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미아가 발생한 가정 가운데 70% 이상이 5년 안에 붕괴됩니다. 사회를 원망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다 결국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 사라지는 것이죠. 실종 어린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붕괴되는 가정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습니다.”2000년 실종된 준원이 아버지 최용진가 털어놓은 말이다.
한국복지재단에 따르면 매년 3500∼4000여명의 미아가 발생, 지난해 말까지 실종 어린이 730여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몇 년 사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지난해에도 100여 명의 우리 아이들이 생사를 모른 채 어디론가 사라진 것.
실종 어린이 가족들은 부천 초등학생 사건이나 각종 유괴 사건을 접할 때마다 잃어버린 제 아이가 떠올라 가뜩이나 타들어 간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 내린다.
어디선가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부모들에게 실종 어린이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것보다 힘든 소식은 없다.
실종 어린이 부모들은 제 아이가 남의 손에서나마 건강하게 크고 있으며 언젠가, 죽는 날 전에는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집 앞에서 사라진 아이들= 경기도 용인시 신갈에 살던 대현(5·사진 좌측하단)이가 사라진 것은 지난해 9월 5일 저녁 8시쯤.
자신의 이름을 딴 아빠의 가게 ‘대현 공구’앞에서 엄마 박춘자씨가 잠시 한 눈을 팔 던 사이에 없어졌다. 아빠인 김철동(33·사진 좌측상단)씨는 당시 외부로 일을 하러 갔고 엄마인 박씨는 친구가 가게로 놀러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대현이는 엄마에게 옆 가게에서 과자를 사러갔다 온다며 집에 온 엄마 친구의 딸(2세)과 함께 나갔다고 한다.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자 대현이 엄마와 친구는 아이들을 찾으러 나갔고 150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이 갔던 두 살배기 만을 발견했다.
말 못하는 아이에게 아무리 ‘오빠 어디 갔느냐’고 물어도 아이는 울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김씨 부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은 전국 어디라도 달려갔다. 대현이가 실종된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생업을 포기한 채 부산에 있는 복지시설이나 고아원, 비인가 시설까지 찾아 헤맸다.
가게에서 만난 대현이 아빠는 “대현이가 어린이 집에 갔다와서는 11시 퇴근할 때까지 함께 있었다”며 “가게 어디를 봐도 대현이가 웃으면서 달려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때문에 한 겨울에도 가게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한다. 혹시 아이가 왔다가 문이 닫혀서 못 들어올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4월 중랑구 망우동에서 사라진 준원(여·당시 6세·사진 우측하단)이도 친구집에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 집에 갔던 준원이는 집으로 오던 중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준원이 아버지 최용진(43·사진 우측상단)씨는 “워낙 똑똑하고 어른스러웠던 준원이를 너무 믿었던 우리 부부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자책했다.
준원인는 만 4살이 되자 더 이상 유치원은 재미가 없으니 학교에 보내달라고 조를 만큼 영특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읽기 쓰기도 초등학생만큼 능숙했다. 이 때문에 최씨는 학교에 찾아가서 준원이를 학교에 넣어달라고 사정도 여러 번 했을 정도다.
더구나 준원이 아래에 당시 갓 100일이던 동생 준현(여·4)이가 있어 준원이에게 조금은 소흘할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준현이가 이제 실종될 당시 준원이 나이가 됐다”며 “준현이를 볼 때마다 준원이 생각이 나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라고 한 숨을 쉬었다.
◆장기 미아 가정 붕괴 심각= 다른 실종 어린이 집들도 마찬가지지만 대현이나 준원이 집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가정 불화가 잦게 됐다.
대현이 엄마는 우울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못 자더니 한 달 전 친정으로 가버렸다. 대현이 아빠도 죄책감에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해줄 말
이 별로 없었다. 그도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한동안 술을 옆에 끼고 살
았다고 한다.
준원이 아버지 최씨도 얼마 전까지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가정에 소흘하게 됐고 싸움도 많아졌다. 최씨는 “실종자 부모들 모임에 나가보면 자주 나오던 사람들이 어느 날 연락이 끊긴다”며 “그런 집은 십중팔구 부부가 이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아이를 잃어버린지 5년 이상 되는 가정 가운데 70%는 가정 붕괴를 경험한다는 것.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 기법 도입 필수=따라서 이들은 “가정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체계적인 미아찾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미아찾기에 유전자(DNA) 검사 기법을 도입하는 것. 아이들은 금방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사진에 의존해서는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유전자 검사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검사 방법은 아이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채취해 부모와 맞춰보는 것으로 1인당 5만원 정도가 든다.
대현이 아빠는 “평생동안 찾을 겁니다. 찾을 때까지는 죽지도 않을 생각”이라며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들이 제 아이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준원이 아빠도 “유전자 검사비 20억원 정도만 있으면 전국 3000여 비인가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검사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찾을 정도냐”고 반문했다.
/김남성 기자 kns1992@naeil.com
한국복지재단에 따르면 매년 3500∼4000여명의 미아가 발생, 지난해 말까지 실종 어린이 730여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몇 년 사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지난해에도 100여 명의 우리 아이들이 생사를 모른 채 어디론가 사라진 것.
실종 어린이 가족들은 부천 초등학생 사건이나 각종 유괴 사건을 접할 때마다 잃어버린 제 아이가 떠올라 가뜩이나 타들어 간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 내린다.
어디선가 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부모들에게 실종 어린이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는 것보다 힘든 소식은 없다.
실종 어린이 부모들은 제 아이가 남의 손에서나마 건강하게 크고 있으며 언젠가, 죽는 날 전에는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집 앞에서 사라진 아이들= 경기도 용인시 신갈에 살던 대현(5·사진 좌측하단)이가 사라진 것은 지난해 9월 5일 저녁 8시쯤.
자신의 이름을 딴 아빠의 가게 ‘대현 공구’앞에서 엄마 박춘자씨가 잠시 한 눈을 팔 던 사이에 없어졌다. 아빠인 김철동(33·사진 좌측상단)씨는 당시 외부로 일을 하러 갔고 엄마인 박씨는 친구가 가게로 놀러와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대현이는 엄마에게 옆 가게에서 과자를 사러갔다 온다며 집에 온 엄마 친구의 딸(2세)과 함께 나갔다고 한다.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자 대현이 엄마와 친구는 아이들을 찾으러 나갔고 150미터 떨어진 곳에서 같이 갔던 두 살배기 만을 발견했다.
말 못하는 아이에게 아무리 ‘오빠 어디 갔느냐’고 물어도 아이는 울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대현이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후 김씨 부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은 전국 어디라도 달려갔다. 대현이가 실종된 후 처음 두 달 동안은 생업을 포기한 채 부산에 있는 복지시설이나 고아원, 비인가 시설까지 찾아 헤맸다.
가게에서 만난 대현이 아빠는 “대현이가 어린이 집에 갔다와서는 11시 퇴근할 때까지 함께 있었다”며 “가게 어디를 봐도 대현이가 웃으면서 달려올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때문에 한 겨울에도 가게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한다. 혹시 아이가 왔다가 문이 닫혀서 못 들어올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4월 중랑구 망우동에서 사라진 준원(여·당시 6세·사진 우측하단)이도 친구집에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유치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 집에 갔던 준원이는 집으로 오던 중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준원이 아버지 최용진(43·사진 우측상단)씨는 “워낙 똑똑하고 어른스러웠던 준원이를 너무 믿었던 우리 부부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자책했다.
준원인는 만 4살이 되자 더 이상 유치원은 재미가 없으니 학교에 보내달라고 조를 만큼 영특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읽기 쓰기도 초등학생만큼 능숙했다. 이 때문에 최씨는 학교에 찾아가서 준원이를 학교에 넣어달라고 사정도 여러 번 했을 정도다.
더구나 준원이 아래에 당시 갓 100일이던 동생 준현(여·4)이가 있어 준원이에게 조금은 소흘할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준현이가 이제 실종될 당시 준원이 나이가 됐다”며 “준현이를 볼 때마다 준원이 생각이 나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라고 한 숨을 쉬었다.
◆장기 미아 가정 붕괴 심각= 다른 실종 어린이 집들도 마찬가지지만 대현이나 준원이 집도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가정 불화가 잦게 됐다.
대현이 엄마는 우울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못 자더니 한 달 전 친정으로 가버렸다. 대현이 아빠도 죄책감에 힘들어 하는 아내에게 해줄 말
이 별로 없었다. 그도 다른 집 아버지들처럼 한동안 술을 옆에 끼고 살
았다고 한다.
준원이 아버지 최씨도 얼마 전까지 술이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가정에 소흘하게 됐고 싸움도 많아졌다. 최씨는 “실종자 부모들 모임에 나가보면 자주 나오던 사람들이 어느 날 연락이 끊긴다”며 “그런 집은 십중팔구 부부가 이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에 따르면 아이를 잃어버린지 5년 이상 되는 가정 가운데 70%는 가정 붕괴를 경험한다는 것.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 기법 도입 필수=따라서 이들은 “가정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체계적인 미아찾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미아찾기에 유전자(DNA) 검사 기법을 도입하는 것. 아이들은 금방 모습이 바뀌기 때문에 사진에 의존해서는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유전자 검사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이 검사 방법은 아이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을 채취해 부모와 맞춰보는 것으로 1인당 5만원 정도가 든다.
대현이 아빠는 “평생동안 찾을 겁니다. 찾을 때까지는 죽지도 않을 생각”이라며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들이 제 아이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준원이 아빠도 “유전자 검사비 20억원 정도만 있으면 전국 3000여 비인가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검사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이 돈이 없어서 아이를 못 찾을 정도냐”고 반문했다.
/김남성 기자 kns1992@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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