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힘의 시대’ 지나 ‘매력의 시대’로

최병렬 침몰· 여성 정치인 부각 등은 ‘신조류’ 반영 … “설득과 동의가 권력의 핵심요소로”

지역내일 2004-02-24 (수정 2004-02-25 오후 2:02:58)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정치적 몰락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유야 많지만 변화된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기득권에 연연했기 때문에 결국 ‘침몰’한 것이다.
한 핵심측근은 “이미 (최 대표) 시대가 아니다. 지난 대선을 통해 한국사회의 주류가 교체된 그 후폭풍에 의해 밀려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회에서 할 수 없는 일은 개헌과 대통령 탄핵 밖에 없다’는 초거대 정당의 수장이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졌다.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정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대신 이 자리에는 ‘매력’으로 표현되는 신개념인 소프트 파워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국회의원 273명 중 147명. 마음만 먹으면 장관 한 두 명 갈아 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연일 휘청거리고 있다. 의석 62석에 제2당인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연일 이어지는 지지도 하락은 물론이고, 아예 여론의 관심사 밖에 밀려나 있을 때도 상당수다. 과거 기준으로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위기를 공룡의 멸종 상황에 비유했다.
힘으로 보면 경쟁자가 없었던 공룡의 멸종은 결국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다.
보수논객이자 현재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열씨의 비판은 더욱 통렬하다. 이씨는 “한나라당에 막상 들어와 보니 싹수가 노랗다”면서 “차라리 자폭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의 김부겸 의원은 “국민들을 끌 수 있는 매력 없는 정당의 한계”로 풀이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각 당에서 힘 있는 중진급 의원들이 줄줄이 밀려나고 있다. 최병렬 서청원 정대철 한화갑 박상천 등 셀 수도 없다. 오랫동안 한국의 정당정치를 주도해 온 그들이다. 딱히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바뀐 시대가 그들을 거부하고 있는 양상이다.
대신 역동성과 새로운 감수성을 갖춘 초재선 의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힘 보다는 매력 있는 인물군으로 평가된다. 열린우리당이 김원기 대표 체제에서 재선의 정동영 의장체제로 바뀌면서 ‘확’ 뜬 것이 대표적이다. 또 민주당에서 추미애 의원,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거듭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각 정당이 젊고, 지적이며, 문화적인 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여성들의 정치참여 확대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시대조류로 굳어져 가고 있다.

◆ 세계적 관심은 ‘소프트 파워’
힘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가 마감되는 것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미국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국제정치학)는 이를 하드 파워(hard power)의 개념에 대응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시대로 규정했다. 하드 파워는 물건을 만드는 힘인 ‘경제력’과 파괴하는 힘인 ‘군사력’을 합친 개념이다. 강요(군사력)와 회유(경제력)에 의해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힘이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사회에서는 정보 지식 문화 등의 총아인 소프트 파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나이 교수는 ‘문화 이념적 호소력으로 다른 나라를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소프트 파워라고 정의한다.
이를 상대방을 자발적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소프트 파워에 대한 관심이 연구단계를 넘어 실용화 단계로 돌입했다는 평가다. 특히 금융담당 및 경제정책담당 장관인 다케나카 헤이조우는 소프트 파워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 그는 소프트 파워를 “지적인 힘, 정보의 힘, 사람과 사회의 매력을 총칭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일본은 하드 파워에서 경제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앞으로 소프트 파워를 키워가는 것이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는 길”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정책으로 고민이 진행 중인 것이다.

◆ 권력은 ‘매력’에서 나온다
이런 ‘매력’의 개념을 국내 상황에 적용해 보려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일본의 정치인 전문양성소인 마쯔시다 정경숙의 연구원인 이광호 박사는 “이제 한국사회도 서서히 하드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를 지향하는 흐름의 가운데 서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성장가능성도 크다고 평가했다. 그 근거로는 △민주주의 가치관의 확산 △600만명의 한국교포 △높은 교육열과 국제적 인재 확보 △다양한 NGO 그룹의 존재 △IT 산업의 발전 △세계적 규모의 한류열풍 등을 열거했다.
이 박사는 “한국의 소프트 파워 성장가능성은 크다”면서 “한국정치도 단순히 정치내부적인 경력과 가치라는 관점을 벗어나 경제적, 국민적, 국제적 관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과 제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윤태 전 국회도서관장은 이를 국내 정치상황과 접목했다.
그는 《소프트 파워 시대》라는 저서에서 “소프트 파워는 정보시대의 새로운 정치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라면서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힘이야말로 현대적 의미의 권력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과거처럼 날치기와 물리적 저지 그리고 장외투쟁으로 이어지는 정치행태는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정치에서 ‘하드파워’는 시종일관 지역주의에 기반하고 보스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3김식 정치’를 들 수 있다. 수 십 년간 한국정치를 왜곡시키고 질곡에 빠뜨린 주범이기도 하다. 그 기반이 지난 16대 대선을 거치면서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 이후 정치권에서 불고 있는 신진들의 급성장과 중진들의 급격한 퇴조가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뚱의 유명한 발언은 ‘매력의 정치시대’에 접어들면서 폐기처분 직전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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