 3%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전력이 있다. 더욱이 이 발표 하루 전인 18일 국회 답변에서 이헌재 부총리는 “이대로 가다간 올해 5% 성장도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 당장 올해 5% 성장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노동법에 따른 법정 근로시간의 단축, 그에 따른 주5일 근무제를 조기 도입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서도, 주5일 근무제는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여가시간을 늘림으로써 관련 산업, 특히 서비스산업에서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예를 들어 삼성경제연구소는 2001년도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여가관련 수요가 10% 증가하면 생산액과 부가가치가 각각 0.49%, 0.57% 상승하여 약 65만명의 고용 창출이 발생한다고 추정한 바 있으며, 비슷한 방식으로 한국관광연구원은 2002년도 조사에서 향후 5년간 총 53만명의 고용 창출이 이루어질 것이라 추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용창출은 기본적으로 GDP 성장률과 연계되기 때문에 이미 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에 포함된다는 문제가 있다. 즉 5% 성장으로 15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면 그 안에 서비스업의 성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한편으로 신규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와 고용 감소 효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개정 노동법은 임금 보전을 원칙으로 하는 주 40시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다수 기업가들은 현재와 같은 근로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노동비용을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본다.
이 때문에 자본설비에 대한 투자와 기존 인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중소기업의 경우 낮은 노동생산성을 초과근로시간으로 해결해 왔으므로, 근로시간 단축이 오히려 초과근로시간의 연장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동시에 이루어지므로, 선진국에서는 단기적인 고용증가가 대부분 장기적인 고용 감소와 상쇄되었다. 말하자면 근로시간 단축은 산업구조를 선진화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 과정이지, 고용 증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이미 1936년에 주 40시간 근무제를 법제화한 프랑스가 1998년 Aubry법을 제정,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한 결정적인 이유도 만성적인 실업난을 해결하자는 데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산업구조는 더욱 서비스업 중심으로 재편된 반면, 고용창출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기대와는 정반대되는 결과를 예측하는 경우도 있다. 11일 LG경제연구원은 ‘주5일제, 생산성 향상으로 대비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조사한 ‘2002년 취업자 1인당 시간당 부가가치’는 한국이 39인 데 비해 일본은 72로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 결과를 토대로, 주 40시간 근로제가 실시되면 “통상임금을 종전과 같이 지불할 경우 시간당 임금이 10% 이상 상승하게 된다”며 “전산업의 주당 실제 근로시간이 2000 2002년 평균 47.8시간인 상황에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지 않은 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경우 시간당 임금상승과 잔업수당 확대로 12.2% 정도의 인건비상승 효과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노동생산성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근로시간 단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간의 신뢰가 고용창출 지름길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민주노총의 입장은 한층 분명하다. 지난 8일 노사정위가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에 합의하자 이수호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대기업 임금안정은 의미가 없다”며 “근로시간을 단축해 5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민주노총은 일관되게 이러한 주장을 펼쳐 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시간단축과 시간외 근무를 줄이는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당장 7월 1일 공공 및 금융 부문에서 주5일제 근무제가 실시되면 그로써 단축되는 4시간분을 신규인력에게 배정하자는 안까지 제시한다. 문제는 개별 기업가의 입장에서 생산성의 근본적인 제고가 없는 노동비용 증가는 곧 경쟁력의 상실을 의미할 뿐이므로, 이러한 대안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올해 정부의 핵심 과제로 제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노사 당사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지난 8일 전격 타결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은 노사간의 시각차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즉 협상시한 막바지까지 재계는 대기업 임금 동결안을, 노동계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굽히지 않아 결렬의 위기를 여러 차례 맞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는 최종안인 “노동계는 일자리 만들기 및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서 향후 2년간 임금안정에 협력한다”는 문구에 합의함으로써 타협점을 찾았다.
임금안정을 “생산성 향상과 물가인상률 범위 내”라고 규정한다면 이 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협상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한국노총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대화의 여지를 높여 현장에서 사용자의 투자의지와 노동자의 생산성 향상 의지를 높여 가는 것이, ‘5년 내 일자리 200만개 창출’이라는 막연한 구호보다 훨씬 신뢰할 만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런 논의와 무관하게 우리의 노동 현장을 돌아보면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당장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그렇다.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전체 제조업의 인력부족이 20만5000명에 이르고 있어 일자리가 없다는 주장을 무색케 하는 실정이다. 특히 기능직(7만3000명)과 단순노무직(8만4000명)의 인력부족은 심각한 상태이며, 이 자리를 40만명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지표로만 보아도 중소기업 인력부족률은 98년 1.89%에서 99년 4.0%, 2000년 4.8%, 2001년 3.98%에서 2002년에는 9.36%로 치솟았다. 중소기업의 경우 외국인 취업자가 빠져나가면서 위기에 빠지는 경우나, 아예 공장을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인력난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대비하여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등 투자여건을 조성하여, 한편으로 중소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다른 한편 신규창업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실질적인 길이 될 것이다.
특히 신규창업 의지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난해에 일자리 3만개가 줄어들었다고 하나 이는 임금근로자가 1.6%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하는 비임금근로자가 3.2%나 줄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권혜자 연구위원은 “고용문제의 심각성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고용이나 창업을 회피하는 데 있는 것”이며 “이는 대기업·정규직 대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의 분절을 해소할 때만 해결 가능할 것”이라 지적한다.



/백만호 . 김선태 기자/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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