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 행사해 민주주의 지키자
임재경 언론인
내일은 제17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의 날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며 정부를 수립한 뒤 반세기를 보내는 동안 열여섯 차례의 총선거를 치렀지만 이번만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예가 흔치 않다. 국민소득과 투표 참여는 반비례의 관계라는 것이 선진 민주국가들의 일반적 추세인데다 군사독재 시대에 형성된 정치허무주의 때문에 투표율은 해가 거듭할수록 낮아지는 경향이어서 4년 전 16대 총선거에서는 투표율은 고작 57%에 그쳤다.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 대표성이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으로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는 적신호에 해당한다.
지난 주말(4월 8~9일)을 기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결과(2차)에 따르면 투표의향을 표명한 응답자가 전체의 88.7%(반드시 투표 77.2%, 가능한 한 투표 11.5%)로서 16대 총선 때보다 9.8%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긴 하나 투표의향 표명 응답 비율대로 실재 투표가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번 총선거의 투표의향 비율이 높아진 까닭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터라 기대를 걸만도 하다. 우리 모두가 짐작하고 있듯이 투표율 상승 가능성은 ‘차떼기’로 표현되는 정치부패, 그리고 지난 3월 12일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폭발적 분노와 일정한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옳다.
막판 대혼전, 투표율이 총선 승패 최대변수
이 두 가지 돌출 쟁점이 총선거 기간 중 정당간의 구체적 정책 대결을 뒷전으로 밀어낸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리지만 정치부패 척결과 주권 재민의 원리를 확인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뿌리에서 흔드는 장막 뒤의 음험한 행동들에 대하여 유권자가 총 선거에서 눈을 감아버린다면 정당이 선거 때마다 내거는 정책 공약의 실현 여부는 보나마나 한 것이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대통령 탄핵쟁점을 헌법재판소에 심판에 맡기고 총선거에서는 조용하게 정책대결로 나가야한다는 기득권 층 일부의 논리다. 언뜻 들으면 법치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민의 법률냉소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가며 절차의 중요성을 소리쳐보았자 국민이 법치주의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근대 이후의 역사가 말하는 대로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체육관에서 이루어지는 단독 후보의 대통령 간접선거가 당시의 헌법으로는 완벽하게 절차적 합법성을 지닌 것이었으나 국민은 이를 납득하지 않고 드디어 6월 항쟁으로 판을 뒤집지 않았던가.
헌법학자 허영 교수 말대로 잔여 임기 3개월의 국회가 잔여 임기 4년의 직선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민주정치의 정당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어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4.15 총선거가 탄핵에 대한 심판의 성격으로 응축됨은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선거 민주주의 원리다.
4.15 총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1인 2표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비례대표제를 명실상부하게 만든 점이다. 산업화의 진척이나 노동자의 조직 비율은 선진 공업국에 손색이 없는데도 냉전적 정치 환경과 선거제도상의 불합리로 인하여 여태껏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안타깝게도 원내에 진입할 수 없었다. 개정된 선거법은 지역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신생 진보 정당의 득표가 비례대표 선출에 전보다 더 많이 기여하고 특히 지역구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선호가 다른 경우에도 양쪽 모두 사표(死票)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바람’보다 정책 선택, 의회권력 개혁해야
다음은 여성의 의회진출을 돕기 위해 비례 대표의 50%를 여성 후보자에 할애한 것 역시 주목할 변화다. 이러한 획기적 제도 변화들이 투표율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한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차떼기’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양대 돌출 쟁점으로 응축되던 4.15 총선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두 가지 쟁점, 이른바 ‘박풍’(朴風)과 ‘노풍’(老風)으로 인해 투표 며칠을 앞둔 시점에서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여당의 대표가 ‘노인 폄하 발언’에 인책하는 의미로 선거대책위원장을 사퇴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유권자의 투표행위로서 귀결될 것이다. 60~70대의 노인들은 공휴일로 지정된 4월 15일 아침 놀러가기에 바쁜 막내아들 내외를 투표장으로 이끌고 가며, 새로 투표권을 얻은 20세의 여대생은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그려 본다.
임재경 언론인
내일은 제17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의 날이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며 정부를 수립한 뒤 반세기를 보내는 동안 열여섯 차례의 총선거를 치렀지만 이번만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예가 흔치 않다. 국민소득과 투표 참여는 반비례의 관계라는 것이 선진 민주국가들의 일반적 추세인데다 군사독재 시대에 형성된 정치허무주의 때문에 투표율은 해가 거듭할수록 낮아지는 경향이어서 4년 전 16대 총선거에서는 투표율은 고작 57%에 그쳤다.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 대표성이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으로 민주주의의 장래를 위해서는 적신호에 해당한다.
지난 주말(4월 8~9일)을 기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유권자 의식조사결과(2차)에 따르면 투표의향을 표명한 응답자가 전체의 88.7%(반드시 투표 77.2%, 가능한 한 투표 11.5%)로서 16대 총선 때보다 9.8%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고무적인 소식이긴 하나 투표의향 표명 응답 비율대로 실재 투표가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번 총선거의 투표의향 비율이 높아진 까닭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터라 기대를 걸만도 하다. 우리 모두가 짐작하고 있듯이 투표율 상승 가능성은 ‘차떼기’로 표현되는 정치부패, 그리고 지난 3월 12일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에 대한 폭발적 분노와 일정한 연관이 있다고 보아야 옳다.
막판 대혼전, 투표율이 총선 승패 최대변수
이 두 가지 돌출 쟁점이 총선거 기간 중 정당간의 구체적 정책 대결을 뒷전으로 밀어낸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리지만 정치부패 척결과 주권 재민의 원리를 확인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뿌리에서 흔드는 장막 뒤의 음험한 행동들에 대하여 유권자가 총 선거에서 눈을 감아버린다면 정당이 선거 때마다 내거는 정책 공약의 실현 여부는 보나마나 한 것이다.
여기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대통령 탄핵쟁점을 헌법재판소에 심판에 맡기고 총선거에서는 조용하게 정책대결로 나가야한다는 기득권 층 일부의 논리다. 언뜻 들으면 법치주의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것 같지만 이러한 주장은 국민의 법률냉소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가며 절차의 중요성을 소리쳐보았자 국민이 법치주의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이것은 근대 이후의 역사가 말하는 대로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체육관에서 이루어지는 단독 후보의 대통령 간접선거가 당시의 헌법으로는 완벽하게 절차적 합법성을 지닌 것이었으나 국민은 이를 납득하지 않고 드디어 6월 항쟁으로 판을 뒤집지 않았던가.
헌법학자 허영 교수 말대로 잔여 임기 3개월의 국회가 잔여 임기 4년의 직선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민주정치의 정당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어서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따라서 4.15 총선거가 탄핵에 대한 심판의 성격으로 응축됨은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는 선거 민주주의 원리다.
4.15 총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1인 2표를 행사하게 함으로써 비례대표제를 명실상부하게 만든 점이다. 산업화의 진척이나 노동자의 조직 비율은 선진 공업국에 손색이 없는데도 냉전적 정치 환경과 선거제도상의 불합리로 인하여 여태껏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안타깝게도 원내에 진입할 수 없었다. 개정된 선거법은 지역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신생 진보 정당의 득표가 비례대표 선출에 전보다 더 많이 기여하고 특히 지역구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선호가 다른 경우에도 양쪽 모두 사표(死票)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바람’보다 정책 선택, 의회권력 개혁해야
다음은 여성의 의회진출을 돕기 위해 비례 대표의 50%를 여성 후보자에 할애한 것 역시 주목할 변화다. 이러한 획기적 제도 변화들이 투표율이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한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차떼기’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양대 돌출 쟁점으로 응축되던 4.15 총선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두 가지 쟁점, 이른바 ‘박풍’(朴風)과 ‘노풍’(老風)으로 인해 투표 며칠을 앞둔 시점에서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여당의 대표가 ‘노인 폄하 발언’에 인책하는 의미로 선거대책위원장을 사퇴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유권자의 투표행위로서 귀결될 것이다. 60~70대의 노인들은 공휴일로 지정된 4월 15일 아침 놀러가기에 바쁜 막내아들 내외를 투표장으로 이끌고 가며, 새로 투표권을 얻은 20세의 여대생은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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