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으로 몰렸던 형사반장 이야기[수사연구 2002.12.]

지역내일 2004-04-18
살인범으로 몰렸던 형사반장 이야기

최근 필자에게는 은퇴한 전직 수사간부라고 자신을 밝힌 어떤 사람으로부터 우편물이 보내져 온 일이 있었다. 그 우편물에는 한 월간지의 오래전의 기사(87년도의 기사로 보임)를 복사해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 낡은 종이뭉치가 들어 있었고 내용은 필자가 지난 달 본란을 통하여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던「살인범으로 몰렸던 전직 형사반장의 이야기」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을 알면 알수록 참으로 기가 막힌 일 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어 기사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독자들과 함께 그 교훈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은 1983년 1월 14일에 시작된다. 그 날 새벽 경주시에 있는 한 당구장의 내실에서 여주인인 이경순씨(당시 37세)가 살해되어 발견되었다. 얼마의 물적 피해도 있었다. 경찰은 같은 방에서 잠자던 여종업원 김모양(당시 20세)의 진술과 여러 가지 현장상황등을 종합해 강도살인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펼쳤고 피해자 주변에 대한 수사도 병행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박호영씨(당시 41세,경북 영양 입암지서장)도 수사대상에 올랐지만 범행추정 시간에 3백 50리 떨어진 입암지서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 나중에 박호영씨의 공범으로 몰린 신모씨(당시 31세)와 박모씨(당시 34세)도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고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이 사건 담당검사인 대구지검 경주지청 김종보 검사(당시 29세)가 2월 초순경 입암지서로 박씨를 찾아왔다. 그는 『현직 경찰 신분으로 불륜관계에 있었으니 사표를 제출치 않으면 다른 비위를 캐내 당장 구속시키겠다. 당신 부인이 사채놀이도 했던데 당신 부인을 먼저 구속시키겠다』는 압력을 가했고 박씨는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이때부터 박씨는 검찰에 수시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30시간 동안 철야조사를 받기도 했다. 박씨는 3월 18일 오전 10시에 연행되어 3월 22일 새벽 1시 30분 구속영장이 집행될 때까지 잠 한숨 자지 못하고 밥도 한끼 먹지 못하고 심한 매질을 당했다고 나중에 법정에서 진술했다.
박씨의 구속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위의 김모양의 자백이었다. 공범으로 몰렸던 신모씨는 당시 김모양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걸 보았다고 한다. 그는 『검찰직원들이 「박호영이 범인 맞느냐」고 추궁하니까 김양은 처음엔 아니라고 했다. 윗옷을 벗고 브라자 차림으로 조사받던 김양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윽박지르자 눈물을 흘리며 「박호영이 맞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양의 고모가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김양이 벌거벗은 채 검찰청에서 도망나와 근처 가정집 빨래줄에서 옷을 훔쳐 입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고 한다.

신모씨는 박씨가 형사반장으로 있을 때 신씨의 승용차를 자주 이용한 사실 때문에 검찰의 조사를 받았었고 그는『온몸을 발가벗기고 닥치는대로 두들겨 맞았다. 검찰청 지하 보일러실에서 손과 발이 묶인채 거꾸로 매달려 고춧가루와 와사비를 탄 물을 콧구멍으로 들이붓는 고문을 당해 그날 밤 4번이나 기절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다른 공범으로 몰렸던 박모씨의 경우도 그의 법정증언, 항소이유서, 탄원서등을 종합해 보면 신모씨가 당했던 고문외에도 음식찌꺼기와 오줌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통에 거꾸로 쳐박히거나, 불타고 있는 보일러 아궁이에 머리를 쳐박아 머리카락이 그슬릴 정도의 고문을 당하며 잠은 2-3일에 몇시간씩만 자게 하고 밥도 2-3일에 한끼 정도만 먹게 하는 상상을 초월한 고문을 당한 끝에 『무조건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살려만 달라』고 포기하고 말았으며 『여기서 죽어나가느니 재판때 진실을 가리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초 경찰은 초동수사 단계에서 범행추정 시간을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로 추정했었으나 김검사는 의사 검모씨의 소견을 근거로 새벽 6시 30분-7시라고 추정한 바 있었다. 그 의사는 훗날 『아이고 말도 마소. 검사한테 열 번도 더 불려 갔습니다. 좁은 바닥에서 의사 노릇해 먹을려면 검사 하자는대로 해야지 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였고 그 의사의 감정은 2심에서 법의학 전문가가 증인으로 채택되어 그 신빙성이 여지없이 무너져 의사의 감정마저 조작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박씨에 의하면 검찰은 결정적 증언을 해줄 증인의 증언을 방해한 적도 있는데 사건 당일 7시 30분경 지서 숙소에서 박씨가 자고 있는 것을 목격한 지서 사환 길모군의 증언이 이루어지려 하자 검찰직원들이 길군을 협박하고 구타하여 증언을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증인 중 한명인 서모씨는 『조서 작성을 끝내고 검사가 읽어주는 내용이 너무 다르게 되어 있어 항의했더니 「당신 지금 미성년자보호법으로 결려있는데 당장 쇠고랑을 채울 수도 있다」고 하여 결국 도장을 찍어주고 말았고 그 후에도 위증죄로 잡아넣겠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그대로 증언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였고 심지어 조서 작성일 조차도 조작되어 있더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상상을 초월한 고문과 철저한 조작으로 박씨는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되었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고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하여 무죄가 확정되었다. 1986년 3월경 부산동부경찰서는 이 사건의 진범 3명을 밝혀 냈고 그들은 모두 유죄가 확정됨으로써 박씨등 3사람의 혐의는 완전 조작되었음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1심 재판장이었던 석용진 판사는 훗날 박씨에게『유죄판결을 내린 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니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다. 판사를 계속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변호사를 개업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김검사는 1심 유죄 선고 후 수사검사들 앞에서「검찰 직접수사 성공사례」를 발표하기도 하였고 1심 공판이 끝나기 직전에 서울지검으로 영전되어 특수부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였지만 진범이 밝혀진 후 장흥지청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하마터면 철천지한을 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평생을 감옥속에서 보낼 뻔 했던 박씨는 『무죄 석방되어 집에 와보니 가정은 풍비박산되어 친척집 방 한칸을 얻어 살며 처가 하루 5천원을 받고 식당에 가서 일을 하고 있었고 집에 현금이라고는 2천원 밖에 없더라』고 했다고 한다. 공범으로 몰렸던 신모씨와 박모씨의 처지는 더 딱했다고 한다. 신씨의 장모는 충격으로 쓰러진 후 끝내 세상을 떴고 박모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현재도 다리를 절룩인다고 한다.

박씨등은 무죄석방되면서 3백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었고 진범이 잡힌 후에는 국가배상을 신청했지만 검사들로 구성된 배상심의위원회에서는 그 신청을 기각했다고 한다. 박씨등은 국가와 김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피고측인 김검사가 한번도 법정에 출두하지 않아 87년 1월 15일 현재까지 연기만 거듭되고 있고 당시 법정에서 위증을 했던 증인 12명을 상대로 위증죄로 고소했지만 일부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나머지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결정되어 대구 고검에 항고했지만 기사가 작성되던 시점까지 일건 서류가 고검으로 이송되지도 않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 후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위증 고소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 젊은 검사와 그의 지시를 받은 검찰직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같은 만행을 보면서 필자는 여러번 분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물론 경찰 또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유독 검찰만을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살인적 가혹행위가 있었지만 해당 검사가 구속된 사례는 최근의 홍검사가 처음이다.

이에 대해 최근호인 주간조선에서 함영준 편집장은 경찰등 모든 수사기관을 지휘할 수 있고, 견제없이 사회 전 분야에 대한 수사활동을 벌일 수 있고, 모든 범죄에 대한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또 편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막강한 검찰의 권한과 그런 막강한 권력하에서 안주하며 끼리끼리 감싸는 검찰 내부 의식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위에서 인용한 실명 및 사실관계는 월간조선에 실렸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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