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30일. 월남 수도 사이공이 월맹군에 함락됐다. 모든 미국인은 하루 전날 헬기를 타고 급히 철수했지만 외교관과 현지교민 등 한국인 200여명은 배조차도 구할 수 없었다. 공관원 3명이 구속됐고 나머지 한국인과 가족 등 700여명은 구 한국대사관에 억류되고 말았다. 이들은 이후 6년에 걸친 기간 동안 모두 무사히 귀국한다. 이순흥 회장(66)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하루도 긴장과 공포 없이 지낸 날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교민을 탈출시키고 억류된 공관원들을 돌보고 석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북아통신사 소속 K.C 무역부에서 일하던 이 회장은 68년 2월 월남에 도착한 후 순흥통상을 설립, 사이공이 함락될 때까지 고철과 비철을 외국에 수출하는 일을 해왔다. 월남 공산화로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입었고 신상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 회장은 월남 패망 직후 제1대 한인회장으로 뽑혀 귀국하는 81년까지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프랑스 대사의 인증을 받아 한국 대사, 영사 역할을 혼자 도맡아 하며 귀국하는 한인과 가족을 위해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고 비행기표 구매 등 업무를 무난히 처리했다. 구속된 공관원의 옥바라지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78년 7월 출국령을 받았으나 주어진 외교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를 취소하고 출국을 연장시켰다. 그 과정을 상기하며 이 회장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절감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의 노력에 대해 조국은 4성장군급 훈장인 ‘보국훈장 통일장’ 수여와 국가유공자 선정으로 답했다.
귀국 후에도 세계 각국과 국내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던 이 회장은 94년 다시 베트남에 입국, 순흥통상을 설립하고 수출입업무를 하고 있으며 99년에는 호치민 국제한국학교를 개교하고 한인들의 교육환경을 구축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트남지회장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소속 자문위원이 6명에 불과한 베트남지회이지만 지회 내 자체활동을 통해 남북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활동계획에 대해 그는 여생을 한인2세(라이따이한)의 생활안정과 교육에 쏟겠다고 강조했다.
“한인2세들에 대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관심과 배려가 시급합니다. 대략 1만여명의 한인2세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 어떤 일도 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이들을 산업연수생으로 활용하면 베트남에서의 국위선양과 한인2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연제호 기자 news21@naeil.com
“당시 하루도 긴장과 공포 없이 지낸 날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교민을 탈출시키고 억류된 공관원들을 돌보고 석방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북아통신사 소속 K.C 무역부에서 일하던 이 회장은 68년 2월 월남에 도착한 후 순흥통상을 설립, 사이공이 함락될 때까지 고철과 비철을 외국에 수출하는 일을 해왔다. 월남 공산화로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입었고 신상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 회장은 월남 패망 직후 제1대 한인회장으로 뽑혀 귀국하는 81년까지 민간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프랑스 대사의 인증을 받아 한국 대사, 영사 역할을 혼자 도맡아 하며 귀국하는 한인과 가족을 위해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고 비행기표 구매 등 업무를 무난히 처리했다. 구속된 공관원의 옥바라지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78년 7월 출국령을 받았으나 주어진 외교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이를 취소하고 출국을 연장시켰다. 그 과정을 상기하며 이 회장은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절감했다”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의 노력에 대해 조국은 4성장군급 훈장인 ‘보국훈장 통일장’ 수여와 국가유공자 선정으로 답했다.
귀국 후에도 세계 각국과 국내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던 이 회장은 94년 다시 베트남에 입국, 순흥통상을 설립하고 수출입업무를 하고 있으며 99년에는 호치민 국제한국학교를 개교하고 한인들의 교육환경을 구축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베트남지회장을 맡고 있는 이 회장은 소속 자문위원이 6명에 불과한 베트남지회이지만 지회 내 자체활동을 통해 남북통일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활동계획에 대해 그는 여생을 한인2세(라이따이한)의 생활안정과 교육에 쏟겠다고 강조했다.
“한인2세들에 대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관심과 배려가 시급합니다. 대략 1만여명의 한인2세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 어떤 일도 할 자세가 돼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이들을 산업연수생으로 활용하면 베트남에서의 국위선양과 한인2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연제호 기자 news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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